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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온순하게 보이는 동물은 토끼가 아닐까. 아이들의 동심을 한껏 즐겁게 해주는 토끼때들이 반가웠다.
▲ 경북중앙고속도로 영주방면 군위휴게소에 있는 '토끼나라' 토끼장 이 세상에서 가장 온순하게 보이는 동물은 토끼가 아닐까. 아이들의 동심을 한껏 즐겁게 해주는 토끼때들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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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경 어느날, 후배가 일하는 세차장에 놀러갔다가 마당 한켠에 가는 쇠창살로 둘러싸인 작은 우리 속에 있는 토끼를 보게 되었다. 귀엽고 앙증 맞은 토끼였고 나는 가까이 앉아 들여다 보며 즐거워했다.

셀프세차장인 후배의 일터에서 내 손으로 직접 세차를 끝낸 뒤 귀여운 토끼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토끼를 찾았다. 후배가 하는 말이 공짜로 줄테니 가져가서 키워 보라고 했다.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과연 내가 토끼를 키울 수 있을지, 집에서 아내가 반대하지는 않을지 오만 생각이 머릿속을 순간 스치고 지나갔다.

후배는 토끼똥은 냄새도 별로 안나고 얌전해서 키우기에 좋을 거라며 토끼 자랑을 했다. 본인은 바빠서 토끼를 돌 볼 시간이 없다면서 믿고 맡길 수 있는 토끼 주인을 찾는다며 내가 적격이라고 치켜세웠다.

일단 토끼를 데려다 키우다가 잘 키울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된다는 말에 혹해 자그마한 우리에 든 토끼를 통째로 차에 실은 채 학원 사무실로 데려 왔다.

아내와 아이들이 귀엽다며 반겨줬고 내심 토끼를 키우자는 데 반대 의견이 없어서 무난히 토끼를 거두게 되었다. 암컷인 토끼인지라 이름은 '수지'로 지었고 우리의 동거 생활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지난 2013년 8월에 하늘나라로 갔다. 수지여사는 5년간을 함께 살며 우리에게 즐거운 추억을 많이 안겨줬다.
▲ 2009년부터 2013년도까지 함께 산 애완용 토끼 수지여사 지난 2013년 8월에 하늘나라로 갔다. 수지여사는 5년간을 함께 살며 우리에게 즐거운 추억을 많이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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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토끼를 키우는 것, 잘 키워볼려는 생각에 인터넷에 토끼동호회에 가입해 자세한 자료들을 수집해 보았다. 토끼는 우리 속에 가두어서 키우면 3년에서 4년 정도 밖에 못 산다고 했고, 풀어 놓아 키우게 되면 10년 이상을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스트레스 안 받고 잘 뛰어 다니며 잘 먹으면 오래 사는 건 인간이나 토끼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학원 강의실을 돌아다닐 수 있게 풀어 놓은 채 키우게 되었다. 먹이는 알파파라는 풀을 주식량으로 하고 인조사료와 함께 먹여야 한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잔뜩 준비해 수지의 배가 굶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다.

후배의 말대로 토끼똥은 그다지 역한 냄새가 나지 않았고 동글동글한 토끼똥은 치우기도 편했다. 그리고 오줌도 한 곳에 가려 누는 토끼의 특성으로 인해 생각보다 관리하기 쉬웠다. 게다가 의자에 앉아 있으면 다리 밑으로 와 알짱거리며 놀아달라고 애교를 부렸고, 무릎 위에 앉히면 더없이 좋아하는 토끼 수지였다.

1년 간을 키우다 보니 정이 들 대로 들었고 좀 더 잘해 주기 위해 신경이 갔다. 혼자 지내는 수지가 외로울 것 같아서 수컷 한 녀석을 친구로 데려다 놓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내와 상의해 대형 마트로 곧장 달려가 전에 봐두었던 토끼를 입양해 데려왔다. 태어난 지 6개월 된 수컷 토끼였고 이름은 '수진'이라고 지었다.

