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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4일 오후 1시30분 목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 제2회 정기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의 입에선 '기적'과 '감동'이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기적의 시작은 주 초 시작된 궂은 날씨가 화창하게 풀리면서 예고되어 있었다. 3년 간 준비한 이 번 공연은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태풍주의보가 내리면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날까지 불었던 강풍과 눈보라가 잔잔해 지면서 이른 아침 8시 배를 타고 나온 학부모와 단원들 그리고 오케스트라 관계자들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었다.

나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들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섬 아이들을 위한 다각도의 지원을 바라는 뜻에서 지난 10월 30일 자 <오마이뉴스>에 <아인슈타인도 못 푼다는 이 문제, 함께 봐주세요>라는 기사를 송고하였다. 그리고 내심 실질적으로 가장 필요한 물질적 지원을 기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돈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단장으로서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물질적 후원을 많이 받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번 공연을 통해서 새삼 느끼게 되었다. 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열정적인 박수라는 것을 섬 아이들은 모두에게 깨우쳐 주었다.

지난 3년 간 매주 배를 타고 나와 초등학교 강당에서 모여 파트별 연습과 합주를 연습한 아이들은 그들의 솜씨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어떻게 변변한 연습장도 없는 오케스트라가 이처럼 아름다운 선율을 낼 수 있을 까 하는 의심을 할 정도였다. 평소 연습장면을 봐 왔던 단장인 나도 귀와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다. 섬 아이들은 정말 무대 체질이었다.

흑산도에서 나온 6명의 초등학생을 비롯한 신안 관내 섬에서 모인 58명의 초·중학생으로 구성된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중 1악장-영화"아마데우스" O. S. T를 비롯해 7곡의 수준 높은 곡을 연주하였다. 특히 마지막 곡인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O. S. T를 마쳤을 때 관객들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글썽 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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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14일 열린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 정기공연 포스트 .
ⓒ 이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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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중인 신안1004청소년 오케스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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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창하고 있는 압해초 2학년 홍정아 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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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펫 독주하고 있는 자은초 5학년 김수겸 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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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명진 지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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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들의 공연은 평소 행사장에 오면 인사말이나 하고 자리를 뜨는 것이 보통인 지자체장 조차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말았다. 다른 일정이 있어 행사 중간에 자리를 떠야 될 것 같다고 미리 언질을 주었던 신안군수는 이들의 공연이 시작되자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곡이 끝날 때 마다 "잘한다, 잘한다"를 연신 내뱉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소감을 발표하면서 목이매인 듯 학부모들에게 "이것은 기적이다"라고 오케스트라 관계자들에게 감사해했다.

사실 신안군의 재정자립도를 가지고는 대형 오케스트라를 운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는 농어촌희망재단, 신안교육지원청의 경제적 지원과 목포지역 봉사단체인 (사)미래를 여는 문화회 청년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지난 3년 간 운영되고 있었다.

또한 고무적인 것은 이 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소식을 접한 지역 일간지인 <광주타임즈>의 적극적인 후원도 큰 몫을 하였다. 이 날 행사장을 직접 찾아온 김명삼 대표 및 기자단은 이 번 공연을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케이크 100여 개 및 격려금을 전달하며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격려해 주었다.

인천이 고향이면서 저 멀리 외딴 신안 섬 아이들을 위해 재능을 기부해 오고 있는 홍명진 지휘자의 공연을 마친 소회는 관객들을 또 한 번 감동시켰다.

"섬 아이들로 구성 된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자는 단장님의 말씀에 동의하여 아이들을 모으긴 했지만 악기 한 번 구경 못한 아이들을 데리고 합주 지휘를 한 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1년 동안 한 일은 승합차에 애들을 데리고 선착장에 왔다 갔다 하는 것 뿐 이었습니다. 그땐 얘들이 저를 보고 아저씨라고 불렀고 제가 지휘자라고 하자 지휘자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곤 하였습니다. 

그랬던 얘들이 1년이 지나자 저를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더군요. 저는 그것만이라도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처럼 멋진 공연을 해 주다니 정말 아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또한 오늘처럼 시간에 쫓겨서 연주를 한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얘들이 배를 타고 다시 섬으로 들어가야 되기 때문이죠."

이번 공연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약속하였다. 세속적으로 보면 이 번 공연을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가 앞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는 홍명진 지휘자와 강사들의 열정이 식지 않는 것이다. 여건상 충분한 경제적 지원이 힘들어 이들의 재능 기부가 없다면 오케스트라는 해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돈 문제는 일시적으로 풀 순 있지만 영원히 풀 수는 없다. 그래서 농담 삼아 아인슈타인도 못 푸는 문제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번 공연을 통해 섬 아이들은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있는 미래를 여는 문화회 청년들에게 무한한 책임감과 열정을 심어주었다. 단순한 돈으로 책임 질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가슴속 깊이 심어 준 것이다.

미래를 여는 문화회 청년들은 자은도 학부모 10명이 수고한 강사님들 저녁회식에 써 달라고 손수 만든 듯 보이는 봉투에 넣어 준 거금을 가지고 오랜만에 2차까지 달렸다. 그리고 오늘 누구보다도 감동한 것은 우리들 자신이라며 스스로를 치켜세우며 우쭐해 했다. 나는 홍명진 지휘자에게 공연이 끝났으니 다들 허탈해 할 것이라며 다음 주에는 쉬라고 말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단장님 그냥 다음 주에도 계속 연습하렵니다. 한 주 쉬면 또 쉬고 싶어집니다"였다.

나는 이런 천사들이 있는 한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는 영원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아인슈타인도 못 푸는 문제를 신안 섬 천사들이 풀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혁제 기자는 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 단장입니다.



태그:#신안1004청소년오케스트라, #이혁제 단장, #미래를 여는 문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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