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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이 출범한 지 100여일이 조금 넘었다. 모든 사람이 삼성전자서비스의 직원이라고 생각한 이들이 실제로는 삼성전자서비스가 간접고용한 사람들이었고, 그마저도 위장도급 논란이 일었다. 또한 얼마 전에는 삼성의 노조파괴 문서가 폭로되기도 했다. 이즈음 우리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맨 얼굴'을 보고 싶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돌아보고자 한다. - 기자말
 
10월, 가을이 한창인 어느 날 그녀들을 만났다. 그녀들을 만나러 가는 길.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휘황찬란한 명품 가방들이 즐비한 백화점을 가로질러 간 어느 카페. 형형색색의 옷들이 유혹하고, 보석들이 반짝이지만 그 유혹과 반짝임은 아름답지 않았다. 무언가를 돈으로 사고, 그것으로 인한 만족, 아름다움. 그런 아름다움과 반짝임을 탐하기엔 우리의 삶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가을 어느 날 만났던 그녀들에게도 마찬가지 였으리라.

"밴드에서 왜 제 아이디가 옥수수맘인지 아세요? 제가 너무 먹고 살기 힘들어서 아이가 4살 때부터 이마트에서 옥수수를 팔았거든요. 그래서 옥수수 맘이예요."

시원스레 자기 소개를 한 그녀는 옥수수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대의원의 부인이다. 지난 7월 14일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기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스마트한 시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해 밴드(포털사이트 N사의 모바일커뮤니티)를 만들었고, 그 밴드에 가입된 아이디가 옥수수맘이란다. 이미 밴드에서는 꽤 유명인사로 통한다는 그녀다.

"남편 연봉이 2300만 원이 안 됐어요. 10년 전부터 남편에게 그만두라고 했어요. 아이가 셋인데 그 연봉으로 살기 어렵더라구요. 남편이 3년만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아이 셋을 키우면서 카드 돌려막기로 10년을 살아왔다는 그녀. 그녀의 남편도  A/S 기사다.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에 다닌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온 10년이었지만 그 10년은 이 가족에게 너무도 가혹했다.

카드 돌려막기는 기본, 여름에 벌어 겨울에 빚 막아

그녀들의 남편은 삼성전자서비스 A/S 노동자. 고객의 제품은 성실하게 수리를 잘 해주는 남편이지만 정작 가족에 대한 A/S는 영 신통치가 않았다. 여름 성수기와 겨울 비수기에 임금 차이가 엄청난 회사. 겨울 비수기에는 생활비를 빚지고, 여름 성수기에 번 돈으로 그 빚을 막았단다. 성수기건 비수기건 가리지 않고 오후 10~11시에 퇴근하는 남편 때문에 가족들이 모여 앉은 따뜻한 저녁 한 끼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남들이 보기엔 번듯한 직장 삼성이었지만 그녀들은 늘 생활고에 시달렸다.

"신랑이 서비스에서 일한 지 20년. 결혼한 지 10년차인데 한 번 이혼 했었어요. 1년 정도 떨어져 살았죠. 생활이 전혀 안 됐어요. 성수기 때 벌어서 비수기 때 막는 생활이 너무 힘들었어요. 남편은 12시, 1시까지 일하러 다니는데 돈은 별로 안 되고, 애들은 커가고. 같이 돈을 벌어도 아이들이 어리니까. 그래도 남편과 애들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혼을 했다가 재결합한 지 1년이 안 되었어요. " - 옥수수맘

"처음에 결혼하고 나서 월급이 100만 원이 안 넘었어요. 3년 동안 젤 많이 받은 게 한여름에 118만원. 저는 예전 통장들 다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남편 말로는 월급 나온 다음날에는 사장이 출근 안 한다고 하더라구요. 직원들 눈총을 이겨내기 어렵기 때문이겠죠. 어떤 달은 기본급이 있고, 어떤 달은 없고. 유류비, 통신비 지원, PDA 통신료 다 달마다 다르고, 센터마다 다르고. " - 세아이맘

