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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삼호수의 노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2000년 작품)에 출연한 고삼호수의 섬에 노을이 내려앉고 있다. 고삼호수는 어디를 봐도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이 호수 옆에 안성 삼은리 마을이 있다.
▲ 고삼호수의 노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2000년 작품)에 출연한 고삼호수의 섬에 노을이 내려앉고 있다. 고삼호수는 어디를 봐도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이 호수 옆에 안성 삼은리 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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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할 게 경치밖에 없다는 마을(안성 고삼면 삼은리)을 지난 13일 찾았다. 경치? 그 핵심엔 고삼호수가 있다. 우리는 흔히 "OO 빼면 시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만큼 그 OO이 핵심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삼은리 마을의 현대역사에서 고삼호수(84만 평, 국내 3대 호수 중 하나)를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윤훈식 이장(삼은리)도 그걸 잘 안다.

호수 바닥에 번성했던 마을이 숨어 있다

삼은리(三隱里)는 '석 삼, 숨을 은' 자를 쓰는 마을이다. 세 가지가 숨어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도대체 어떤 세 가지가 숨었다는 말일까. 사람들에 따라서 세 가지를 달리 말한다. '마을 앞산에 세 개의 골짜기가 있는 마을' '조선시대에 조정에 죄를 지은 세 선비가 숨어 살았던 마을' '세 마을(양달말·응달말·통미)이 있던 마을' 등이다. 오호라, 그러고 보니 그 의미도 세 가지가 숨어있다.

뜻이야 어쨌든 지금의 삼은리 사람들에겐 고삼호수 전시대와 후시대로 구분된다. 1967년도에 고삼호수가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저수지다.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일정한 지역에 댐처럼 물을 가두어 만든 곳이다.

고삼호수  지금 고삼호수에 해가 지려 하고 있다. 저 멀리에 삼은리 마을이 조그맣게 보인다. 1967년(고삼호수가 생긴 년도) 이전엔 마을이 있었지만, 지금은 수몰 되어 흔적조차 사라졌다.
▲ 고삼호수 지금 고삼호수에 해가 지려 하고 있다. 저 멀리에 삼은리 마을이 조그맣게 보인다. 1967년(고삼호수가 생긴 년도) 이전엔 마을이 있었지만, 지금은 수몰 되어 흔적조차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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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이장에 의하면 삼은리에는 크게 '양달말(양달마을)'과 '응달말(응달마을)'이 있었다. 햇빛이 하루 종일 잘 든다고 해서 붙여졌던 '양달말'. 거기는 호수 이전 시대에는 100가구 이상이 살던 꽤 잘나가는 마을이었다.

하지만, 그 마을은 호수가 생기면서 수몰됐다. 평생 살던 고향을 등지고 사람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호수가 생긴 초창기에는 물이 다 빠지고 나면 마을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다고 했다. 드러난 마을에는 오로지 사람만 없을 뿐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그 마저도 골재채취 작업을 하면서 호수 바닥에서 모양이라도 살아있던 마을이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윤 이장도 원래 '양달말'에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엔 노 젓는 배를 타고 30분 정도를 통학했다. 비가 오면 배를 타지 못하고, 산을 넘어 1시간 이상을 걸어야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안성시내로 통학해야 했기에 지금의 '응달말'로 이사왔다고 했다. 양달보다 응달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응달말'에는 지금도 28가구 50여 명이 살고 있다. 지금은 '양달말'에는 두 가구만 산다고 했다. 인생은 참 모를 일이다.

김기웅씨 지금 연근 작업을 한창 하고 있는 마을 주민 김기웅 씨는 삼은리에서 연근농사를 짓는 5가구 중 한 집의 가장이다. 이 연근 농사는 캐는 게 무척 힘들다고 했다. 아침7시부터 저녁 5시까지 꼬박 물에서 연근을 캐는 중노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특별히 개조한 기계로 하지 않으면 그 마저도 엄두를 못낸다고 했다.
▲ 김기웅씨 지금 연근 작업을 한창 하고 있는 마을 주민 김기웅 씨는 삼은리에서 연근농사를 짓는 5가구 중 한 집의 가장이다. 이 연근 농사는 캐는 게 무척 힘들다고 했다. 아침7시부터 저녁 5시까지 꼬박 물에서 연근을 캐는 중노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특별히 개조한 기계로 하지 않으면 그 마저도 엄두를 못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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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훈식 이장 자신들의 소득원인 연근 밭을 웃으며 가리키고 있는 윤훈식 이장. 그는 이 마을에서 낚시터 좌대, 논농사, 밭농사, 연근농사에다가 농촌체험마을 위원장과 마을 이장까지 보고 있다.  몸이 열 두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 윤훈식 이장 자신들의 소득원인 연근 밭을 웃으며 가리키고 있는 윤훈식 이장. 그는 이 마을에서 낚시터 좌대, 논농사, 밭농사, 연근농사에다가 농촌체험마을 위원장과 마을 이장까지 보고 있다. 몸이 열 두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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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농사로 소득증대에 도전하다

이 마을은 12년 전에 우렁이농법으로 친환경 벼농사를 시작했다. 3년 전에는 친환경 연근 농사를 시작했다. 첫해는 전 이장 한 집이, 이듬해에는 네 집이 합세해 지금은 다섯 집이 연근농사에 매진하고 있다. 그 다섯 집 속에 현 이장 윤훈식씨도 있다.

