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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을 지키는 개들 (카주라호)
 사원을 지키는 개들 (카주라호)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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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먹을 것을 구걸하거나 성가시게 따라오지 않았다. 비쩍 마르고 움푹 꺼진 눈은 검박한 수행자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대지에 밀착한 채 잠들거나 이방인들의 무리 사이를 태연히 돌아다니는 일만이 대부분의 하루 일과처럼 보였다. 사원의 개들...

인도에서는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개들이 많았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행을 하는 동안 그 개들이 사람을 향해 짖는다거나 위협을 가한다거나 하는 일은 보지 못했다. 오히려 온갖 탈 것들이 뒤엉킨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개들이 불안해 보였는데, 결국 사단이 나고 말았다.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는 유명 관광지 이름값을 하느라, 릭샤왈라(릭샤꾼)들의 바가지와 거드름이 일상화된 곳이었다. 우리 가족은 이른 오전 시간부터 움직였다. 차량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우리가 탄 오토릭샤(삼륜차)는 제법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 사이를 곡예하듯 빠져나가면서도 속도는 줄이지 않았다. 운전을 하는 릭샤왈라의 어깨 너머로 지나가는 강아지 한 마리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깨갱!"

릭샤는 멈추지 않고 내달렸고, 우리 가족은 삐져나오는 탄식을 목구멍으로 삼킨 채 얼어붙었다. 강아지가 죽은 건지 그저 다치기만 한 건지 릭샤왈라에게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지점을 살펴보았지만, 바닥에는 아무런 흔적조차 없었다. 교통이 복잡한 인도에서 아무리 로드킬이 흔하다고는 하지만, 잠시 다녀가는 여행자가 탄 릭샤에 치인 그 강아지의 운명도 참.

돌이켜 보면 잘못한 일이었다. 곧바로 릭샤를 멈췄어야 했다. 그렇게 치고도 내달리는 릭샤왈라는 무자비하고 무감각했다. 아니, 먹고 살기 팍팍한 릭샤왈라는 그렇다 쳐도 나라도 릭샤를 세웠어야 했다. 세워서 강아지의 상태를 살폈어야 했다. 그게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것을.

인도에는 극도의 불살생을 교리로 삼는 자이나교가 있다. 자이나교의 수행 높은 수도승은 나체를 고집한다. 그들의 불상도 벌거벗은 모습이다. 옷을 만들면서 살생을 하게 될까 두려워 옷을 입지 않고, 농사를 짓게 되면 벌레를 해치게 될까봐 대부분 상업에 종사한다.

채식주의자들인 건 당연하고, 벌레가 많은 뿌리 채소들(감자, 양파, 마늘, 당근 등)을 먹는 것조차 꺼린다. 그들은 벌거벗은 모습으로 털채와 작은 물주전자만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는 발길에 미물조차 밟힐까 염려해 앞길을 털어내거나, 자리에 앉을 때 생명체가 깔리지 않도록 쓸어내기 위해서이다.

어떠한 생물도 해치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는 자이나교도들에게 생명의 경중이란 있을 수 없을 테지만, 그러나 어쩌랴. 나는 아무래도, 짐승보다는 사람의 목숨이, 살만큼 산 백 살 노인의 목숨보다는 다 피지 못한 청춘의 목숨이 가슴 찢어지도록 더 더 안타까운 것을. 

자이나교의 수도승들은 옷을 입지 않는다.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명체를 해치게 될까봐. 그래서 그들의 불상도 벌거벗고 있다.(카주라호)
 자이나교의 수도승들은 옷을 입지 않는다.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명체를 해치게 될까봐. 그래서 그들의 불상도 벌거벗고 있다.(카주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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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3년 1월 한달 동안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델리→조드뿌르→아그라→카주라호→바라나시→아우랑가바드(아잔타 석굴)→뭄바이
우리 가족의 여정은 이러했지만, 제 여행기는 여행의 순서를 따르지 않습니다.
엽서 한 장 띄우는 마음으로 씁니다.



태그:#자이나교, #카주라호, #인도의 개들, #인도, #인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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