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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열 외교부 차관의 '급변사태' 발언을 보도하는 YTN
 조태열 외교부 차관의 '급변사태' 발언을 보도하는 YTN
ⓒ YTN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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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남북한 고위급 당국자 접촉에서 '상호 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기로' 뜻을 모은 합의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한국 정부 외교부 당국자가 공개 석상에서 '북한 급변사태'를 언급해 논란이 예상된다. 게다가 이 당국자는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발언을 급히 수정하는 등 경솔한 언행을 보여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지난 18일 국회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해 외교부의 판단은 무엇이냐"는 민주당 심재권 의원의 질문에 "상당히 과거와는 다른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진척되고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그는 "외교부 자체 판단뿐 아니라 여러 우방국을 비롯해 세계 도처에서 그런(급변사태)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관련 첩보나 정보도 증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심 의원이 "급변사태를 숨기면 안 된다"며 "비상사태라는 정황이 있느냐, 그 정황을 설명해 달라"고 추가 질의하자 조 차관은 "그렇게까지 해석했다면 제가 수정을 해야겠다"면서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식의 정보 분석에 기초해 말한 게 아니다"라고 한 발 물러섰다.

"북한 급변사태, 심상치 않다"... 증거는?

조 차관의 발언을 정리하자면, '북한 급변사태가 과거와는 다른 상황으로 진척되고 있으며, 관련 첩보와 정보도 증대하고 있다, 우방국이나 세계 도처에서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면서도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식의 정보 분석에 기초한 발언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조 차관이 외교부 고위급 관료로서 급변사태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를 비상사태에 따라 비상계획(컨틴전시 플랜)을 수립하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는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의 급변사태가 조만간에 일어난다'는 식으로 발언했다는 점이다. "심상치 않다" "정보가 증대하고 있다" "우방국의 문제인식도 높아지고 있다"는 조 차관의 발언을 통해 북한 내부 체제 혹은 북한 정권에 변동이 생기는 급변사태가 임박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뒤집어 생각해 보자. 북한 외무성 부상이나 노동당 부부장 등 차관급 인사가 "남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날 심상치 않은 상황에 전개되고 있다, 이에 관한 정보와 첩보가 증대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 우방국(중국·러시아 등)의 문제의식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면, 우리 정부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비방도 이런 비방이 어디 있나, 이건 중상모략'이라고 반응하지 않을까. 만약 이것이 비방이나 중상모략이 아니라면 발언을 한 북한 차관급 당국자는 급변사태에 관한 증거를 내놔야 할 것이다. 그런데, 증거를 요구하자 북한 당국자가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식의 정보 분석에 기초에 한 발언은 아니다"라고 꽁무니를 뺐다면? 우스운 모양새가 된다.

남북한은 고위급 당국자 접촉 당시 "남과 북은 상호 이해와 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도 이 합의에서 예외는 아니다. 외교부는 무슨 근거로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을 흘렸는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미 국가정보국은 "김정은, 권력 공고화" 보고 했는데...

조 차관은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의 배경으로 우방국을 거론했다. 하지만 한국의 우방국 중 하나인 미국에서는 조 차관의 인식과 다른 일이 벌어졌다. 지난 1월 29일 미국 국가 정보를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는 미 의회 상원 정보위 보고를 통해 "북한은 김정은 제1비서가 노동당과 군대를 젊은 측근 세력으로 대체하면서 권력을 공고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지난 14일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양국 외교부 장관 회담 및 기자회견에서 북한 핵 문제 등은 거론됐지만, 북한 급변사태가 이야기됐다고 알려지진 않았다.

조 차관은 "우방국과 세계 도처에서 급변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우방국 중 하나인 미국 내 대북 인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1월 29일 <미국의 소리>(VOA)는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 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결과, 전문가 중 다수가 "(북한이) 미래의 어느 시기에 붕괴는 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급변사태에 관해서는 전문가 중 단 한 명만이 "북한이 조만간(3~4년 내) 붕괴하는 등 급변사태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조 차관은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의 인식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연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이 급변사태에 관련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한 것이라고 예단할 수 있을까.

외교부 당국자의 입은 무거워야 한다. 설령 북한 급변사태에 관련한 첩보들이 있고, 이를 관련 기관을 통해 입수했다고 하더라도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서라도 북한 급변사태를 명확한 증거 제시도 없이 경솔하게 거론해서는 안 된다.

남북한은 상호 비방과 중상을 중지하자고 합의했다. 조 차관은 자신의 발언이 비방이나 중상은 아니라고 해명할지도 모르겠지만, 증거 제시 없이 "심상치 않다" 등의 말을 한 것은 문제가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요한 시기다. 외교부 당국자들의 신중한 언행을 당부한다.


태그:#북한 급변사태, #외교부,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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