어린 수진이었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번식능력이 생긴다고 들었다. 그런데 입양해 오자마자 며칠 뒤부터 수지에게 교미를 시도했고 수지는 완강히 거부하며 수진이가 접근할 때마다 혼내주곤 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감히 어른에게 수작 부린다는 모양새로 나오는 수지여서 웃겨 보였다.

수지도 수진이와 함께 있어 즐거운지 늘 후다닥 쫓아다니며 뛰어 놀기를 좋아했다. 전에 홀로 있을 땐 그다지 뛰어 다닌 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수지와 함께 한 지 1년이 지나고 나서 학원 강의실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름 깔끔하게 관리했던 강의실인데 벽의 아랫 부분이 뜯겨 나가기 시작했고, 은근한 토끼의 똥냄새와 오줌냄새가 온 강의실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토끼들은 동그란 똥을 누는데 그다지 냄새가 나지 않고 오줌은 한장소에서만 눈다.
▲ 군위휴게소 토끼나라에 있는 토끼들 토끼들은 동그란 똥을 누는데 그다지 냄새가 나지 않고 오줌은 한장소에서만 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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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조금씩 조금씩 학원강의실의 벽지를 찢어내기도 하고, 내가 손수 만들어 강의실 복도에 둔 나무 벤치를 갉아먹는 수지와 수진이었다. 소파의 밑부분은 이미 구멍이 나 너덜너덜한 지경에 이르렀다.

토끼는 번식력이 왕성한 동물이다. 그런데 수지와 수진이의 동거생활이 몇 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 수지와 수진이 둘 중에 하나가 어딘가 이상이 있지나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명절을 쉬고 되돌아 온 어느날, 학원 강의실 복도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보니 복도 한 모퉁이에서 뭔가 조그만 물체가 만화 <톰과 제리> 속 제리처럼 쏜살같이 지나간 느낌이 들었다. 수지와 수진이는 내 다리 밑에서 놀고 있었기에 난 별달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들었다.

그러나 다음날 똑같은 복도 모퉁이에서 흰솜뭉치 같은 것이 굴러다니듯 지나치는 것을 보았고, 순간 새끼가 아닐까 생각들어 쫓아가 보니 역시나 복도 모퉁에 구석에 있는 구멍난 소파 속에 새끼 토끼들이 바글거렸다. 6마리 정도였다.

신기했고 놀라웠다. 태어난 지 이주일은 된 듯했다. 주먹만한 크기의 토끼들이 그동안 밤늦게 사람이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돌아 다녔을 거라 생각하니 더욱 앙증맞고 귀여웠다. 일순간에 토끼 군단이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새끼를 낳은 수지를 난 이때부터 '수지여사'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럭 자랐고, 학원은 토끼천국이 되어갔다. 매일 매일 토끼들이 배설한 똥과 오줌과의 전쟁이었고 토끼떼들은 학원의 벽지를 시도때도 없이 갉아서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갔다. 토끼들은 앞니가 계속 자라 이를 갈아야만 하는 동물이다.

자녀의 교육문의를 위해 학원을 찾는 학부모들은 토끼냄새와 너덜해진 학원의 모습에 실망해서인지 상담을 받곤 그냥 가버리기 일쑤였다. 토끼를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어 어떤 학부모는 제발 좀 토끼를 치워 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이러한 학부모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공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이 동물과 함께 어울리며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를 바랐다. 아이들의 인성 교육에 더없이 좋은 것이 동물을 키우는 거라고 늘 마음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토끼를 키우다보면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 토끼가 새끼도 낳게 되고 때가 되면 죽는 것도 보게 된다. 생명체가 태어나고 자라며 먹이를 주어 기르는 모든 과정을 겪다보면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을 겪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도 배우게 된다고 한다.

