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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모욕죄로 유죄를 확정받고 군복을 벗은 이승엽 육군 전 대위
 MB모욕죄로 유죄를 확정받고 군복을 벗은 이승엽 육군 전 대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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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저녁, 진보성향의 팟캐스트방송 '이이제이' 녹음장소인 홍대의 '安家'에서 만난 그에게 물었다. "군복을 벗으니 후련한가? 아니면 아쉬움이 남는가?"라고. 그랬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맘이 편하다. 물론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군 생활 자체에 미련은 없다."

그를 옥죄던 군복을 더 이상 입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까?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편해 보였다. 지난해 10월 군에서 '제적'된 뒤 한 광고에이전시 회사에 들어가 현재 웹개발자로 근무하고 있다. 이렇게 그는 1년 6개월간 진행된 '상관모욕죄 사건'의 후유증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가카새끼" 글 올렸다가 '상관모욕죄'로 기소

군 검찰은 지난 2012년 3월 22일 육사 출신인 이승엽(30) 전 대위를 기소했다. 상관인 이명박 대통령을 모욕했다는 혐의였다. 그가 트위터에다 "맹박이 개새끼", "가카새끼" 등의 비속어가 들어간 글을 올려 이 대통령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군 검찰이 제시한 법률적 근거는 상관모욕죄를 규정한 군형법 제62조 제2항이었다(관련기사 :  육사출신 현역 대위는 왜 군사법정에 섰나?).

"군단 사령부에서 오라고 해서 갔더니 바로 7군단 검찰부로 데려갔다. 사전에 아무런 얘기도 해주지 않고 나를 기습적으로 데려간 것이다. 그리고는 군 검찰의 조사를 받고 진술서를 작성했다. 무서웠다. 이후 심적으로 많이 부담스러워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잤다. 그냥 깨어 있기만 해도 지쳤다."

'상관모욕죄'라는 용어가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군법교육 등을 통해 "부하들 앞에서 상관 험담을 하지 말라"거나 "술에 취해서 상관에게 욕설을 하면 안 된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관에 현역 대통령이 포함돼 있다고 인식하지는 못했다. 

"지난 2009년에 군인복무규율이 개정돼서 대통령도 상관에 포함됐다. 물론 그와 관련한 자료가 부대에 배포되긴 했지만 그것과 상관모욕죄를 연관시키지는 못했다. 상관은 '개체'지만 대통령은 '헌법기관'이다. 개인에게 통수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전제군주국가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에게 통수권이 있다고 해서 대통령 개인을 어떤 군인의 상관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징계받은 현역 군인은 장교 6명, 하사관 1명 등 총 7명으로 나타났다(관련기사 : MB 비방글로 징계받은 군인 수는?).

'MB 비방글'을 올린 이들에게 내려진 징계 가운데 최고 수준은 '감봉 3개월'이었다. 이 전 대위나 특수전사령부 소속 이상면 중사처럼 사법처리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리도 지독하게 찍혔을까?

"2011년 12월 나는 나꼼수 제보자였다"

"육사 생도 주소지 이전과 관련해 저랑 통화했던 후배를 기무사는 알고 있었다. 지인을 통해 그 후배를 소개받아 두 번 정도 통화했지만 그의 이름도 모른다. 그런데 기무사가 그 후배에게 전화해서 '이승엽 대위를 아느냐,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물었다. 결국 기무사가 제 통화기록을 들여다 본 것이다."
 "육사 생도 주소지 이전과 관련해 저랑 통화했던 후배를 기무사는 알고 있었다. 지인을 통해 그 후배를 소개받아 두 번 정도 통화했지만 그의 이름도 모른다. 그런데 기무사가 그 후배에게 전화해서 '이승엽 대위를 아느냐,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물었다. 결국 기무사가 제 통화기록을 들여다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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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지난해 9월 26일 'MB모욕죄 현역 대위는 나꼼수 제보자였다'라는 기사에서 이 전 대위가 지난 2011년 12월 6일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아래 나꼼수)의 일원인 정봉주 전 의원에게 '육사 생도 주소지 이전' 의혹을 직접 제보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나꼼수 방송을 한참 듣고 있었는데 정봉주 전 의원이 '육사에서 줄서서 투표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그런데 저는 '왜 생도들이 거기서 투표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도들은 자기 주소지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동안 부재자 투표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배 생도에게 물어봤더니 학교에서 주소지를 이전하라고 지시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정봉주 전 의원에게 팩트(fact) 전달 차원에서 제보한 것이다."

