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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버가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도크하우스

도크하우스에서 바라 본 나가사키 풍경
 도크하우스에서 바라 본 나가사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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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역사의 샘(泉)'을 지나 미츠비시 제2도크(Dock)하우스를 향한다. 역사의 샘에서는 물이 흘러넘친다. 벽에는 근대화와 함께 일본사람들의 생활이 풍요로워졌음을 보여주는 추상화가 있다. 계단을 올라간 언덕 위에 있는 미츠비시 하우스는 글로버 가든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2층으로 되어 있고, 앞으로 연못과 마당이 넓게 펼쳐져 있다. 1896년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로, 개인용 주택이 아닌 공용 또는 사업용 주택이었다.

8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2층짜리 건물로 이 건물을 짓도록 한 사람은 미츠비시의 2대 사장인 이와사키 야노스케(岩崎之助)다. 그 때문에 이 건물에는 그의 집무실이 있었다. 그는 미츠비시를 재벌 그룹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리고 미츠비시 조선소에 수리를 하러 들어간 배의 승무원들도 이 집에 묵었다고 한다. 그래서 비츠비시 도쿠하우스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이 건물의 2층에 서면 나가사키 항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미츠비시 제2도크하우스
 미츠비시 제2도크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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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메가미오하시 다리의 교각과 주탑이 보인다. 전면으로는 이나사야마의 송신탑이 보이고, 그 아래 미츠비시중공업 나가사키조선소 앞으로 배가 지나간다. 오른쪽으로는 나가사키항의 데지마 지역과 우라카미가와를 따라 발달한 나가사키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나는 2층에 방을 한 바퀴 돌아본다. 바닥에 마루를 깔고 그 위에 카팻을 펼친 형식이다. 주택보다는 사무실로 쓰였기 때문인지 갖춰진 세간도 별로 많지 않다. 그나마 담화실(談話室)이라는 이름의 방에 탁자와 의자 그리고 가구가 제대로 갖춰져 있다.

도크하우스를 보고 밖으로 나온 나는 연못에 비친 건물의 반영을 살펴본다. 마당 한 켠에는 일본에서 만든 대포가 놓여 있다. 이것은 서양사람으로부터 대포 제조기술을 배운 다카시마 슈한(高島秋帆 )의 지도로 야철장(冶鐵匠)인 노가와 세이조(野川淸造)가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또한 외국인거류지의 경계임을 알리는 표지석도 있다. 그리고 미츠비시조선소에서 만든 닻(Stockanchor)도 꽂혀 있다.

글로버 가든 동쪽의 서양식 근대건축물

[나비부인]역을 한 데이코가 입었던 의상
 [나비부인]역을 한 데이코가 입었던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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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부인 부채
 나비부인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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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크하우스를 내려와 화장실 옆을 지나면 나가사키 고등상업학교의 정문수위실을 볼 수 있다. 나가사키 고상은 메이지시대부터 쇼와 초기까지 상업과 경제 분야의 인재를 키워낸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다. 여기서 계단을 두 개 내려간 다음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링거 주택이 나온다. 메이지 초기에 세워진 목골석조(木骨石造)의 서양식 건축이다. 나무를 뼈대로 했고, 필요에 따라 석재를 사용했으며, 3면에 베란다 형식의 회랑을 만들었다.

전면에 응접실과 거실이 있고, 후면에 침실과 식당이 있는 대칭형 주택이다. 식당 뒤로는 조리실이 있고, 침실 뒤로는 의장실이 있다. 응접실과 거실에는 당시 사용하던 가구와 물품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침실과 식당에는 실크로 만든 의류와 스카프, 우산과 부채 등 공연의상이 전시되어 있다. 이게 바로 [나비부인]의 초초상이 입었던 기모노와 사용했던 부채다.

