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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억하라>
 <역사를 기억하라>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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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불복종운동·반전평화운동·인권운동.

그의 삶을 규정하는 단어들이다. 그리고 그는 '사회운동가, 역사학자'로 불린다. 그는 '역사는 아래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일관된 철학으로 책을 썼다. 그리고 "제도정치는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지 않는다. 시민의 요구가 충분히 강할 경우에만 반응한다"고 말했다.

그는 1922년 미국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나 조선소 노동자로 떠돌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폭격기를 몰았다. 그때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몸으로 겪은 후 '반전평화운동가'로 살았다. '종신교수'로 평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었지만, "시민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에 뛰어 들"었다. '말'이 아닌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지난 2010년 1월 세상을 떠난 하워드 진(Howard Zinn)이다.

<역사를 기억하라>(오월의봄)는 하워드 진이 1963년부터 2009년까지 연설했던 주요 연설 20개를 선별해 묶은 책이다.

"성경책에 손을 얹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2001년 9월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면서 "이번 전쟁은 새로운 종류의 악(Evil)에 대항하는 투쟁이며, 테러를 응징하는 십자군 전쟁"이라고 말했다. '성전(聖戰)'이라는 말이다. 중세 기독교는 '평화의 상징'인 십자가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다. 하워드 진은 이런 자들을 향해 분노한다.

"성경책에 손을 얹고 "살인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자들입니다.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하고서는 필요하면 언제나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그들도 교회 갑니다."(44쪽)

종교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전쟁이 있으며, 테러가 자행되는가? 모든 전쟁이 사람을 학살하는 전쟁일 뿐이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전쟁으로 생각하는 '독립전쟁·남북전쟁·2차대전'마저도. 그러기에 하워드 진에게는 '성전'이란 없다. 하워드 진은 이를 말로만 하지 않고, '반전운동'에 직접 뛰어들었다.

그는 "우리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지만 정부가 수백 수천 명을 죽이면 그건 애국이라고 배웠다"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집에 들어가면 무단침입이지만 정부가 다른 나라를 침략해 그 나라의 마을과 집을 색출하여 파괴하면 그것이 책임이라는 단어는 충족한다고 배웠다"며 베트남 전쟁을 반대한다.

그는 체포당했지만 "정당한 이유로  체포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며 "부끄러운 건 전쟁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이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부시가 2003년 이라크를 침략하자 그는 닉슨은 탄핵(워터게이트)하면서 왜 부시는 탄핵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의회는 닉슨이 건물에 무단침입을 했다고 탄핵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무단침입을 한 부시는 탄핵하려 하지 않습니다. 클린턴은 성추문과 관련해 거짓말을 했다고  탄핵하려 했으면서, 나라를 엄청나게 부유한 사람들 손에 맡겨버린 부시는 탄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탄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은 전 세계에 파견해 사람들을 죽이게 하고, 우리를 공격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상대로 치르는 침략전쟁에서 목숨을 잃게 하는 행위가 헌법에 명시된 '중대범죄와 경범죄'라는 탄핵 조건을 확실하게 충족하기 때문입니다."(242쪽)

전쟁에 대한 하워드 진의 일관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한마디로 전쟁이란 '악'이라는 말이다. 부시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할 때 그들을 악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하워드가 보기에 미국이야말로 악이었던 셈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좋은 일도 생기지 않아"

전쟁에 반대하는 하워드 진이기에 권력과 힘을 가진 '조직'과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그는 "제도정치가 아니라 시민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시민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작은 행동 하나를 실천해도 아무 소용없어 보"이지만 "더 많은 사람이 각자 행동으로 옮기면 그 작은 행동들이 엄청나게 커진다"고 말한다.

하워드 진의 말이 2013년 12월 대한민국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한 대학생이 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 한 장이 작은 불씨가 되어 매서운 추위를 녹이며 활활 타오르고 있다. "안녕"이라는 질문 하나가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 당사자도,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등학생과 시민들 그리고 어머니도 대자보로 화답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각자 행동으로 옮기면 엄청나게 커지는 것을 우리는 직접 눈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이를 "선동질"이라고 폄훼하지만 대자보 불길은 2002년 12월 효순미순을 위해 켜졌던 촛불과 2004년 3월 노무현 탄핵반대를 위해 타올랐던 촛불만큼 번져나갈 것이다. 시민은 나를 믿고 행동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워드 진의 믿음이었다. 인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지만 행동하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좋은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행동한다면 좋은 일이 일어 날 겁니다. 우리가 단순히 직업인의 삶을 살아가지 않고 행동하는 동안,그 과정에서, 우리가 원하는 변화가 일어나건  일어나지 않건간에 우리는 더욱 흥미진진하고 즐거우며 보람 있게  살 것입니다. 앞으로 무엇을 이루건, 우리가 내내 무언가 가치 있는 일에 참여했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해볼 말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179쪽)

시민이여, 구세주를 기다리지 말고 저항하라

이제 인민이 가야 할 길이 정해졌다. 조지 부시를 강하게 비판했던 하워드는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던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자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오바마가 "이기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바마 당선이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적어도 이 나라에서 돌파구를 찾았다는 사실, 충분히 많은 백인이 흑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이 나라에 어느 정도 진보를 이루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워드 진은 말한다. "오바마 한 사람만 바라보는 건 위험하다"면서 "구세주가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어 "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구해주리라 기대해선 안 된다"며 "우리를 구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들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랐다.

지난 2012년 12월 19일 밤 '멘붕'에 빠졌고, 2017년 12월을 다시 기다리는 민주개혁세력이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다. 민주개혁세력이 아니라 보수세력이 멘붕에 빠졌더라면 과연 2013년 12월 현재 과연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붙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렇다. 권력이 민주주의를 지켜주고, 자본이 이익보다 인간존엄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인민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 일어나고 행동할 때 민주주의와 인간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시민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저항는 존재이다.

아래 글은 그가 심장마비로 숨지기 두 달 전인 2009년 11월 11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대학에서 한 연설 마지막 문장이다.

"권력의 꼭대게에 앉은 사람들의 힘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복종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이 복종하기를 그만 두면 권력을 쥔 자들도 힘을 잃습니다.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거대기업도 힘을 잃습니다.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벌이면 거대 기업을 항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민중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조직하기 시작하면요. 저항하면요. 충분히 강력한 운동을 형성하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전부입니다. 감사합니다."(457쪽)

덧붙이는 글 | * <역사를 기억하라> 하워드 진 지음 ㅣ 윤태준 옮김 ㅣ 앤서니 아노브 편 | 오월의봄 펴냄 ㅣ 17000원
*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역사를 기억하라 - 하워드 진 연설문집 1963~2009

하워드 진 지음, 앤서니 아노브 엮음, 윤태준 옮김, 오월의봄(2013)


태그:#하워드 진, #전쟁, #미국, #시민불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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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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