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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은 한반도 육지부의 남단, 경상남도 남부 연안의 중앙부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고성군청이 고성을 소개한 글이다. '육지부'와 '중앙부'와 같은 낯선 말을 빼도 말이 된다. 다른 말로 바꾸어볼까.

'고성은 한반도 남쪽 끝자락, 경상남도 남쪽바닷가 한가운데에 있다.'

널돌, 판돌로 쌓아 반듯한 것이 차진 찰시루떡 같다
▲ 고성 학동마을 담 널돌, 판돌로 쌓아 반듯한 것이 차진 찰시루떡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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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성, 경남 고성(固城)

고성(固城)은 단단한 성이라는 뜻. 고려 때 철성(鐵城)이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고성과 뜻이 다르지 않다. 고성은 소가야 터전으로 알려져 있다. 가야유적으로 송학동에 고대무덤이 남아있다. 고성사람들은 '똥메산'으로 부르는 무기산 능선 타고 7기의 무덤이 봉긋봉긋 솟았다.

무덤능선 길도 그렇지만 고성바닷가 곁을 구불구불 따라다니는 1010번지방도로는 어머니 젖가슴 더듬듯 들어가는 푸근한 길. 굽이마다 굽은 인생처럼 굽은 사연을 달고 있다. 그 가운데 한 굽이는 제전마을 상족암. 1010지방도로 곁, 하이면 덕명리 바닷가에 있다.

다듬고 깎기를 수천 년, 신이 걸작을 선보였다. 시루떡같이 켜켜이 쌓인 퇴적물, 상족암(床足岩). 침식동굴로 생긴 네 바위가 밥상머리 닮았다하여 이렇게 부른다. 마을사람들은 발자국이 많다하여 쌍족암(雙足岩), 그냥 '쌍발이'라 한다. 코끼리다리 같다하여 상족암(象足岩)이라 부른 이도 있다. 모두 그럴 듯하지만 '쌍발이'에 가장 마음이 간다.

켜켜이 쌓인 시루떡 같은 퇴적층, 바닷물이 깎고 다듬어 걸작을 만들었다
▲ 상족암(床足岩) 켜켜이 쌓인 시루떡 같은 퇴적층, 바닷물이 깎고 다듬어 걸작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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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은 세월이 낳은 고을이다. 아주 먼 옛날 청동기시대나 2000년 전 소가야는 찰나에 불과하다. 일 억 년 전에는 공룡이 이 땅의 주인이었다. 상족암 바닷가는 공룡이 집단으로 서식한 '공룡 큰 마을'이었다. 공룡발자국 천지다. 모두 3000여개의 발자국이 있다. 이제 공룡발자국 위에 제전마을사람이 발자국을 보태며 살고 있다. 

학동(鶴洞)마을 흙돌담

상족암에서 10여리 떨어진 곳, 하일면 학림리에 학동마을이 있다. 350여 년 전,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던 최균(崔均)의 고손자 최형태(崔亨泰)가 이곳에 터 잡은 뒤 마을을 이루어 전주최씨 집성촌이 되었다. 학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라 학동마을이라 하였다.

상족암 퇴적층이 학동돌담으로 다시 태어났다. 상족암이 신이 만든 걸작이라면 학동마을 담은 사람이 만든 '모조품'. 신한테 한수 배운 게다. 마을 뒷산 수태산에서 난 널판 같은 널돌, 판돌로 차지게 쌓아 찰시루떡처럼 보인다. 맨 아래쪽은 돌로만 쌓고 그 위에 판석과 황토를 번갈아 쌓았다. 맨 위에는 기와나 짚 대신 구들장 판석을 얹었는데 그 모양이 갓 쓴 양반 같다.

상족암은 신이 만든 대작, 학동마을 담은 인간이 만든 ‘모조품’. 차지게 싼 찰시루떡 같은 담은 구들장 판석을 이고 있어 갓 쓴 양반 같다
▲ 학동마을 담 상족암은 신이 만든 대작, 학동마을 담은 인간이 만든 ‘모조품’. 차지게 싼 찰시루떡 같은 담은 구들장 판석을 이고 있어 갓 쓴 양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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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한가운데에 최씨 종가가 있다. 종손과 종부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다. 작년에  집을 크게 손본 뒤, 도배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는 옷에 먼지를 뒤집어썼다며 무안해하였다. 할머니는 집수리하는 틈을 타 집을 비웠는지 막 점심을 손수 차려먹었다 한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겠지만 그래도 뭐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겠지.

