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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수 태안군이용사회 고문
▲ 한병수 태안군이용사회 고문 한병수 태안군이용사회 고문
ⓒ 이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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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중략)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사람이라면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안고 떠나길 원한다. 지난 12일 (사)한국이용사회 충청남도지회 태안군지부(지부장 한구희ㆍ이하 태안군이용사회)에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복군 이후 태안군이용사회를 설립하는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태안 이용업계 대부이자 산증인인 한병수(63·태안읍 남문리·대중이용원·사진) 고문이 군내 최초 퇴임식을 가진 날이기 때문이다.

군내 40명의 이용사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태안군 이용업계를 빛낸 큰 스승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한 고문은 중학교를 졸업한 나이에 갓 사회에 나와 익혔던 허드렛일부터 현재 500여명의 단골손님들이 찾는 대중이용원장직에 머물렀던 최근까지를 기억해가며 짐짓 시린 눈가를 보듬었다.

그간 대중이용원을 다녀간 철부지 꼬마손님부터 군대에 가겠다고 머리카락을 자르러 온 앳된 청년들의 머리카락을 손질하며 어언 50여년 동안 한 시도 가위를 내려 놓은 날이 없었다. 기가 막힌 50년이었고, 다시 못 올 50년이자 삶의 전부를 보내다시피 한 50년이었다.
이제 그가 낡은 이용의자 뒤에서 나와 제2막 인생을 꽃피우려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런 그에게도 한때는 한글을 모르는 젊은 제자를 위해 이용원내 모든 물건에 글씨를 새겨 익히게 한 다음 도심 이용업계로 내보낸 일화가 있었다. 얼마 후 글자를 또박 또박 써서 고맙다는 장문의 편지를 받은 한 고문은 한참을 서서 많은 눈물 쏟아냈다.

소년소녀가장 돕기에 나서 손님들의 이발비 일부를 쪼개 좋은 일에도 썼고, 유류피해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흰 천에 검은 글자로 '국민여러분 도와주십시오'란 현수막을 내걸어  고향민들의 피끓는 애달픔을 호소키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늦은 저녁 어르신들이 기거하는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이발봉사 후 동료들과 함께 마시는 술은 한잔의 인생이었고 거룩한 그의 고백이었다. 특히 유류피해 당시에는 전 이용사들도 합심해야 한다며 군내 이용원의 문을 모두 닫고 바다에 나가 바위에 새겨진 검은 흔적을 닦기도 했다.

동네마다 있는 미용실에 치여 이용업계는 그야말로 사양길이라지만, 신사들에게는 그에 맞는 이용원이 꼭 필요하다며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길도 마다않는 젊은 후배들을 보면 늘 안쓰럽고 고맙다.

"심장이 꺼져나가는 고통을 안고 이 일에 종사하는 후배들을 보면 이용업계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걸 새삼 몸으로 느낍니다. 하지만 작고 소소한 요물일지라도 그에 맞는 쓰임은 있는 법. 후배들의 낡은 가위와 초라한 이용원 한쪽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애틋한 후배사랑에 어느새 눈시울이 붉게 달아오른 한 고문은 수십 년간 그의 손에 머리를 맡긴 단골고객들에게 일일이 390원짜리 전자우편으로 이용원 폐문소식을 알렸다. 일간지 몇 곳에도 전단지 형식으로 이용원이 문을 닫게 됐으며 지금껏 고객들의 성원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거라는 말을 남겼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용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아 많이 아쉽습니다. 찾아오는 발길이 적은 탓이겠지만. 저는 그게 참 안타깝습니다. 하기야 한창땐 50여 곳에 달하던 태안군내 이용원들이 지금은 40곳으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니까요..(휴우)."

공부하기 싫어하던 중학생 까까머리 소년이 환갑을 넘긴 나이까지 참 오래도 한 길을 걸어왔다. 고생스럽게 배운 이용기술로 슬하 두 아들을 키워낸 한병수 고문.

부인 김종순(58)씨와 함께 남은 노년도 아름답게 마무리 짓겠다고 말한 그가, 태안군이용사회 회칙과 강령을 일일이 손보던 그가, 지부가 생긴지 23년이 흐른 지금 태안군이용사회의 꽃이 되어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미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태안군, #태안군이용사회, #이용원, #가위질, #한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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