정봉주 전 의원은 이 전 대위의 제보를 바탕으로 나꼼수 방송 32회에 출연해 "육사생도가 800명 밖에 안 되는데 이들 표를 합치더라도 가져가는 표가 150~200표 밖에 안 된다"라며 "(여당이) 이 표가 절실할 정도로 굉장히 박빙을 예상하고 육사 생도의 주소를 옮기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10·26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와 2012년 4·11 총선을 앞두고 각각 281명과 175명 등 총 556명의 생도들이 주소지를 이전한 사실이 확인됐다(관련기사 : 육사 생도들, 재보선·총선 앞두고 주소지 대거 이전).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전 대위가 나꼼수에 '육사 생도 주소지 이전' 의혹을 제보한 지 3개월 뒤에 기무사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그의 트위터글을 군 검찰에 넘겼고, 군 검찰도 이미 사문화된 상관모욕죄를 적용해 그를 기소했다.

그런 점에서 기무사가 '어떤 경로'로 이 대위가 '육사 생도 주소지 이전' 의혹을 나꼼수에 제보한 사실을 포착하고 그를 사찰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기무사가 인터넷에서 '육사'라는 단어를 검색했다고 인정함으로써 의혹은 더욱 커졌다. 기무사의 한 간부는 지난 2012년 7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 군사법원 업무보고 자리에서 "군 검찰에 제출한 자료는 육사나 군대 등을 검색어로 검색해 캡처(화면 갈무리)한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관련기사 : 기무사는 왜 인터넷에서 '육사'를 검색했나).

그가 사법처리된 '특별한 이유'는 뭘까?

그런데 이 전 대위는 "기무사가 '인터넷'만 사찰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기무사가 '육사 생도 주소지 이전' 사실을 확인해준 후배 생도를 접촉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육사 생도 주소지 이전과 관련해 저랑 통화했던 후배를 기무사는 알고 있었다. 저는 지인을 통해 그 후배를 소개받아 두 번 정도 통화했지만 그의 이름도 모른다. 그런데 기무사가 그 후배에게 전화해서 '이승엽 대위를 아느냐,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물었다. 결국 기무사가 제 통화기록을 들여다 본 것이다."

이 전 대위는 "기무사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건으로 대학생과 말다툼을 벌이던 지난 2012년 3월 이전인 1월과 2월부터 내 트위터를 다 뒤졌다"라며 "기무사가 후배에게 전화했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나꼼수 제보'가 기무사 사찰의 (중요한) 원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기무사 사찰의 원인이 나꼼수 제보에 있다면 기무사는 어떻게 그것을 알게 됐을까? 지난 2011년 4월 첫 방송을 시작한 나꼼수가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큰 인기를 끌자 국정원 등 정보기관이 나꼼수를 주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점을 들어 일각에서는 도청 의혹 등을 제기하지만 사실로 드러난 것은 아직 없다.

배득식 당시 기무사령관은 지난 2012년 7월 26일 국회에서 "지난 2월 2일 육사로 검색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이 나와 해당 지휘관(7군단장)에게 첩보를 제공했고, 7군단장이 군검찰에서 수사하라고 조치한 것이다"라며 "기무사가 이 대위를 지켜볼 이유가 없다"라고 의혹들을 일축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명박 정부에서 MB 비방글을 인터넷에 올려 기소된 경우는 이 전 대위와 이상면 전 중사가 유일하다. 두 사람에게만 징계의 형평성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의 사법처리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전자는 나꼼수 애청자이자 육사 생도 주소시 이전을 제보했고, 후자는 나꼼수 일원과 친분이 있고 또다른 진보성향 팟캐스트방송인 '이이제이' 후원자였다.