삼성전자 서비스라고 새겨져 있는 회사 조끼를 입고 다니고, "삼성 다니니 좋겠네"라는 주위의 부러움도 있었지만 삼성은 노동자들에게 냉혹했다. 한겨울 귀가 벌겋게 동상이 걸려 일해도, 아프다는 하소연 한 번 한 적 없는 노동자들이었다. 휴가도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가족에게 아빠는 늘 '부재중'이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고용 근절 및 근로기준법 준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전자서비스는 위장도급을 통해 사용자로서의 직접 책임은 회피해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 관리 및 지시하고 있다"며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확인받고 열악한 근로실태를 개선하고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고용 근절 및 근로기준법 준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전자서비스는 위장도급을 통해 사용자로서의 직접 책임은 회피해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 관리 및 지시하고 있다"며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확인받고 열악한 근로실태를 개선하고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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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이 버텨온 삶도, 그녀의 남편들이 버텨온 세월도 어디다 하소연하지 못할 고단한 날들이었다. 더 이상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지난 7월 노조를 만들었고, 우리도 삼성의 직원이라는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몇 십년 참아왔던 세월의 설움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모여들었다.

"남편이 망설이고 있을 때, 노동조합하라고 했어요.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 노동조합 하면 좀 달라지지 않겠냐고.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계속 커가고…. 노동조합 시작하고, 좀 살 만해졌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아이들과 저녁도 먹을 수 있구요. 그것만으로 노동조합이 좋은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세아이맘은 남편이 조금 더 노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에는 남편에게 첫 번째가 직장, 두 번째는 가족이었지만, 노동조합을 만들고 난 후에는 첫 번째 직장, 두 번째 노조, 세 번째 가족으로 순위가 밀려났다고. 그렇게 순위가 밀려나더라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게 참 좋단다.

"남편은 처음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만 참여하고 노조는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언론에 인터뷰 한 번 하고나서 회사에서 사장한테 3일을 시달렸대요. 그러다가 노동조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나봐요."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더 순탄치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옥수수맘. 옥수수맘의 남편은 노동조합 만든 이후 표적감사 대상이 되어 해고 당했다. 옥수수맘의 가족은 노동조합을 만든 이후 뭔가 안정적인 생활을 해보지도 못한 채 또 다시 길고 긴 해고 싸움에 접어들었다.

"아마 저는 이제 곧 나가서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남편 얼굴이 좋아진 것 같아서 참 좋아요. 나도 밴드하면서 이런 저런 사정도 알게 되고. 요즘엔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만큼 하라고 해요."

노동조합 활동 후 생긴 저녁이 있는 삶

서비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이후 삼성은 노동조합 가입자들에 대한 표적감사를 진행하고, 영등포 센터의 경우에는 폭언과 폭행으로 상식 이하의 행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삼성은 경총에 교섭 위임권을 넘겨주면서 자신들은 쏙 빠진 채 뒷짐지고 있는 판국이다. 아무리 값비싼 일류 브랜드를 만든다고 해도, 그 브랜드 가치가 누군가의 삶을 파괴 시키는 것으로 성장한다면 그 값비쌈은 가장 추한 모습이지 않을까?

노동조합하면 뭔가 서걱거림이 있는 시대다. 보수언론과 일부 매체들은 폭력집단, 이기주의 집단으로 노동조합을 매도한다. 누군가 노동조합이 옳다 그르다의 판단도 갖기 전에 우리는 이미 노동조합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갖게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한 가족의 따뜻한 시간을 만들어줬다면, 제대로 된 임금도 못받는 이에게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토대가 되었다면, 하청에 하청 줄줄이 대물림되는 대기업의 횡포가 문제있음을 깨닫게 해줬다면 그것만으로도 노동조합이라는 것 꽤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적어도 삼성서비스 노동자들에겐, 그리고 그들의 가족에겐 노동조합이 그들의 삶을 지켜주는 작은 희망이다. 삼성서비스 노동자들과 오늘 만났던 그녀들의 작은 희망의 싹이 부디 꺾이지 않기를. 그네들의 따뜻한 저녁 밥상이 값비쌈이 넘쳐나는 시대에 온기를 잃지 않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다산인권센터의 안은정 활동가입니다.



태그:#삼성서비스, #인터뷰, #가족 ,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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