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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톡 초르텐 곰파의 거대한 불탑
 갱톡 초르텐 곰파의 거대한 불탑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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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학 연구소에서 나와 우리는 초르텐 곰파(Chorten Gompa)로 향했다. 시킴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유산으로 꼽히는 초르텐 곰파에는 크고 작은 초르텐(티베트 불교의 불탑)이 자리 잡고 있다. 그 탑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3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 계단은 해탈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숨을 헐떡거리며 계단을 오르니 상단부에 금빛 찬란한 황금장식을 한 거대한 초르텐이 나타난다.

탑의 꼭대기에 빛나는 황금장식은 해와 달, 공기를 뜻한다고 한다. 거대한 탑 아래에는 작은 다시 크고 작은 초르텐으로 둘러싸여 있고, 초르텐을 중심으로 사방에는 108개의 마니차가 둘러져 있다. 사람들이 열을 지어 진리의 수레바퀴를 정성스럽게 돌리며 탑을 돌고 있다. 우리도 그들 뒤를 이어 마니차를 돌리며 탑을 한 바퀴 돌았다.

마니차를 돌리며 초르텐을 돌고 있는 사람들
 마니차를 돌리며 초르텐을 돌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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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르텐 옆 기도실에는 수백 개의 등불이 불을 밝힌 채 타오르고 있다. 마음의 등불이 타오르듯 등불은 바람에 가물거린다. 초르텐 앞에는 황금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다. 고양이의 눈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마치 내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하여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저 고양이는 내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도실에 켜진 등불
 기도실에 켜진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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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의 눈을 피해 기도실 밑에 있는 불당으로 갔다. 기도실 옆에는 티베트 불교 최고 성자로 추앙받고 있는 파드마삼바바를 모신 불당이 있다. 불당이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나는 문틀 사이로 그 불상을 볼 수 있었다.

파드마삼바바! 그는 '연꽃 위에서 태어난 스승(蓮華上生師)'이라는 뜻이다. 석가세존은 열반에 들기 전에 제자들이 탄트라의 비밀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나는 인간의 자궁에서 태어나 그에 적합지 않으므로 밀교를 알릴 수 있는 순수한 신체를 갖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탄생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즉 부처 자신이 죽은 뒤 파드마삼바바(蓮華生)으로 태어날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시킴과 부탄에서 파드마삼바바는 구루 린포체(Grue Rinpoche·소중한 스승)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파드마삼바바 불상
 파드마삼바바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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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나란자라에 머물고 있었던 파드마삼바바는 티베트 티송 데첸 왕의 초청으로 746년 12월 인도를 떠나 3년간의 긴 여행 끝에 티베트에 도착했다. 그는 본교(Bon, 티베트의 토착 종교)의 사악한 악귀와 정령들을 물리치고 티베트 최초의 사원인 삼예 사원 건립을 완성한다.

그 후 그는 히말라야 설산에 칩거하면서 인도에서 가져온 신비경전들을 티베트어로 번역하여 <108 보장(寶藏>을 완성했다. 그러나 그 비밀의 책들은 아직 세상이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 신비서 들을 티베트 히말라야 설산 전역의 동굴 속에 한 권씩 숨겨두고 육신을 버렸다.

파드마삼바바는 생과 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도인이었다. 그는 죽기 전에 몇 명의 제자들에게 적당한 시기에 환생하는 요가의 특별한 능력을 전수해 주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후에 제자들은 한 명씩 세상으로 환생하여 세상이 그 비밀의 경전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마다 경전들을 동굴 속에서 한권씩 꺼내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 중에 읽고 있는 <티벳 사자의 서>도 그 중에 하나다. 파드마삼바바의 탁월한 제자 중 한사람인 릭진 카르마 링파(Rigshdzin Karma Glingpa)가 이 비서를 찾아냈을 때 그 원제목은 <바르도 퇴돌Bardo Thosgrol>이었다. '바르도Bardo'는 '둘do 사이bar'라는 뜻으로, 그것은 낮과 밤사이, 곧 황혼녘의 중간 상태를 말한다. 즉 이승과 저승 사이의 틈새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 다시 환생하기까지 머무는 사후의 중간 상태를 '바르도'라고 부른다. 그 기간은 49일로 알려져 있다. '퇴돌Thos-grol'은 '듣는 것으로(thos) 영원한 자유에 이르기(grol)'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은 '사후 세계의 중간 상태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가르침'이라고 번역한다.