"헌법기관으로서의 대통령을 조롱했다"

"유죄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다. 저는 개인 트위터 계정에 혼잣말을 했을 뿐이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글을 올린 게 아니었다. 수만건의 잡설 가운데 수십건의 잡설이었다. 그의 정책을 비판하기 이전에 그는 대통령으로서 자격 자체가 의심스러웠다."
 "유죄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다. 저는 개인 트위터 계정에 혼잣말을 했을 뿐이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글을 올린 게 아니었다. 수만건의 잡설 가운데 수십건의 잡설이었다. 그의 정책을 비판하기 이전에 그는 대통령으로서 자격 자체가 의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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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군사법정인 1심과 2심은 물론이고 대법원조차도 군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이 지난해 9월 26일 이 전 대위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대통령 모욕죄'의 부활을 공식화했다(관련기사 : 'MB 비난' 대위 유죄 확정...'대통령모욕죄' 사실상 부활). 이와 함께 깨어 있는 것만으로도 그를 지치게 했던 '상관모욕죄 사건'도 마무리됐고, 그는 4년여 근무했던 군으로부터 '제적'당했다.

"유죄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다. 저는 개인 트위터 계정에 혼잣말을 했을 뿐이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글을 올린 게 아니었다. 수만 건의 잡설 가운데 수십 건의 잡설이었다. 나꼼수를 들으면서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진 건 사실이다.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그는 결격 사유가 많은 사람이었다. 용산참사나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등 민주주의에 역행했다. 그의 정책을 비판하기 이전에 대통령으로서(의) 자격 자체가 의심스러웠다."

이 전 대위의 상관모욕죄 사건은 '제복을 입은 시민'인 현역 군인의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할 수 있는지를 두고 의미있는 사회적 논쟁을 불러왔다. 그를 변론했던 이재정 변호사는 공판 등을 통해 "군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정책과 정치이슈에 발언할 수 있고 현역 군인이라는 이유로 그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의 최종 결론은 결국 '군인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없다'였다.

"저는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헌법기관으로서의 대통령을 조롱했다. 한마디로 권력기관을 향한 조롱이었다. 대통령도 권력기관이기 때문에…. 차라리 장교로서 품위를 손상했다고 징계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저와 비슷한 이유로 징계를 받은 군인들이 있다. 하지만 저와 이 중사만 사법처리됐다. 어떤 사람은 인사상 행정처리로 끝내고, 어떤 사람은 기소했는데 도대체 그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 전 대위는 "나꼼수 제보가 괘씸죄로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라며 "그런 사태가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저와 이 중사를 시범 케이스로 삼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정치적 중립 위반'이었다. 보편적인 민족국가에서 자신의 (직무)권한을 이용해 특정정치단체에 이익을 주거나 피해를 주는 것을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전두환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대선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사이버사령부에 쉴드(방어)를 쳐주고. 대통령 후보를 정치적으로 비호했는데 공무수행의 일환이라며 그것에 면죄부를 주려 한다. 그러면서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개인의 활동에는 정치적 중립 위반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

"엔지니어로 소박하게 살고 싶다"

공교롭게도 이 전 대위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육사에 입학했다가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임관했으며,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제적'당했다. 이순신·맥아더 장군을 존경했고, 육사에 입학해 "제갈공명과 같은 전략가가 되겠다"던 그의 꿈은 상관모욕죄의 부활로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크게 후회하지 않는 눈치다.

"이 사건이 아니었어도 전역할 생각이었다. 군인이라는 직업의식도 없이 진급만 바라보고 사는 세태에 환멸을 느꼈고, 한 달에 야근만 100시간 넘는 등 노동조건도 가혹했다. 물론 이 사건으로 인해 심리적으로나 건강상으로 타격을 크게 입긴 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 IT 쪽에 관심이 많아서 쉽게 노선을 변경할 수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경력을 더 쌓고 싶다."

이 전 대위는 이젠 '이승엽 대위'가 아니라 '웹개발자 이승엽'으로 불려지고 싶어했다. "엔지니어로서 소박하게 살고 싶다"라며 "최대한 정부나 정치 이런 쪽과 엮이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그를 지켜본 기자의 촉으로는 적당한 때가 되면 다시 그의 비판적 지성이 반짝반짝 숨을 쉴 거라 믿는다.


태그:#이승엽, #상관모욕죄, #기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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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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