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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思  婦  曲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남의 동네, 어두컴컴한 계단참에서 넘어져 발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던 아내.

아내는 아픈 다리를 끌고 택시비도 아깝다고 마을버스타고 집으로 왔다네.

처음에는 그저 괜찮겠지, 냉찜질하고 파스나 붙이다가 뒤늦게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미세 골절 - 발목뼈에 금이 조금 갔다네.

뼈에 금이 갔으면 많이가나 조금가나 그것이 바로 골절이지.

조금 가다만 금이 더 골치아프다네 이사람아!

초기에 대응을 잘했으면 지금쯤 다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의사한테 꾸중만 한 바가지 얻어 듣고 목발 짚고 온 아내.

남들에게는 병 키우지 말고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말은 잘 하더만.

내 일에는 어쩌면 그렇게 어두운가 답답한 사람아!

하늘 뜻 거스르지 않고 살아왔으니, 하늘이 당신을 지켜주시리라 믿었겠지?

물론 지켜주시지. 천운이 함께 했으니 그만했지 더 심하게 다쳤으면 어쩔 뻔 했는가?

그래도 사람이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을 찾으라는 진인사대천명의 귀한 말씀은 그냥 흘려듣고 말았는가?

가만 있으면 참을 만하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이것저것 돈 들어 갈 일도 많은 d연말연시라.

까닭 모르게 많이 나올 치료비 걱정도 없지 않았을 당신의 마음을 왜 내가 모르리오.

오늘 아침에도 깁스를 한 채로 절룩거리며 식구들 식사를 챙긴다며 부엌으로 베란다로 들락거리는 당신의 모습,

출근 준비하면서 양말을 신다 말고 올려다 보오.

당신을 바라보는 내 눈에 아까부터 뭔가 끼었는지 흐려져서 잘 보이지가 않네.

닦아도 닦아도 흐려진 안갯속처럼 당신의 모습이 뿌얘지네.

왜 이럴까 눈다래끼가 오려나?

방금 세수했는데....

출근해야 되는데...

나는 아픈 당신을 두고 출근해야 되는데...

아내는 가게와 사무실을 돌며 광고지를 돌리는 알바를 한다. 일을 하다보면 평지만 걷는 게 아니라 높은 건물을 오르내릴 일도 많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녀도 되겠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려는 욕심 때문에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을 아끼느라 주로 계단을 이용한다. 급한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면 위험하니 조금 늦더라도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하지만, 충분히 조심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다가 급기야 얼마 전에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계단에서 넘어져 발목이 삐끗한 것이다.

그날 퇴근해보니 아내가 자리를 깔고 누워있었다. 웬일인가 물어보니 머뭇거리던 아내가 죄지은 사람처럼 걱정스런 얼굴로 사정을 이야기 했다. 일이 거의 끝날 무렵, 5층 건물의 3층에서 2층으로 계단을 내려오다가 그만 허방을 짚어 넘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다행히 계단이 꺾어지는 지점의 마지막 계단이라서 구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동안 주무르다가 조심스레 다리를 추슬러서 집으로 왔다고 했다. 어떻게 왔느냐고 했더니 역시 아내는 또 머뭇거린다. 세 정거장 밖에 안 되는 거리라서 마을버스를 탔다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택시는 그럴 때 타라고 있는게 아니냐고. 한번 언성을 높이다 보니 화가 난 김에 계속 원망이 터져 나온다.

"왜 그 때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안 했어? 당신이 남편도 없이 혼자 사는 여자야? 당신 내 아내 맞아? 그리고 일을 하다 다쳤으면 현장에서 바로 병원을 가야지 집에는 왜 들어와?"

힘없이 장농에 기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내는 의외로 조용하다. 아내도 할 말이 없어서 듣고만 있는 것을 아닐 것이다.

말을 멈추고 아내가 덮고 있는 이불을 들추어 보았다. 얼음을 싸 놓은 타올이 젖어 있었다. 발목이 이미 꽤 많이 부어올랐다. 골절이 틀림없었다. 발목을 만져보니 얼음 기운 탓인지 서늘하다.

지금 시간이 밤 9시, 아내 말대로 넘어진 시간이 오후 네시 무렵이라면 벌써 다섯시간이 지났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아내를 재촉해서 옷을 입혀서 집을 나섰다. 지금 시간에 갈 곳이라면 종합병원 응급실밖에 없다. 택시로 10여 분 거리다.

계단에서 넘어졌다니까 사진부터 찍자고 한다. 판독 결과 역시 '좌족 미세골절'이었다. 부기가 빠지기를 기다려 이틀 후 통깁스를 했다. 그 후 아내는 1주일 정도 입원했다가 집에 왔다. 완전히 나으려면 한 달은 넘게 걸리니까 집에 가더라도 무리하지 말고 조심하라고 했다.


태그:#아내, #사부곡, #미세골절,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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