이 집 주인 종부와 종부, 할머니와 할아버지 신이다. 어느새 몰려온 햇살이 두 양반 신을 따뜻하게 데웠다
▲ 섬돌 위의 신발 두 켤레 이 집 주인 종부와 종부, 할머니와 할아버지 신이다. 어느새 몰려온 햇살이 두 양반 신을 따뜻하게 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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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는 온통 돌담. 사랑채는 한 단, 안채는 두 단 '축담'을 쌓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신전 앞에 한없이 몸 낮춘 인간을 나타내려한 걸까. 널돌만으로 아주 납작하게 쌓았다. 사랑채와 안채사이에 헛담을 쌓긴 했는데 안채가 훤히 보여 이름대로 이 담은 헛담, '공갈담'이다. 산청에서 시집올 때 종부의 긴장한 얼굴처럼 매화는 헛담에 몸 숨기며 수줍게 피었다. 

납작한 돌로 축담과 돌담을 쌓고 그 위에 집과 사당을 올렸다. 축담,  돌담 모두 신전 앞에 납작 엎드린 인간을 표현하려한 듯 납작하게 쌓았다.
▲ 종가 안채와 사당 납작한 돌로 축담과 돌담을 쌓고 그 위에 집과 사당을 올렸다. 축담, 돌담 모두 신전 앞에 납작 엎드린 인간을 표현하려한 듯 납작하게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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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흙마루에 있는 것은 무엇인고? 언뜻 보면 굴뚝같은데 자세히 보면 아니다. 뭘까? 닭장이다. 상상도 못했다. 닭을 해치려 살쾡이가 자주 산에서 내려와 마루 바로 앞에 닭장을 만들었다는 것. 닭장위의 넓은 판돌은 쓰임새도 가지가지, 가을에는 고추말리고 볕 좋을 때 식기 말리는 살강으로 쓰였다.   

축담(지대)위에 굴뚝 같이 생긴 것은 닭장이다. 안채 토방 앞에 있는 것도 그렇지만 이렇게 생긴 닭장은 처음 본다
▲ 흙마루(토방)앞 닭장 축담(지대)위에 굴뚝 같이 생긴 것은 닭장이다. 안채 토방 앞에 있는 것도 그렇지만 이렇게 생긴 닭장은 처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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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건물은 사당이다. 조상 신주를 모시는 곳이니 정성을 다할 밖에, 성 쌓듯 돌담을 쌓아 그 위에 사당을 모셨다. 전망도 좋다. 할아버지는 이 마을에서 제일 전망 좋은 곳이라 자랑한다. 이웃 최영덕 고가 지붕과 담, 마을이 훤히 보인다.

마을 구멍들, 배려와 과학이 숨었다

이 마을에는 네 군데 속 깊은 구멍이 있다. 여기에는 과학과 철학이 숨어 있다. 단순히 아름다운 것만으로 돌리기에는 섭섭한 그 이상의 경지. 같이 하려는 마음, 배려와 같은 의(義)나 선(善)의 문제이며 결국 의와 선을 뿌리에 두고 있는 미로 귀결된다. '구멍의 미학'이랄까.

네 구멍 가운데 하나가 종가곳간에 있다. 매화가지에 살짝 몸을 감춘 곳간, 흙벽에 줄줄이 널돌을 먹였는데 처마밑 구멍이 궁금하다. 대나무 구멍이 숭숭나있다. 곳간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장치라는데 구멍 개수를 세 보았다. 한 줄에 7개 씩 모두 28개다. 공교롭게도 별자리 '28수(宿)'와 같은 개수다. 얘기하기 즐겨하는 할아버지한테 좋은 얘깃거리 하나가 더해졌다. 