올트 저택
 올트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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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주인이었던 프레데릭 링거는 잉글랜드 출신으로 1865년 나가사키에 와 글로버 상회에서 3년쯤 근무한다. 그리고 1868년 홈과 링거상회를 설립 대외무역사업을 시작한다. 그는 1890년대 사업이 절정에 올라 1897년 일간 영자신문을 창간했다. 1898년에는 오우라 해변 홍콩은행 옆에 3층짜리 나가사키 호텔을 짓기도 했다. 객실이 50실 규모로 125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모든 방에 전화와 냉장고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프레데릭 링거는 1907년 죽을 때까지 이 짐에서 살았고, 그의 사후 장남이 이 집을 물려받았다.

링거 주택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올트 저택이다. 이 저택은 글로버 저택과 오우라 천주당을 지은 고야마 히데노신(小山秀之進)에 의해 1865년 완성되었다. 건물은 중앙에 남북으로 이어진 회랑을 중심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현관 앞쪽에 응접실, 거실, 식당이 있고, 뒤쪽에 침실과 객실이 있다. 현관 앞에는 정원과 분수가 있고, 건물 뒤쪽 주방과 연결해서는 지하 암반을 뚫어 저장고를 마련했다고 한다.

스틸 기념학교
 스틸 기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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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존 올트는 잉글랜드 출신으로 개항과 함께 나가사키에 와서 올트상회를 설립하고, 차 수출을 통해 돈을 벌었다. 그는 또한 이 지역의 상인이었던 오우라 게이(大浦慶)과 제휴해 차 제조공장을 설립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었다.

1861년에는 외국인거류지에 상공회의소를 창설 초대 회장이 되기도 했다. 그는 나가사키뿐 아니라 오사카, 요코하마까지 사업구역을 확대했고, 1871년 건강상의 이유로 영국으로 돌아갔다. 올트의 부인이었던 엘리자베스는 회고록에서 "나가사키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더 이상 아름다운 곳을 나는 모른다"라고 썼다.
     
내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스틸 기념학교다. 이 학교는 미국인 전도사 스틸의 자금 지원으로 1887년에 세워진 기독교 계열의 학교다, 서양식 목조건물로 현관부분만 3층이고 나머지는 2층이다. 3층은 종루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후 메이지 학원에 합병되어 학교가 도쿄로 이전을 했고, 건물만 남아 다른 학교의 기숙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나가사키 근대문화자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1층에는 해양과 관련된 전시물이 있고, 2층에는 예술과 관련된 전시물이 있다. 

오페라 [나비부인]을 생각나게 하는 두 동상

[나비부인]역을 한 오페라 가수 미우라 다마키상
 [나비부인]역을 한 오페라 가수 미우라 다마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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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모든 건물을 살펴보고 미우라 다마키(三浦環: 1884-1946) 동상 앞 광장으로 간다. 이곳에는 미우라 뿐 아니라 푸치니(Giacomo Puccini: 1859-1924)의 동상이 있다. 푸치니와 미우라, 그들은 오페라 [나비부인]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미우라 다마키는 푸치니의 [나비부인]에서 초초(Cio Cio 蝶蝶)상 역을 한 최초의 일본인이었다. 그녀는 1915년 봄 런던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된 [나비부인]의 타이틀 롤을 맡아 유럽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가을에는 그 역을 미국의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에서 훌륭히 소화해 냈다.

1920년에는 오페라의 본 고장 이탈리아, 모나코, 스페인에서도 공연했다. 1922년 그녀는 [나비부인]의 무대가 된 글로버 가든을 보기 위해 나가사키를 찾아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1924년부터 1932년까지 그녀는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오페라 가수로 활동한다. 그리고 1932년 일본으로 돌아왔으며, 1946년 죽었다. 이런 연유로 글로버 가든에 미우라 다마키의 동상이 있는 것이다. 그녀는 기모노를 입고 머리를 묶은 채 왼손으로 바다 쪽을 가리키고 있다.

