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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이자 혈육보다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두 화가의 전시회.
 스승과 제자이자 혈육보다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두 화가의 전시회.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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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두 화가의 작품이 나란히 한국에서 전시 됐다.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展이 오는 3월 10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전은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로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 28점과 에곤 실레의 작품 25점을 소개한다.

전시회는 모스크바와 베이징, 하노이, 도쿄, 할리우드 등을 순회한 후 한국을 찾았다. 세계 순회 전시에선 클림트의 작품만 볼 수 있었지만 이번 한국 전시만을 위해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에곤 실레의 작품까지 함께 전시했다. 특히 에곤 실레의 작품은 국내에서 처음 전시되는 것으로 더 큰 기대를 끌고 있다.

두 화가는 스승과 제자 사이기도 했고, 클림트의 임종 때는 혈육 못지않게 절친했던 에곤 실레가 클림트의 마지막 모습을 그림 속에 담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에곤 실레는 스페인 독감으로 클림트와 같은 해(1918년)에 사망하게 된다.

작품은 진품이 아닌 레플리카(Replica, 복제품)라고 한다. 클림트나 에곤 실레처럼 유명 화가들의 대표작은 도난, 훼손 등의 문제로 미술관에서 대여를 꺼리기 때문에 해외전시가 성사되기 어렵다. 이런 경우에 작품을 동일한 재료, 방법, 기술을 이용하여 똑같은 모양과 크기로 원작을 재현하는 것인 레플리카를 제작하여 전시회를 한단다. 미술·공예 등의 많은 분야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이것은 단순한 모사(模寫)나 인쇄기술에 의한 복제품과는 구별된다고.

황금빛 화려한 에로티시즘의 화가 클림트  

팜므 파탈의 이미지가 담긴 클림트의 대표작 유디트(Judith).
 팜므 파탈의 이미지가 담긴 클림트의 대표작 유디트(Judith).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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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림만큼이나 화려했던 20세기 오스트리아 문화 황금기의 대표적인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와 그가 후원인, 스승 역할을 하며 아껴준 표현주의, 독특한 에로티시즘의 화가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의 작품을 한 장소에서 감상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둘 다 시대를 앞서가는 아르누보 양식을 추구하고 보수적인 오스트리아 '빈 미술가협회'에서 탈피하여 '빈 분리파'를 결성한 진보적이고 독창적인 화가였다.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Art Nouveau)는 1890~1910년 사이 유럽에서 미국, 남미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으로 유행한 미술 양식이다. 새로운 예술 양식에 대한 목마름으로 촉발되어 기존의 예술을 거부하고 모든 분야에서 새롭고 통일적인 양식을 추구하고자 한 당시 진보적인 미술가들의 도전, 전환기의 시대적 요구와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일종의 예술운동이다.

생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듯 화려하고 장식적인 클림트의 작품들과 달리, 인간의 음울한 고뇌와 욕망을 그려낸 실레의 작품들은 극명한 대비와 묘한 감흥을 일으켜서 흥미와 몰입을 이끈다. 클림트의 작품은 팜므 파탈의 관능적인 여성 이미지와 찬란한 황금빛, 화려한 색채를 특징으로 한다.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은 화폭에 담겨진 화려함에 금세 매혹되고 만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수많은 여성들을 사랑하고 모델로 그렸던 구스타프 클림트 특유의 황금빛 그림.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수많은 여성들을 사랑하고 모델로 그렸던 구스타프 클림트 특유의 황금빛 그림.
ⓒ 디렉터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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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가던 아르누보 스타일의 클림트의 작품은 에로티시즘을 강조했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성(性)과 사랑,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 같은 상징이 담긴 그림으로 당대는 물론 후대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황금색채의 화려함에 압도당하다가도 밀려오는 사랑의 허무함에 애태우게 되기도 하는 클림트의 황금빛 유혹. 강렬하지만 어딘가 슬픔이 담긴 그림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애와 그의 시대를 그린 장편소설 <클림트 -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이라는 제목은 그의 그림 경향을 잘 말해 주는 듯싶다. 특히 여자가 남자를 감미롭게 유혹한 후 파멸로 이끈다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이미지가 가장 잘 드러나는 유명한 대표작 <유디트(Judith), 1901>와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림으로 완성했다는 <키스(The kiss), 1907> 앞에선 많은 여성들이 걸음을 멈추고 감상하고 있었다.

