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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다 보면 한 가지 불가사의한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대통령 욕은 다들 쉽게 하는데 군수 욕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시·군에 의회가 있지만 군수 비판하는 일은 별로 없다. 시장·군수가 청백리라서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이런저런 연고로 '군수나 시장 돈을 얻어먹다' 보니 입막음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공짜 돈이라고 할 수 있는 각종 보조 사업에서부터 장기 저리 지원 사업에 이르기까지, 이걸 다 군수가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장 자녀나 차상위 취약 계층에게 지급되는 학자금도 그렇고 난방비 지원까지 군수에게 잘못 보이면 끊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10월 8일 장수군청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 기자회견 10월 8일 장수군청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 장수군민 시국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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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문화 관련 단체나 크고 작은 품목 단체, 지방지에 지원되는 돈도 군수의 뜻이 작용한다고 여긴다. 농민 단체에서 하는 가을 축제나 체육 대회마저도 군수에게 잘 보여야 지원금이 많다고 여긴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현실이 그렇다.

농촌 사회의 두터운 지역 연고와 눈에 보이는 경제적 득실이 이런 현실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선후배고 일가친척이다 보니 입바른 소리를 하기보다는 일단 감싸게 된다. 그래서일까? 비판의 사각 지대에 있다 보니 뇌물 비리나 선거법 위반에 얽힌 군수들이 내가 사는 전라북도에만도 부지기수다.

14개 기초자치 단체장 중 6개 단체장의 사법처리가 진행되고 있다. 송영선 진안군수, 황숙주 순창군수, 이강수 고창군수, 김호수 부안군수, 강완묵 임실군수, 그리고 장재영 장수군수다. 임실군수는 연속 네 번째 낙마다. 장수군도 다르지 않다. 지금의 장재영 군수 전임 군수 둘 다 구속되거나 중도 하차 했다.

연이은 군수 비리, 지역의 침묵동맹을 깨야

지난 8월 16일 장수읍 장터에서열린 첫 촛불집회.
▲ 촛불집회 지난 8월 16일 장수읍 장터에서열린 첫 촛불집회.
ⓒ 장수군민 시국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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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의 무덤이라 일컫는 이런 뇌물과 선거법 위반으로부터 군수를 구할 방도는 없을까? 토호세력이나 건설 업자의 포로가 되어버리는 군수를 지켜낼 수는 없을까? 군수 개인의 인격 문제로는 풀 수 없다고 본다. 매우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선 군민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뇌물비리 사건을 바라보는 군민들의 견해가 참으로 놀랍다 못해 해괴하다.

"이왕 먹을 거라면 몇 억 먹지 겨우 몇 천 먹고 신문 방송에 나오느냐?"에서부터 "선거를 하느라 15억은 썼을 테니 20억~30억은 먹지 않았겠어?"라는 자조적인 말들을 너무도 쉽게 한다.

"아직 법원 판결도 안 났는데 왜 군수님을 들먹거려?"라는 군민들도 있다. 이런 생각이 바뀌지 않고서는 비리 군수는 계속되리라 본다. 뇌물비리나 선거부정은 필연적으로 군정이 왜곡되고 그 피해가 군민에게 돌아간다.

군민의 의식 변화를 위해서는 이장 협의회나 노인회, 그리고 부녀회나 적십자회, 봉사단 등 농촌 지역의 여론 주도층들에게 객관적이고 권위 있는 시민단체나 사법기관에서 청렴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것도 좋겠다. 청렴 감수성이 높아지고 공공의식이 강화되어야 한다.

지난 8월 16일의 장수군민 촛불집회 장면.
▲ 촛불집회 지난 8월 16일의 장수군민 촛불집회 장면.
ⓒ 장수군민 시국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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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는 농민회나 시민사회에서 용기를 내 비리 군수를 비판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비리 군수가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는 안하무인으로 행세해도 되는 풍토를 용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끝내 낙마한 강완묵 임실군수는 임기 중 32개월 동안 재판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동안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군수가 자기 호주머니 털어서 차상위계층이나 이장 자녀에게 학자금을 주는 것이 아니다. 모두 다 국민의 세금일 뿐이다. 공공의 복지재정이 공정하게 집행되도록 할 문제지 비리 군수를 덮어줄 문제는 아니다.

지난 8일, 필자가 추진위원으로 참여하는 '장수군민 시국회의'는 장수군청 앞에서 '장재영 군수는 뇌물비리 수사에 대해 군민들에게 사과하고 직접 해명하라'는 기자회견을 했다. 또 군의회도 방문해 공청회를 하든지 조례를 만들든지 하여 지방선거가 금권과 인맥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정책 중심으로 청정하게 치러지는 근본적인 방책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비리 군수가 있는 지역은 물론 모든 농촌지역에서는 내년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농촌사회 특유의 비리·부정 근원을 차단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향신문> 칼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 #장재영, #시국회의, #장수군, #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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