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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두화라고 하는 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수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꽃송이가 어른 주먹만큼이나 큼지막하니 참으로 복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꽃은 피어나는 곳에 따라 꽃 색깔이 조금씩 다릅니다. 엷은 미색을 띠는 꽃이 있는가 하면, 엷은 남색을 띠는 꽃도 있고, 엷은 분홍색을 띠는 꽃도 있습니다.

꽃 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종자가 다른 것은 아닙니다. 불두화는 뿌리를 내리고 있는 흙, 자라고 있는 곳 토양 산도에 따라 이렇게 꽃 색깔이 다르다고 합니다. 즉, 불두화는 자라나는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꽃 색깔이 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불두화만 그런 건 아닙니다. 개나리도 그렇고, 벚꽃도 그렇고, 진달래도 그렇습니다. 어떤 해는 일찍 피고, 어떤 해는 늦게 펴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알고 보면 개회시기를 결정하는 적산열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꽃 피는 시점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감수성이라는 게 있을 리 만무한 꽃도 이렇듯 생장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꽃 색깔이 다르거늘 인간이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성격이나 심리적 구조 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어쩜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고려왕 34인을 심리학으로 해부한 책

 <심리학으로 보는 고려왕조실록>(지은이 석산/평단문화사/2014.4.18/1만 4000원)
 <심리학으로 보는 고려왕조실록>(지은이 석산/평단문화사/2014.4.18/1만 4000원)
ⓒ 평단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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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고려왕조실록>(지은이 석산/평단문화사)은 500년 고려사를 움직인 고려왕 34인이 펼친 정치사에 얽힌 생사고락, 권모술수, 권력을 향한 광기 등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결론이지만 왕건은 고려를 건국해 500여 년을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다진 성공한 태조가 되었지만,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워 스스로가 왕이 되었지만 결국은 실패한 군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왕건이 성공하고 궁예가 실패한 데는 두 사람이 자라난 배경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은 궁예는 갓난아기 때부터 목숨을 위협 받으며 자랐습니다. 이런 성장 배경을 갖고 있는 궁예는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유기감(遺棄感)과 함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궁예의 이러한 내면적 상처는 군주가 된 이후에도 의심과 강박증에 빠트리고 과대망상에 잡히게 해 스스로의 지도력을 상실하게 해 결국은 실패한 군주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반면에 아주 안정된 조건에서 성장한 왕건은 자라나는 과정에서 만족 지연 능력을 습득해 서두르지 않고, 포용력을 키워나가니 이러한 심리상태는 성공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심리적 프리즘을 통해 본 고려왕 34인, 34인 34색

책에서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부터 고려 마지막 왕이었던 34대 공양왕까지 34인 왕이 펼쳤던 청치사적인 과정과 결과를 심리적 프리즘으로 통해 분석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종의 동성애는 기질적으로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환경 탓이라고 볼 수 있다. 남성의 동성애 조건에 대해 임상적으로 관찰한 프로이트는 지배적인 어머니와 수동적인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경우를 꼽았다. 아버지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적대적인 파괴적 부성애를 겪고 자란 아들의 경우 동성애자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 <심리학으로 보는 고려왕조실록> 129쪽

그렇다면 현종이 성국이 되는 데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일까? 현종은 두 살 때 아버지를 만나 여의기 전가지 3년간 친밀감을 나누었다. 한창 말을 배울 시기에 할아버지뻘인 아버지에게서 애달픈 사랑을 받았다. 늙고 기구한 운명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 <심리학으로 보는 고려왕조실록> 138쪽

고려왕 34명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34인 34색입니다. 역사적으로 추앙받을 만큼 선정을 펴고 훌륭한 업적을 기록하고 있는 왕도 있지만, 백성들을 공포에 떨게 한 폭군 왕도 있습니다. 무능력하고 허수아비 같은 왕이 있었는가 하면 자주적으로 왕권을 행사한 왕도 있었습니다.

동성애에 빠진 왕도 있었고, 음주가무에 빠져 정사를 팽개친 왕도 있었습니다. 불교를 최고의 가치로 삼은 왕도 있었고, 숭유억불로 불교를 배척하던 왕도 있었습니다. 34명의 왕이 펼친 34색의 정치사 이면에는 생장과정의 환경과 조건 등이 직간접적으로 반영돼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고려 왕조에서 가장 어두운 그림을 남긴 혜충왕은 경계선 성격 장애자였다. 그의 부모나 성장 환경은 초자아를 통합할 기회를 주지 못해 충혜왕은 죄책감을 느끼는 기능이 형성되지 않았다. 따라서 원시적인 자기애적 충족과 이상적 자아가 구별되지 않았다.
-<심리학으로 보는 고려왕조실록> 281쪽-

지도자의 성장과정 시민이 알아야 하는 이유

불두화는 토양 산도에 따라 색깔이 다른 꽃이 피어납니다. 따라서 토양 산도를 미리 안다면 새로 심은 불두화가 어떤 색깔의 꽃으로 피어날지를 미리 알 수 있을 겁니다. 역사적 결과만을 놓고 보더라도 어떤 지도자의 심리는 그가 행사하는 지도력에 직간접적으로 반드시 반영됩니다.

그러기에 지도자, 특히 대통령과 같은 최고 지도자를 선출할 때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심리를 가능한 자세하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지도자의 심리를 제대로 예측할 수 있다면 그 지도자가 어떤 지도력(정치)을 펼칠 것인지를 미리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지도자의 심리를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볼 수 있는 수단은 바로 그가 자라온 배경이나 생장 과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로 나서는 사람들은 그 성장과정까지가 낱낱이 공개되어야 하고, 유권자들은 이를 알아야 합니다.

책에서는 500년 고려사를 움직인 고려왕 34인이 펼친 정치와 생사고락, 권모술수, 관력을 향한 광기 이면에 스며있는 심리를 심리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을 통해 고려왕조를 조명해 봄으로 정치와 권력에 반영되는 지도자의 심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심리적 속성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안목이 길러지거나 틔워질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심리학으로 보는 고려왕조실록>(지은이 석산/평단문화사/2014.4.18/1만 4000원)



심리학으로 보는 고려왕조실록 - 고려 왕 34인의 내면을 통해 읽는 고려사

석산 지음, 평단(평단문화사)(2014)


#심리학으로 보는 고려왕조실록#석산#평단문화사#왕건#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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