깊은산속 옹달샘을 찾는 토끼의 노랫말처럼 토끼는 아이들의 마음을 더욱 순수하게 만들어 준다.
▲ 군위휴게소 토끼나라 토끼들 보며 신기해 하고 귀여워하는 아이 깊은산속 옹달샘을 찾는 토끼의 노랫말처럼 토끼는 아이들의 마음을 더욱 순수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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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수지가 새끼를 놓은 뒤로 몇 달 간격으로 걸핏하면 새끼를 낳았다. 토끼의 수가 20마리를 넘어서게 되어 주변 곳곳에 분양하기도 하고 토끼를 키우는 곳에 갖다 주기도 했다. 때로는 양지바른 야산에 방생까지도 했다. 그 와중에 태어난 약한 새끼가 스스로 버티지 못해 죽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13년, 그 어느해 보다도 무더웠던 8월의 여름에 토끼 수지여사는 더위를 먹고 죽고 말았다. 후배로부터 입양해 온 지 만 5년이 되던 때였다. 정이 들어 그 슬픔이 더 했지만 수지여사가 죽기 1년 전에 새끼가 죽은 것을 경험하고 난 뒤라 나름 아이들과 함께 의연히 대처했다.

그 후로 토끼는 우리 학원에서 키우지 않게 되었고 대신 진돗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동안 토끼 수지여사를 비롯해 수진이와 새끼들이 바글거리던 때를 잊어 버리고 살다가 토끼 가족과의 추억이 아련히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몇 일 전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영주로 올라가던 중 군위 휴게소에 들렀는데 이곳에 토끼를 키우는 '토끼나라'가 있었다.

토끼나라의 토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금물이다. 토끼는 정해진 풀과 사료만 줘야 배탈이 안난다.
▲ 군위휴게소에는 가족들이 함께 휴식을 취하며 놀다갈 수있는 토끼나라가 있다. 토끼나라의 토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금물이다. 토끼는 정해진 풀과 사료만 줘야 배탈이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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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부터 있었지만 잘 정비해 놓아 멋들어지게 보이는 토끼 우리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다가갔다. 몇 년 전에 부대끼며 살았던 토끼 떼를 이곳에서 다시 보니 옛일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수지와 가족들이 그리웠다. 우리를 한바퀴 돌며 들여다보다가 전에 없었던 신기한 구조물을 보게 되었다. 바로 토끼 아파트였다.

계단을 자연스럽게 익숙하게 오르는 토끼를 보니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 토끼나라에 있는 토끼 아파트 계단을 자연스럽게 익숙하게 오르는 토끼를 보니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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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토끼가 계단을 따라 한층 한층 올라가더니 어느새 맨 위쪽까지 올라가 있었다. 토끼의 집이 될 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전에 내가 키우던 토끼떼들에게도 이런 집을 만들어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사실 토끼떼가 학원에 득실되던 당시에는 강의실을 온통 폭탄 맞은 것처럼 만들어 놓는 토끼떼들이 미워서 한 강의실에 몰아 넣어 키웠다. 그 후로는 그다지 넓은 공간에서 뛰어 놀지 못했던 수지와 토끼가족들이었다. 만약 그때에 이러한 토끼 아파트가 있었더라면 토끼들은 나름 재미있게 아파트 위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들락날락 거리며 운동도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한때 토끼로 인해 즐거웠고 나름 버거웠던 적도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모두들 그리운 추억이 되어 버렸다. 인간의 생애보다 짧은 삶을 사는 토끼들이지만 왕성하게 번식하고 오손도손 잘 살아가는 토끼가족들이 마음 편하고 행복해 보인 하루였다.

토끼 수지여사의 가족들은 학원 강의실벽을 비롯해 바닥을 지저분하게 만들었지만, 더불어 함께 살며 즐거운 추억을 많이 남겨준 존재였다.
▲ 점잖은 풍채의 토끼 수지여사 5살때 모습 토끼 수지여사의 가족들은 학원 강의실벽을 비롯해 바닥을 지저분하게 만들었지만, 더불어 함께 살며 즐거운 추억을 많이 남겨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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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유통신문>과 <한국유통신문>의 카페와 블로그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군위휴게소, #토끼나라, #한국유통신문 오마이뉴스 후원, #구미김샘수학과학전문학원 수학무료동영상 강의, #토끼똥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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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빨간이의 땅 경북 구미에 살고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우리네 일상을 기사화 시켜 도움을 주는 것을 보람으로 삼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힘이 쏫는 72년 쥐띠인 결혼한 남자입니다. 토끼같은 아내와 통통튀는 귀여운 아들과 딸로 부터 늘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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