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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밥은 먹었는가?"
그가 손짓 발짓을 총동원해 내게 물어왔다.
▲ 사두 : 인도의 도 닦으시는 분 "그대, 밥은 먹었는가?" 그가 손짓 발짓을 총동원해 내게 물어왔다.
ⓒ 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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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동네였다. 오렌지색 터번을 두른 채 길가에 앉아 있는 수십 수백 명의 사두들이 모두 웃고 있었다. 입을 활짝 벌리고 누렇게 물든 이를 드러낸 채!

다른 동네처럼 동양에서 온 여자를 반기느라 웃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혼자서 웃고 있는 것이다. 수염을 길렀거나, 뒤엉킨 채 먼지투성이인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매달았거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냈거나, 상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거나, 서 있거나, 앉아있거나, 누워 있거나, 늙었거나, 젊었거나!

인도인 사두들 틈에 '나도 수행자요'라는 표식으로 가사를 챙겨 입은 채 끼어 앉아 있는 젊은 서양인조차도, 흐뭇하게, 기쁘게, 즐거워죽겠다는 표정으로! 하하하... 그거 참... 덩달아 나도 웃으며 호숫가로 들어섰다. 

인도 푸쉬카르의 신성한 호숫가. 이곳에서 기도하면 좋다... 라고,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해주곤 했다. 전생의 업이 사해지는 것인지 앞으로의 인생에 축복만이 가득한 것인지 정확한 건 아무도 말해주지 못했지만.

"어서 오시오!"

저 앞에 앉아있던 제법 근엄해 보이는 사두가 양팔을 활짝 벌리며 나를 맞이했다. 그는 노란색 화사한 꽃 한 송이를 내 손에 쥐어주더니, 청하지도 않았는데, 내 이마에 붉은 가루를 묻히고 기도를 하려고 폼을 잡았다.

"잠깐 잠깐, 난 안 할래요."

이 순간에 잠시 멍을 놓았다가는 순식간에 기도비로 어마어마한 돈을 강탈 당할 수도 있다는 소문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던 참이었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사두를 따돌리느라 정작 기도는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호숫가를 빠져나와 발길이 향한 곳에서 나는 아름드리 나무를 발견했다. 

'옳다쿠나!'

나는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감았다. 잠시라도 조용히 머무르고 싶었다.

"헬로!"

침묵의 순간이 몇 초나 지속되었을까, 여지없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등장했다! 대답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알고 있었다. 한 번의 대답이 곧 하루 종일의 만담이 되어 버릴 것이라는 것을. 목소리는 물을 것이다.

"어디서 왔니? 어디로 가니? 결혼은 했니? 가족은 몇 명이니? 왜 혼자 왔니?..."

묻는 말에 일일이 성실하게 대답해서 이야기를 마칠 때쯤이면, 또 다른 이가 다가와 똑같은 질문을 반복할 것이고, 또 다시 이야기를 마칠 때쯤이면, 대여섯 명이 둘러싸고 앉아 또다시 같은 대답을 요구할 것이다. 때론 반갑게, 신이 나서 이야기 나누기도 했었지만, 인도땅을 여행하며 수백만 번쯤 대답한 듯한 이 대화를 오늘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목도 아프고, 기운도 없었다. 그러자면,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한 척 앉아 있는 것이 상책이었다. 몇 번 더 말을 시키다가 대답이 없으면 가주지 않을까...

"헬로! 헬로!"

하지만, 목소리는 집요했다. 게다가 기대하지 않았던, 또 다른 목소리들이 등장했다. 여러 개의 목소리가 "헬로!" "헬로!" 내 대답을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살짝 실눈을 뜨자, 그 사이 나를 구경하고자 모여든 수십 명의 마을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대했던 나의 응답이 없자, 이들은 나를 가리키며 저마다의 추측을 피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무리 안에서 한 사람이 오른손가락으로 자신의 옆통수를 가리키며 빙빙 돌리는 것이 보였다. 순식간에, 나는 미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조용히 해!"

그때, 검은 수염을 기른 삐적 마른 사두가 지팡이를 휘휘 돌려 사람들을 양옆으로 물러나게 한 뒤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자신만이 위엄 있는 현자이며, 따라서 이 난해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거침없이 물었다.

"그대, 벙어리지?"

나는 무심한 척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두는 동네사람들을 돌아보며, 큰소리로 선언했다.

"이 사람은 벙어리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어떤 이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사두는 심문을 계속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그는 나를 벙어리라고 선포해놓고는 대답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미 벙어리 신세가 되어버린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네팔!"
"스리랑카!"
"몽골리아!"
"파키스탄!"

나를 대신해 동네사람들이 웅성웅성, 저마다 알고 있는 이웃나라 이름을 주워 섬겼는데 정작 나로선 가보지 못한 나라들뿐이었다. 사두가 큰 소리로 물었다.

"부탄이냐?"

부탄이라니? 처음 듣는 나라 이름에 실눈을 크게 떠 그를 바라보자, 나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사두는 사람들을 향해 엄숙하게 선언했다.

"이 사람은 부탄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졸지에 나는 듣도 보도 못한 부탄이라는 나라에서 온 '말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이 떠들어댔다. 아이고, 불쌍해라. 말도 못하는데, 돈도 없어 보이네. 밥은 챙겨 먹었을까 쯧쯧쯧... 그러자 사두가 두 팔을 휘저으며, 펄쩍 펄쩍 뛰어가며, 열심히 내게 그의 호의를 전달했다.

"그대, 밥은 먹었는가? 내가 그대에게 밥을 베풀겠다! 그대에게는 영광된 자리이니, 부디 사양하지 말지어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나는 그만 풋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그토록이나 엄숙한 척 하던 사두가 낄낄낄 웃음을 터뜨렸고, 그 모습에 온 동네 사람들이 손바닥까지 쳐대며 하하하 웃어댔다. 한 바탕 온 마을이 떠나가게 웃어댄 후, 신이 난 사두가 머리 위로 지팡이를 번쩍 들어 휘휘 휘둘렀다.

그러자 마을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공간을 터 길을 만들어줬고, 사두는 큰 목소리로 "가자!"하고 외쳤다. 사두의 권위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고, 나는 사두와 마을사람 모두의 기쁨을 위해 기꺼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두의 뒤를 따라갔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나를 벙어리라 믿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소리내지 않고'!!!


태그:#인디아, #인도, #사두, #여행,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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