지난해부터 '매향골마을'이란 이름으로 녹색농촌체험마을을 시작했다. 매화나무를 많이 심어 마을 소득과 체험사업을 하려고 했다. 그 체험마을의 운영위원장이 바로 윤 이장이다. 하지만, 매화가 고삼호수의 냉해를 이겨내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다. 매화농사에서 연근농사로 옮긴 이유다.

연은 모심을 때 심어서, 11월 말까지 수확한다. 지금이 한창 수확철이다. 연근농사에서 제일 힘든 점은 수확이라고 했다. 굴삭기로 채취하면 연근이 부러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채취하기엔 정말 힘들다. 연근을 수확하려면 먼저 연근 밭에 물을 채워야 한다. 채워진 물로 인해 부드러워진 밭에서 개조한 기계로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채취해야 한다. 어떤 농사보다도 물이 많이 필요한 연근농사는 고삼호수가 바로 옆이라 가능했다.

모내기 체험 작년부터 삼은리 마을은 '매화를 많이 심어 '매향골마을'이라 이름짓고  농촌체험마을에 도전하고 있다.불행히도 고삼호수의 냉해로 인해 매화사업은 수그러들었지만, 반면 물이 어떤 농사보다 많이 필요한 연근농사는 지금 꾸준히 잘 되고 있다. 고삼호수가 허락하는 농사라야 잘 되는 마을이다.
▲ 모내기 체험 작년부터 삼은리 마을은 '매화를 많이 심어 '매향골마을'이라 이름짓고 농촌체험마을에 도전하고 있다.불행히도 고삼호수의 냉해로 인해 매화사업은 수그러들었지만, 반면 물이 어떤 농사보다 많이 필요한 연근농사는 지금 꾸준히 잘 되고 있다. 고삼호수가 허락하는 농사라야 잘 되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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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남자의 허리까지 물이 차오르는 밭에서 하루 종일 연근을 수확하면 죽을 맛이다. 윤 이장에 의하면 이런 힘든 수확을 하려면 1000평 연근 밭에 3일 동안 드는 인건비가 450만 원 정도란다. 이젠 다섯 집이 돌아가면서 품앗이 수확을 한다고 했다.

그 연근을 팔려면 작목반을 통해 수매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직거래를 뚫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남는다고 했다. 윤 이장은 연근농사도 짓고, 수확도 하고, 영업도 뛰는 꼴이다. 현대사회에서 농사로 먹고 살기 참 쉽지 않다.

다행히 그 연근을 통해서 농촌체험마을의 거리가 제공된다. 연근을 통해서 마을 소득이 올라간다. 연근을 통해서 방송이나 신문에도 알려진다. 이제 조금씩 삼은리 마을은 '연근 마을'로 자리 잡고 있다.

호수는 단순히 경치 아니라 삶이고 역사였다

윤 이장의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니다. 윤 이장은 고삼호수의 낚시 좌대(호수에 띄워 낚시하게 만드는 집처럼 생긴 조그만 배)를 일곱 개나 운영하고 있다. 70년도에 그의 아버지가 시작해 아들까지 이어온 44년 세월의 가업이다. 윤 이장은 낚시터 운영, 논농사, 각종 밭농사, 체험마을 위원장, 연근수확, 연근판매 등으로 인해 하루가 늘 바쁘다.

윤 이장을 비롯한 삼은리 사람들에게는 모든 생업이 어떤 식으로든 고삼호수와 잇닿아 있다. 낚시 좌대도 농사가 한창인 7~8월엔 비수기다. 여름 가뭄이 들면 고삼호수에 물을 많이 빼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호수가 관광상품이나 낚시터로 이용된다고 해도 호수의 본래 용도인 '농업용수 사용'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삼은리마을 전경 호수 건너 편에서 바라본 삼은리 마을 전경이다. 삼은리는 고삼호수를 빼고 말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게 한 눈에 들어온다. 고삼호수는 삼은리 마을 사람들에게 단순히 경치가 아니라 삶이었고 역사였다.
▲ 삼은리마을 전경 호수 건너 편에서 바라본 삼은리 마을 전경이다. 삼은리는 고삼호수를 빼고 말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게 한 눈에 들어온다. 고삼호수는 삼은리 마을 사람들에게 단순히 경치가 아니라 삶이었고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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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하면 삼은리에서 고삼호수를 빼고 나면 시체란 말이 수긍이 간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삼'이라고 본 선조들의 정신으로 보면 삼은리엔 '호수와 마을 그리고 사람'이 있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 삼은리엔 또 어떤 잠재력이 숨어있을까.


태그:#삼은리, #매향골마을, #윤훈식이장, #고삼호수,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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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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