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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이 사냥개들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보도하는 미 NBC 방송
 장성택이 사냥개들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보도하는 미 NBC 방송
ⓒ NBC 방송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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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3일(미국 동부시각) <워싱턴포스트(WP)>는 "만일 당신이 오늘 인터넷에 접해 있었다면, 지난달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장성택을 발가벗긴 채로 120마리의 굶주린 개에게 먹이를 주는 방식으로 처형했다는 뉴스를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고 보도했다.

정말 그랬다. 정말 자고 일어나 보니 이번에는 한국의 보수 언론인 이른바 '조·중·동'발이 아니라 미국 NBC 방송을 비롯해 모든 언론들이 이 기막힌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자들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다가 기사 경쟁이 붙자 앞다투어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 기막힌 사태의 발단은 바로 미 NBC 방송이었다. 미 NBC 방송의 중국 특파원 에릭 바쿨리나오는 3일 베이징발 기사에서 뜬금없이 "홍콩의 중국계 신문인 <문회보(Wen Wei Po, 文匯報)>는 '장성택이 그의 측근 5명과 함께 5일 동안 굶주린 120마리의 사냥개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보도했다"고 전했다.

NBC는 이어 "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이 처형 과정을 김정은과 그의 친형 김정철을 비롯한 300명의 (북한) 관료들이 지켜봤으며 장성택과 그의 측근들은 완전히 개에 의해 먹어 치워졌다"고 <문회보> 신문이 보도했다고 덧붙였다.

미 NBC 방송이 날짜도 밝히지 않고 전한 이 홍콩 신문의 보도 내용은 언제 나온 것일까? 놀랍게도 24일이나 지난 지난해 12월 12일, <문회보>가 보도한 내용이었다. 이 보도가 파문을 불러오자 기사 경쟁에 나선 여타 언론들은 똑같이 <문회보>의 보도 내용을 인용한 싱가포르의 영자지 <스트레이트타임스(Straits Times)>의 12월 24일자 보도를 인용하기도 했다.

24일 지난 미확인 보도 재탕... "확인되지 않았다"며 다시 보도하기도

대체 24일이나 지난 이 내용을 NBC 방송은 무슨 이유로 다시 끄집어낸 것일까? 당시 <문회보>의 보도는 한국과 일본 언론에도 알려졌지만, "중국계 홍콩 신문 원후이바오(文匯報)는 12일 북중 접경지역인 중국 단둥의 무역업자들의 말을 인용해 장성택과 관계가 있는 다수의 무역 당국자들이 처형됐다고 보도했다"는 정도로 보도되었다.

나머지 지금 다시 불거진 내용은 일부 보수 언론이나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언론 매체 등에서 조금씩 언급되기는 하였으나, 확인되지 않은 과도한 소문임을 파악한 외신을 포함한 대다수 언론 매체는 당시 이를 다루지 않았다.

그렇다면 <문회보>는 어떤 근거로 이러한 내용을 12월 12일 보도했을까? 위에서 NBC 방송이 인용한 내용 그대로 보도한 <문회보>는 당시 보도에서 "장성택은 5일 처형되었다"라고 했다. 하지만 출처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밝히지 않았다.

장성택 처형 관련 루머를 보도하는 <문회보> 12월 12일자
 장성택 처형 관련 루머를 보도하는 <문회보> 12월 12일자
ⓒ <원후이바오>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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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WP>는 이날(3일) 미국 언론들을 수놓은 북한 장성택 처형 관련 루머 보도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WP>는 그 첫째 이유로 "<문회보> 신문이 출처를 밝히지 않는 인기 위주의 기사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WP는 "언론 감시단체의 최근 보고서에서 <문회보>는 홍콩 21개 신문 중에서 신뢰도 19위를 자치해 늘 믿을 수 없는 매체로 평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날 미국 언론에서 불거진 북한 장성택 처형 관련 루머 보도 파문을 처음 시작한 미 NBC 방송도 첫 보도 내용에서 "이러한 내용은 NBC에 의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전제를 달았다. 하지만 이후 관련 보도가 물밀 듯이 터져 나왔고 급기야 NBC 방송은 "미 정부 관계자도 '여기에서는 그러한 종소리가 울리지 않는다'며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 기사에 추가했지만 이미 파문은 확산된 이후였다.

NBC 방송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중국 공산당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문회보>의 이러한 보도는 중국이 북한의 장성택 처형에 관해 불만을 나타내는 갈등의 신호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미 언론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럴듯한 분석 기사와 전문가의 인터뷰를 가미하면서 보도 경쟁을 이어 나갔다.

이에 관해 <WP>는 "일부 매체가 <문회보>가 중국계 신문이라 신뢰성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이나 베이징 중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른다"고 정면 반박했다. 이 매체는 이어 "<문회보>는 <신화통신>이나 <인민일보>처럼 중국 권력 핵심부에 가까이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진실 검증은 뒷전... 보도 '흥행'에 가장 좋은 먹잇감은 '북한'? 

<WP>는 이렇게 신뢰할 수 없는 루머가 미국 언론에 파문을 일으키는 이유가 "그 어떤 국가들보다도 북한에 관해서는 정보의 신뢰성이 없더라도 그럴듯하게만 쓰면 잘 먹혀들어가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WP>는 이어 "기자 출신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기사를 써도 잘 받아들여지며 특히, 기괴한(bizarre) 내용은 더욱 그럴듯하게 보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WP>는 이어 "북한 전문가들은 이러한 신뢰할 수 없는 루머를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북한 관련 내용들은 언론 매체들에 많은 흥행(hit)을 보장하는 경향이 있어 설사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더라도 언론사 편집부에서 우선 기사로 채택하고 본다"고 미 언론들의 북한 관련 보도 행태를 비판했다.

미 NBC방송에 의해 시작된 이번 보도 파문은 미국을 거쳐 전 세계 언론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프랑스의 <유로뉴스>는 "2014년 전 세계 언론의 첫 오보"라며 명백한 오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영국의 일간 <더타임스>는 "중국 당국의 첩보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내용이 공개된 것은 전통적인 동맹인 북한에 대한 중국의 불신을 반영한다"고 그럴싸한 분석을 곁들여가며 과장해 보도했다.

2014년 갑오년 새해가 밝아오자마자 '은둔하는 나라'라는 북한에 대해 서방 언론들은 어김없이 독자의 관심을 끌 먹잇감을 찾아 나서고 있다. 어쩌면 북한 내부 체제가 아니라 진실을 밝혀야 하는 책무를 가진 언론 특히, 서구의 언론들이 더 북한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만들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태그:#장성택 처형, #미국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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