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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국이라는 우리나라를 생각해 봅니다. 집에 돌아가도 어머니, 아버지가 없어 자정 가까운 늦은 밤까지 불빛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심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200만 명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힘겹게 폐지를 수집하러 다니는 노인들이 170만 명이 넘는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범죄 청소년이 10만 명에 이르는데, 그 중에서 5범 이상의 범죄 청소년이 만 명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OECD 34개국 중에서 자살률이 1위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요. 게다가 용산 참사에 이어, 밀양과 제주도 강정마을의 갈등, 세월호 참사, 윤일병 살해를 비롯한 군부대의 불안 등이 민심을 요동치게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304명의 목숨이 생중계되는 TV화면을 통해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터무니없이 사라졌습니다. 예사로 목숨을 걸고서 자신의 억울한 입장을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동자들의 처절한 사회를 향한 호소가 줄을 잇습니다.

쌍용자동차의 대량해고에 따른 폭력적인 노사갈등과 강압적인 진압이 있은 뒤 해고 노동자들 2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다시피 했지만, 최근 대법원에서는 고등법원에서 위법해고라고 판결한 것을 뒤집고서 합법해고라고 최종 판결하였습니다. 대법원이 회사의 입장을 두둔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복직 기회를 박탈해 절망과 분노의 눈물을 삼키게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유명 재벌회사의 공모주 행사로 누군가는 업적과는 상관없이 순식간에 수조 원의 재산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1인당 GDP가 3만 달러에 육박하여 확실하게 중진국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국가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유아 보육지원이냐, 초·중·고등학교의 무상급식이냐를 놓고서 줄다리기를 하면서 그나마 겨우 복지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기초적인 복지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국제 정세를 보면, 동아시아가 새로운 경제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오히려 한·중·일을 둘러싼 영토분쟁과 역사분쟁으로 외교 군사의 긴장이 한껏 높아지는 가운데 남북분단으로 인한 한반도의 갈등과 긴장이 중첩된 채 도무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전 세계에서 제대로 전시작전통제권을 갖지 않은 나라가 부탄과 우리 한국뿐이라고 하는데, 그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지 않겠다고 통사정을 해서 언제 돌려받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국무총리 후보들을 비롯해 장관직 후보로 지명된 인물들이 예사로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인물들임이 드러나 심지어 국회청문회도 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 후보직을 사퇴하는 등의 인사 난맥이 줄을 잇더니, 알고 보니 비선 조직의 라인이 배후에서 국정을 농단하는 식으로 되지도 않은 사적인 권력을 휘둘렀다는 신문기사가 대서특필 되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비정상의 비극적인 일들이 줄줄이 일어나면서 바탕에서부터 사회 전체가 뒤흔들리고 있다는 징후와 증거들이 속출하는 데도 어느 하나 정상적으로 해결되는 일이 없습니다. 검찰을 위시한 이른바 공권력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공권력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게 민주공화국입니까? 민주공화국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정치권력이 자신의 본분을 알아야 합니다. 정치권력은 흔히 말하는 권력과 다릅니다. 흔히 말하는 권력은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인간관계를 배타적인 방향으로 주인과 노예로 가르는 것입니다. 진짜 권력은 철학자 미셀 푸코가 말한 것처럼 그물처럼 촘촘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배타적인 사회적 권력입니다.

배타적인 사회적 권력은 배타적인 부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짜 권력은 나의 사회적인 생명을 위해 남들의 자연적 생명과 사회적 생명 그리고 문화적 생명마저도 수단으로 삼아 지배하고 조절하고 훈육해서 그 남들을 노예로 길들여 거기에서 발생하는 감각을 최대한 배타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에 자본주의적인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배타적인 부가 그 핵심적인 수단으로 결합되는 것입니다.

정치권력은 이러한 배타적인 사회 권력과 그 바탕의 수단이 되는 부에 법을 통해 재갈을 물려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하기 위한 권력입니다. 정치권력은 권력에 대한 권력, 즉 메타 권력입니다. 말하자면, 정치권력은 권력을 없애기 위한, 권력 아닌 권력인 것입니다. 따라서 배타적인 사회 권력과 부가 함부로 약육강식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일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정치권력의 본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능하면 최소한의 노예 상태라 할지라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정치권력입니다.

그 결과, 함께 즐기지 않으면 안 되는 문학과 예술, 축제와 스포츠 등을 비롯해서 학문과 종교 등의 영역을 통해 구현되는 문화적 생명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한껏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정치권력입니다. 요컨대 정치권력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민주적이면서도 공화적인 삶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몽테스키외의 탁월한 선구적인 주장에 따라 현대 민주사회의 정치권력이 입법과 행정과 사법이라는 이른바 삼권으로 분립되어 작동한다는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를 적과 동지로 나뉘는 집단적인 대립 관계로 봄으로써 배타성을 정치의 근본 성격으로 본 칼 슈미트의 생각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왜곡된 마키아벨리즘적인 사유 방식 역시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정치권력이 배타적인 사회 권력과 부의 수단으로 전락된다는 것이 어느 한쪽에서라도 확인된다면, 그런 만큼 그 정치권력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배타적인 집단 또는 개인의 사유물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만큼 그 정치권력을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권력 아닌 정치권력입니다. 뻔히 힘든 현실을 알면서도 통치권을 장악하기 위해 온갖 유혹의 공약들을 내 거는 것 자체가 이미 정치권력을 개인 또는 기껏해야 몇몇 소수의 사유물로 삼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치는 한 번 태어나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인간이 과연 어떻게 자신의 삶을 최대한 긍정할 수 있는가를 과제로 삼아 이루어지는 것이고, 따라서 정치야말로 근본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도덕적이고 동시에 철학적인 것입니다. 정치는, 첫째로 어떻게 하면 한 사회 내에서 생산되는 온갖 재화와 용역들을 최대한 평등하게 그리고 정의롭게 배분함으로써 공화적인 전체의 삶을 추구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둘째로, 정치는 한 사회 내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용역들이 어떤 가치와 의미를 지닌 내용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셋째로 결국 정치는 한 사회 내에서 어떻게 하면 모두가 함께 향유하면 할수록 더욱 그 의미와 가치가 높아지는 내용들을 생산하는 쪽으로 힘을 모을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 전체의 생산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정치권력, 즉 입법과 행정과 사법의 공권력이 행사되어야 합니다.

현실이 가혹하게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고 해서 이를 핑계로 본분과 이상을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면, 그것으로 정치는 이미 제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서 기어들어간 꼴이고, 진정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면 정치권력은 이미 최고도의 악행을 저지를 준비를 끝마친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 ①항의 근본정신을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장관들, 여의도의 국회의원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법부의 판사들이 처음부터 다시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조광제씨는 현재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으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법비리, #민주공화국, #쌍용자동차 해고 합법, #공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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