전시장에 보이는 여러 작품들에서처럼 그의 시선은 항상 여성들을 향해 있었고 그 결과 누구보다 매력적이고 관능적인 여성을 표현한 명작을 남길 수 있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빈의 카사노바'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었는데 사망 후 14명의 여인들이 친자 확인 소송을 할 정도였단다. 그가 구현한 예술처럼 사랑에 대해서도 이상주의자이자 자유인이었나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인물화 외에도 클림트가 그의 연인과 휴가를 보냈다고 하는 오스트리아 아터 호수에서 그렸던  풍경화들도 볼 수 있어서 특별하다. 아기자기한 색채로 표현된 호수와 주변 풍경이 보석을 박아 놓은 듯 화사하다. 그의 장식적인 표현이 그대로 반영되어 반짝이는 느낌의 사랑스러움이 묻어난다. 클림트의 풍경화는 여타 작품들과 달리 모네를 연상시키는 가볍고 자유로운 붓의 느낌과 아기자기한 색감으로 가득하다.

인간 존재의 고독과 불안을 그린 에곤 실레

유독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나르시스트 에곤 쉴레.
 유독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나르시스트 에곤 쉴레.
ⓒ 디렉터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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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빈,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합스부르크 왕가가 몰락하기 직전 화려함과 불안함이 뒤섞인 도시를 무대로 활동했던 에곤 실레는 스물여덟 아까운 나이에 스페인 독감으로 요절한 독창적이고 잊기 힘든 그림을 그린 화가다. 초기엔 스승이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독자적인 스타일의 작품을 완성시켜 나가게 된다.

점차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내밀한 관능적 욕망,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독과 불안에 천착하여 인간의 육체를 왜곡되고 뒤틀린 형태로 묘사했다. 자화상을 남기지 않은 클림트와 달리 실레는 다양한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는 자화상마저 영혼이 없는 목각인형처럼 그렸다. 비정상적으로 꺾인 머리와 긴 목, 메마른 나뭇가지를 연상시키는 왜소한 몸체는 자신의 몸에 대한 어떠한 애정이나 연민도 없었다. 그의 성장 배경이나 삶, 예술에 대한 가치관이 몹시 궁금해지는 작품들이 이어진다.

쉴레의 작품 <추기경과 수녀>, 밑으로 노출된 다리가 인상적이다.
 쉴레의 작품 <추기경과 수녀>, 밑으로 노출된 다리가 인상적이다.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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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죽음에 대한 묘사가 적나라할 정도로 솔직하고 생생하다. 여인과 소녀들을 모델로 한 누드화는 지금 봐도 자극적이어서 20세기였던 당시엔 종교적 사회적으로 많은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은 성적인 욕망을 다루었지만 에로틱하다기보다는 그로테스크한(괴기하고 극도로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일관된다. 음울하고 거칠며 의심과 불안에 싸여 있다. 때때로 작품의 배경을 여백으로 비워두어 고독과 단절감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실레에게 성적 욕망이 클림트와 달리 죽음과 고통의 다른 말이었던 사연 있다. 그의 아버지가 성병인 매독으로 고통 받던 끝에 미치광이가 되어 죽음을 맞이했던 유년의 아픈 기억. 당연히 그에게 성욕은 곧 죄악이었을 것이다. 그는 어른이 되어 성에 눈을 뜨고 몸에 변화를 느끼면서도 이를 두려워하고 혐오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실레는 1918년 유럽의 주요 전시회에 여러 차례 참가하면서 평단의 주목과 재정적인 안정을 받게 되고, 예술적으로, 경제적으로 클림트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게 되면서 결혼도 하게 된다.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가족>이라는 작품을 완성하면서 행복했던 시절도 잠깐, 같은 해 10월 그의 아내가 당시 유럽을 휩쓸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하고, 그 자신도 독감에 감염되어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잃은 지 사흘 만에 짧은 생을 마친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많은 천재적인 화가들이 그러했듯, 그도 당대엔 힘겨운 화가의 길을 걸었지만, 시대의 불안과 실레 자신의 내면적인 고독, 욕망, 혼란이 뒤섞인 작품들은 현대인들에게도 공감대를 얻게 되었다. 특히 급진적이고 강렬한 화풍은 젊은 세대에게서 큰 인기를 끄는 화가가 되었다. 실레도 그것을 예견했을까, 전시장 내 그의 사진 밑으로 아래와 같은 말이 써있다.

"이제 나는 세상과 작별한다.
떠나는 것, 죽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죽고 세월이 지나면 사람들은 나의 예술을 찬양하고 경배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ㅇ 관람일정 ; 3월 10일까지
ㅇ 관람시간 ; 오전 11시 ~ 오후 7시
ㅇ 입장료 ; 일반 12,000원 / 청소년(만13세-만18세) 10,000원 / 어린이(만6세-만12세) 8,000원
ㅇ 문의 ;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02-580-1300)



태그:#구스타프 클림프, #에곤 쉴레, #예술의 전당 , #오스트리아 , #아르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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