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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결혼 20년 만에 처음으로 무려 일 주일 동안이나 집을 비우는 과감한 외출을 했습니다. 지난 4일부터 9일까지였습니다.  물론 제가 보내준 휴가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그동안은 아이들 문제도 있고 각자의 집안 사정도 있고 해서 장기간의 외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러던 것이 아이들이 커가고 따로따로 다녀온 여행의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우리도 식구끼리 여행 한 번 가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자들끼리 말이지요. 며느리와 시누이, 올케, 동서지간인 여자 넷. 바로 제 누이 둘과 형수님 그리고 집사람입니다.

어느 명절날 음식을 만들며 동그랗게 모여 앉아 소근소근 속삭이더니 짠!하고 황금빛 플랜을 내놓더군요. 모두들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에는 치명적 한계가 있었으니 바로 제 형님의 반대, 아니 반대도 아닌 절대로 안 될 것이라는 아줌마들의 이구동성으로 일치된 예상이었습니다. 그대로 진행할 경우 형수님이 빠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집안이 이렇게 화목하게 잘 지내는 데에는 형수님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었던 터라 아줌마들은 그녀를 빼고는 그냥 없었던 얘기로 하겠다고 굳게 결의하고 있었습니다. 계획은 여기서 딱 막혀 단 한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줌마들의 장미빛 환상이 그저 한순간의 허무한 꿈으로 끝나려 하고 있었던 순간이었지요. 바로 이때! 제가 나섰습니다.

몇 달, 뜸을 들이고 난 뒤 고기를 굽고 소주를 한 잔 하면서 살살 형을 구슬렀습니다. 객관적인 상황만을 따져 본다면 사실 형수님이 외국여행을, 그것도 일 주일씩이나 집을 비우고 다녀올 형편은 아닙니다. 먼 남쪽 지방에서 LPG 충천소를 하시는 형님은 내외분 둘이서 운영을 해야 했기에 한 분이 빠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남은 한 사람에겐 참기 어려운 고역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팔순이 넘은 노모가 계시고 조카 녀석들 둘이 있으니 밥 해 먹을 걱정도 해야 했지요.

그러나 저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형수님이 그동안 얼마나 고생 많았냐?" "여자들끼리 휴가 한 번 보내 주자!" "식구들끼리 가는 것이니 안심 할 수 있다"... 꿈쩍도 않을 것 같던 형이 의외로 순순히 "그러자!"고 하더군요. "밥은 어떻게 해 먹을 거냐?"고 묻자 "군대갔다 왔으니 다 할 수 있다!"며 자신감까지 피력했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식구끼리도 모르는 면이 한 가지씩은 있는 것 같습니다.

일은 급진전되었습니다. 즉시 여행경비를 모으기 위해 계좌를 트고 한 달 두 달 각자의 집으로부터 송금이 진행되었습니다. 누이들에게는 딸들이 엄마의 여행을 위해 자신들의 용돈을 털었고 형수님께는 시어머님이 또 경비를 보태 주었습니다. 장기간의 여행 준비를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만들어 의견을 교환하는 것 같았는데 둘째누이와 형수님은 자신들은 해외여행이 처음이니 뭐든지 하라는 대로 다 하겠다며 굽신굽신했다고 집사람이 웃으며 전하더군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 같았던 꿈같은 여행 준비를 하면서도 사실 이 아주머니들은 불안했다고 합니다. 언제 형님이 안 된다고 변덕을 부릴까 걱정했던 것이지요. 한 번도 형수님을 멀리 보낸 적이 없었던 터라 그럴지도 모른다 짐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나다를까! 완전한 반대는 아니었지만 형님이 슬슬 간섭을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행 일정을 제시하며 이리 가는 것이 어떠냐? 저리 가는 것이 어떠냐? 훈수를 두기도 하고 "여자들끼리 가는 것이 위험하지 않느냐?"며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왕에 가는 거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여정을 선택하도록 놔두자!" "패키지 여행은 위험하지 않다!"며 제가 다 다독였습니다. 사실 형님도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여행의 일정은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함께 묶어서 가는 것으로 했습니다. 큰누이가 지하철인가 찜질방인가 어디서 여행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더니 지나가던 어떤 아주머니가 자신의 남편을 소개해 주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조금 싸게 계약했다고 합니다. 참 겁도 없는 아주머니들입니다.

모두들 한 집안의 어머니들인 까닭에 떠나는 그녀들은 집걱정이 한가득이었습니다. 모든 집에서 곰국 끓이는 냄새가 진동을 했고 아이들에게 밥은 어떻게 짓는 것이고 빨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기에 바빴습니다. 와이셔츠는 일 주일분을 다려 놓았고 제 아침밥을 위해서 물만 붓고 끓여 먹으라며 누룽지도 한가득, 끼니별로 하얀색 비닐봉지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들이 떠났습니다. 결혼 20년 만에, 형수님과 누님들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랜만에 말입니다.

당장 그 다음날부터 자형들에게서, 형님에게서, 어머님에게서도 전화가 옵니다. 밥은 어떻게 해 먹으며 살고 있느냐고 말이지요. 저에게 묻고는 있지만 사실 이런 상황을 처음 맞아 보는 남자들이 자신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다 큰 딸과 아들들이 있기는 했지만 평생을 같이 하고 있는 옆지기의 부재는 그만큼 큰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일 주일을 벼텼습니다. 그야말로 가까스로 버텼습니다. 다려 놓은 와이셔츠를 입었고 다 만들어 놓은 누룽지를 먹는 것임에도 그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 지더군요. 큰아이의 말을 빌자면 "아버지가 한없이 무기력해 지더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돌아왔습니다. "당신 덕분에 너무 재밌고 좋았다!"는 환한 미소와 함께 말이지요.

"보내 주려면 친정 식구들하고 보내 줘야지 시댁 식구들하고 가는 것이 편하겠어?"라고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다 사람 나름이겠지요. 친자매같이 친한 동서 형님과 허물없이 지내는 시누이들이라 별 걱정은 없었습니다. 이번 여행으로 그녀들의 사이는 더 돈독해 진 것 같기도 하더군요. 한아름 유쾌한 여행담을 잔뜩 풀어 놓는 집사람은 한없이 행복해 보입니다. 저도 행복합니다.

다음에 또 보내 주고 싶습니다.


태그:#여행, #시누이, #올케, #동서, #시댁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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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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