<티벳 사자의 서> 필사본이 보관된 다르질링 부띠아 버스타 곰파
 <티벳 사자의 서> 필사본이 보관된 다르질링 부띠아 버스타 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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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질링 부띠아 버스티 곰파에서 발견 된 이 책의 필사본은 1919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에반스 웬츠 교수에게 전해졌다. 옥스퍼드 대학 종교학 교수인 웬츠는 이 경전을 손에 넣은 후 크게 감동을 받고, 시킴으로 넘어가 티베트 라마승 카지 다와삼둡의 제자로 입문했다.

라마 카지 다와삼둡은 영어와 티벳어, 산스크리트어에 능통한 학승이었다. 웬츠는 다와 삼둡이 번역하여 구술한 내용을 주석과 해설을 받아 책을 편집했다.그리고 그는 <티벳 사자의 서 The Tibetan Book of Dead>라는 이름으로 1927년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세상에 출판을 했다. 당시 유럽의 대표적인 심리학자 칼 융은 <티벳 사자의 서>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심리학자로서의 해설을 달 정도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바르도 퇴돌>을 번역한 라마 카지 다와 삼둡과 에반스 웬츠에게 나 자신이 큰 빛을 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빚을 더는 길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경전에 담긴 거대한 사상과 주제들을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해설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나는 이 책을 열린 눈으로 읽고 편견 없이 자신들의 마음에 새기는 사람들은 큰 공부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칼 융

초르텐 앞에 걸려 있는 카닥
 초르텐 앞에 걸려 있는 카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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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사자의 서>는 심리학적 진리로부터 시작한다. 이 경전은 바르도(죽음과 환생 사이) 상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로 사자를 인도하는 안내서이며 죽는 자를 위한 가르침이다. 이 책에는 사후에서 49일 동안의 상태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과연 인간에게 사후 세계가 존재할까? 불교에서는 윤회의 세계를, 기독교에서는 부활의 세계가 있다고 하지만 과학적으로는 아직 그 명쾌한 해답을 찾지못하고 있다.

은둔의 땅 시킴과 부탄으로 떠나온 이번여행은 <티벳 사자의 서>와 파드마삼바바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이나 다름없다. 나는 <티벳 사자의 서> 필사본이 발견된 다르질링 부띠아 버스타 곰파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시킴의 라마승인 소남 스님으로부터 사원에 보관중인 티벳 사자의 서 원본인 <바르도 퇴돌>을 친견한 바 있다. 그리고  에반스 웬츠의 족적을 따라 시킴왕국으로 넘어왔다.

다르질링에서 설사병에 걸려 며칠 동안 물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다. 그런데 시킴왕국 갱톡에 도착하자말자 신통하게도 설사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나는 위대한 스승 파드마삼바바 상에 절을 올리고 <티벳 사자의 서>중에서 즐겨 읽고 있는 기도문을 읊조렸다.

내가 배고픔과 목마름으로/극도의 고통을 당할 운명이라도/나로 하여금/배고픔과 목마름과 뜨거움과 차가움의 고통을/겪지 않게 하소서.
옴 아훔 바즈라 구루 파드마 싣디 훔
Om Ah Hum Vajra Guru Padme Siddhi Hum!(파드마삼바바 만트라)

초르텐 불탑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는 황금고양이
 초르텐 불탑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는 황금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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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문을 읽고 있는데 "야옹~"하는 고양이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돌아다보니 아까 그 황금 눈을 가진 고양이다. 저 고양이는 전생에 무엇으로 있다가 고양이의 몸을 받고 나왔을까? 또 나와는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서 이곳 시킴에서 만났을까?

귀를 쫑긋이 세우고 긴 수염이 난 고양이는 뭔가 내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 타오르는 불길을 확 불어서 꺼진 상태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 탐진치(貪嗔痴)를 끊고 해탈에 든 상태라고 하는데, 나는 죽어서 49일 동안 어느구천을 떠돌다가 무엇으로 다시 태어날까?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지난 2012년 5월에 여행한 내용입니다



태그:#시킴여행, #파드마삼바바, #갱톡, #초르텐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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