푸치니 동상
 푸치니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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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 동상이 이곳에 있는 것은 그가 [나비부인]을 작곡했기 때문이다. [나비부인]의 시작은 존 롱(John Luther Long)이 1898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이것이 1900년 벨라스코(David Belasco)에 의해 [나비부인. 일본의 비극]이라는 단막극으로 만들어졌다. 1900년 런던을 방문한 푸치니는 이 연극을 보았고, 일리차와 지아코사에게 2막짜리 대본을 쓰게 했고, 거기에 곡을 붙여 오페라 [나비부인]을 작곡했다. 이 작품은 1904년 2월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한다.

이에 푸치니는 오페라를 3막으로 개작하고 변화를 준 다음, 그 해 5월 브레시아에서 공연해 큰 성공을 거둔다. 이것이 제2판이다. 이후 1907년까지 개작을 거듭해 제5판(최종판)까지 나왔다. 현재 공연되는 오페라 [나비부인]은 1907년에 나온 제5판이다. 그러나 처음 나온 2막짜리 오페라 [나비부인]도 가끔 공연된다. 그러나 모든 판본은 19세기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편단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나비부인의 절규

'어떤 갠 날'의 나가사키
 '어떤 갠 날'의 나가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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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이후 나가사키에는 구미 각국의 군함이 기항하게 되고, 그 승무원들과 일본 여성이 계약 결혼하는 일이 흔해졌다. 이들 군인은 이곳 외국인 거류지에 오래 살지 못하고 떠나야 할 운명이다. 그러나 이들 여성은 현지처 역할 밖에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간 남자를 잊지 못하고 일편단심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 2막 초반에 나오는 '어떤 갠 날(Un bel dì)'이다.

그러나 노래 가사를 보면, 남편이 결코 오지 않을 것임을 초초상은 이미 알고 있다. 배의 도착을 알리는 예포 소리에도 그녀는 항구로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언덕에 올라 그를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을 다짐한다. 잠시 동안 함께 했던 남편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며 그가 돌아오길 기원할 뿐이다. 한 마디로 불쌍한 초초상이다. 이게 말 그대로 여인의 숙명일까?

나가사키항에 들어오는 하얀 빛깔의 배
 나가사키항에 들어오는 하얀 빛깔의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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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맑게 갠 날,  
저 푸른 바다위에
떠오르는
한 줄기의 연기를 보게 될 거야. 
하얀 빛깔의 배가
항구에 도착해
예포를 울릴 때,
보라? 그이가 오고 있어!
그러나 나는 그곳에 가지 않을 거야. 
나는 언덕에 올라 그이를 기다릴 거야.

링거 저택 정원에 보이는 데이코 벚꽃
 링거 저택 정원에 보이는 데이코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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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부인]의 초초상 역을 한 일본 여인으로, 이곳 글로버 가든과 인연이 있는 가수가 또 하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유럽에서 활약한 키와 데이코(喜波貞子)다. 그녀가 나비부인 역을 맡았을 때 입었던 의상과 부채가 그녀의 제자인 미렐리(Mireille Gaetti-Capelle)에 의해 기증되어, 위에 얘기한 링거 저택에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 기념으로 2004년 영국에서 개량된 벚나무가 링거 저택 전원 한쪽에 심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나무는 봄과 가을에 두 번 벚꽃을 피운다. 내가 이곳을 방문한 날이 11월 26일인데, 벚나무에서 꽃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래서 이 꽃을 데이코 사쿠라(Teiko櫻)라 부른다. 그러고 보니 이 꽃이 데이코의 환생처럼 보인다.

소원지를 붙인 나무
 소원지를 붙인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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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보고 내려오면서 레스트하우스 옆을 지나는데, 소원지가 덕지덕지 붙은 나무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 땅바닥에 하트 스톤(Heart Stone)이 있다. 이 돌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해선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다. 나는 이제 마지막 관문인 나가사키 전통예능관을 서둘러 살펴보고 글로버 가든을 빠져 나온다. 다음은 점심을 먹으러 중화요리 전문점 사해루(四海樓)로 갈 것이다.


태그:#[나비부인], #푸치니, #미우라 다마키, #미츠비시 제2도크하우스, #데이코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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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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