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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오늘,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과거 언젠가 외세의 압제와 전근대적 폭압 속에서 민족의 해방과 자유를 꿈꿨던 시대가 있었다. 그 때 이 사회 최고의 가치는 독립이고 자유였다. 또 언젠가 모두가 가난하고 배고픈 상황 속에서 우리도 남들처럼 잘 살아보자고 외쳤던 시대가 있었다. 그 때 이 사회 최고의 가치는 부강이며 성공이었다. 우리의 지난 역사는 한 사회를 관통하는 지배적 가치가 형성되면 그것이 구성원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마침내 사회 전체가 변화함을 증명한다. 지배적 가치가 사회를 통합하고 나아가 건강한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사회는 공통의 가치를 잃어 버렸다. 그리고 가치가 사라진 자리에 오직 내가 갖기 위해 남을 이겨야 하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남아 있다. 함께 걸어가다 지쳐 쓰러진 동료의 배낭을 대신 짊어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흘러간 미담으로 남았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지쳐 쓰러진 자를 외면하고 내 걸음만 서두르며 심지어는 지친 자의 배낭을 뒤지는 이들을 모른척 지나친다. 이처럼 효율의 논리가 지배하는 경쟁의 길 위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사회의 외면 속에 소외되고 주변화된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으로 부각된 절대적 빈곤과 사회적 타살의 문제, 남양유업 사태로 촉발된 갑을문제 등은 모두 우리사회 속 이기심의 창궐과 연대의 붕괴를 증명하는 명징한 사례다. 우리는 더이상 '같이' 가지 않는다.

오는 8월 '같이'의 가치를 잃어버린 한국사회를 한 사람이 찾아온다. <타임>지가 뽑은 2013년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교황 프란치스코가 바로 그다. 지난해 봄 12세기 만에 처음으로 비유럽권 최초로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수장에 선출된 인물, 그러나 <타임>지가 그를 올해의 인물로 꼽은 것에는 그 이유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빈민의 성자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추앙하는 것으로 알려진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이후 소탈하고 파격적인 행보로 전 세계에 '프란치스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프란치스코 신드롬의 중심에는 '같이의 가치'가 있다. 젊은 사제 시절부터 병들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던 프란치스코의 태도는 교황이라는 가톨릭 교회 최고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고 평가받는다. 취임 후 그는 스스로 몸을 낮추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먼저 다가서는 소탈한 모습으로 그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해줬다.

나아가 그는 스스로를 낮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회의 쇄신과 세상의 변화까지를 역설했다. 그는 교회가 복음으로 회귀해야 함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자본의 논리에 지배되는 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연대의 가치가 붕괴되고 약자를 주변부로 내모는 세상 속으로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러지 못한 교회를 쇄신하려는 그의 개혁적 행보는 마치 교회를 비판하고 가난한 자와 병든 자의 곁으로 나아갔던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끔 한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회를 그 본질로 복원시키고 그로부터 세상의 잃어버린 가치들을 되돌리며 마침내 소외된 사람들을 구해내려는 한 명의 종교적 개혁가다. 그리고 그의 개혁은 낙오된 이의 배낭을 대신 짊어지는 연대의식의 복원, 즉 '같이의 가치'를 회복시키는 것과 닿아 있다. 무너진 가치 속에서 가난과 폭력에 내몰린 사람들을 다시 같이의 가치 안에 품으려는 프란치스코의 예수적 리더십에 대중이 호응하는 현상이 곧 프란치스코 신드롬의 본질이다.

작금의 한국사회는 같이의 가치가 파괴되는 흐름이 그 어느 곳보다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경쟁과 이기심을 조장하는 세태가 만연하고 빈익빈 부익부가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으며 낙오된 이들을 끌어안아야 할 사회안전망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취임사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소외된 국민들을 포용해 함께 가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지난 철도노조 파업, 밀양 송전탑 문제, 세월호 참사 등에서 정부는 불통과 독단, 권위주의적 리더십으로 일관했다. 또 각종 규제완화와 공기업 민영화가 사회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에도 이러한 정책이 추진될 것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작은 목소리는 소외되고 큰 목소리만 반영된다는 믿음 속에서 사람들은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좀처럼 쓰러진 이웃에 손을 내밀지 않는다.

가치가 사라진 한국사회에 새로운 가치가 자리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같이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 효율의 논리로 구성원을 소외시키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 나아가 건강한 사회통합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해법은 같이의 가치를 회복시키는 것 뿐이다. 오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이 더욱 반가운 이유이다.


태그:#프란치스코 신드롬,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교황, #타임지 올해의 인물, #같이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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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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