곳간 처마 밑에 28개구멍이 뚫려 있다.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장치라는데 공교롭게도 별자리 28수와 같다
▲ 종가곳간 처마구멍 곳간 처마 밑에 28개구멍이 뚫려 있다.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장치라는데 공교롭게도 별자리 28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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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 바로 옆집은 최영덕 고가. 종가에서 분가하여 매사(梅史) 최태순이 지은 집이다. 아자문, 팔각문, 격자문들로 사랑채를 꾸민 맵시하며 연못 딸린 정원에 물길을 낸 디테일이 범상치 않다. 담 밑, 250년 묵은 동백은 꽃 덩어리를 차마 떨구지 못한 채 가지에 붙잡아 놓았고 두 가지가 붙어 한 몸이 된 모과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시시덕거리는데 반대편 담에 기대선 매화는 그러거나 말거나 매화 향 피우며 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사이에 헛담을 쌓았고 헛담 아래와 안채 앞마당에 낮은 굴뚝을 두었다. 낮은 굴뚝은 밥불 연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려는 주인의 고운 마음씨. 헛담에는 구멍 세 개가 있다. 안채에서 사랑채나 바깥움직임을 살피라 뚫어 놓은 구멍이라 들었다. 낮은 굴뚝은 바깥세상에 대한 배려고 헛담 구멍은 집안사람에 대한 배려다.

최영덕 고가의 낮은 굴뚝은 주인의 고운 마음씨. 헛담 구멍은 구멍으로 바깥살피라는 안사람에 대한 배려의 구멍이다.
▲ 헛담 구멍과 낮은 굴뚝 최영덕 고가의 낮은 굴뚝은 주인의 고운 마음씨. 헛담 구멍은 구멍으로 바깥살피라는 안사람에 대한 배려의 구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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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는 기특한 담 구멍이 또 있다. 대문 양쪽 담에 어른 키 높이에, 아기 머리만한 구멍이 뚫려있다. 배고픈 바깥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주거나 갖다 놓았던 구멍이라 하는데 바깥사람들이 집안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배고픔을 달래라는 배려의 구멍이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주거나 갖다 놓던 구멍이다. 바깥사람들에 대한 배려의 구멍이다
▲ 최영덕고가의 바깥담 구멍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주거나 갖다 놓던 구멍이다. 바깥사람들에 대한 배려의 구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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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옆 샛문 밖에는 우물이 있다. 네모로 다듬은 화강암 덮개로 덮여있고 구멍 세 개가 뚫려 있다. 마을의 네 번째 구멍이다. 그냥 우물 숨구멍 같은데 천·지·인 또는 장수·부귀·자손번성을 뜻한다고 한다. 나도 하나 덧대볼까. 천원지방(天圓地方), 네모난 화강암 덮개는 땅을, 동그란 구멍은 하늘을 나타낸다.

화강암 우물 덮개에 세 개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 우물 숨구멍으로 보이는데 천·지·인, 장수, 부귀, 자손번성을 뜻한다 한다.
▲ 우물구멍 화강암 우물 덮개에 세 개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 우물 숨구멍으로 보이는데 천·지·인, 장수, 부귀, 자손번성을 뜻한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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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받으며 찾아간 육영재(育英齋), 마을을 벗어나 학동마을 서쪽에 있다. 최씨 집안의 후손을 가르치던 재사(齋舍)인데 몇 그루 아름드리나무가 그럴싸하다. 육영재 담은 학동마을 담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이러고 보면 '구멍에 고인 속 깊은 학동마을문화'는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었다. 교육이나 삶을 통해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손자로 이어지고 있었다.

나오는 길에 마을들머리에 마련된 서비(西扉) 최우순(1832~1911) 순의비(殉義碑)가 눈에 밟혔다. 서비는 서쪽 사립문이라는 뜻인데 나라를 잃고 일본이 있는 동쪽은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다짐하며 지은 호(號)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일제가 명망가를 꾀려고 합방의 콩고물로 은사금(恩賜金)을 내리자, 다른 양반들이 뛸 듯이 기뻐할 때 서비는 자결로써 거부하였다.

과연 학동에는 이런 인물이 나올만한 뿌리 깊은 문화가 자리 잡고 있던 것. 무심하게 순의비 겉만 훑고 들어갔다가 학동마을을 돌고 난 뒤에야 유심히 다시 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순의비 담 뒤에서 매화가 한얀 꽃을 터트리며 남몰래 그를 기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3월6-7일까지 남쪽바닷가 여수, 고성에 다녀와 쓴 글입니다



태그:#학동마을, #고성, #상족암, #판석돌담, #최씨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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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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