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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고전이니까', '이건 누구누구가 추천해 준 책이니까', '이건 제목이 마음에 드니까', '이건 내가 알고 싶은 내용을 담고 있으니까' 등등 한 권의 책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다가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손에 잡히는 책을 읽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책이 너무나 재미있으면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이럴 때면 가슴을 쓸어 내리며 생각한다. 이 책을 읽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설득의 심리학> 표지
 <설득의 심리학> 표지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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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도 가슴을 쓸어 내리며 읽은 책 중 하나였다. 책은 구성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심리 실험 과정과 그 결과를 담고 있는 전체적인 모습은 일반 대중심리학 책과 비슷했지만, 이 책만의 독특함은 이야기를 다 풀어낸 후에 드러났다. 매 챕터의 끝에 다다르게 되면 만날 수 있는 저자의 깨알 같은 조언, '자기 방어 전략' 때문이었다. 심리학 책에 웬 자기 방어 전략이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기 방어가 필요한 이유는 이렇다. 바로, 설득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누군가가 우리의 심리를 이용해 우리를 설득하고 있고, 우리는 그들에 의해 설득 당해 원치 않는 행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심리학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를 조금 더 잘 통제하기 위해서? 이 모든 게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입장은 조금 더 확고하게 사회적이다. 그는 말한다. 심리 실험을 통해 밝혀진 인간의 "자동화되고 고정관념화된 행동"을 이용해 악의적으로 불로소득을 얻고 있는 설득 전문가들에 더 이상 속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을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하는 심리 유발기제를 능수능란하게 주물럭거려 큰 이득을 얻고 있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책에서 그는 우리가 어느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실험을 통해 살펴줌과 동시에 이럴 때 취할 적절한 방어전략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꼼꼼히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쉽게 설득 당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움직여서 구매한 물품이 어디 한두 개뿐일까. 매일같이 보게 되는 광고를 제작하는 광고제작자들은 우리보다 더 우리의 심리를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광고를 보면 볼수록 우리의 장바구니가 불룩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더 우리 심리를 잘 알고 있어 우리를 쉽게 유혹해대는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설득의 법칙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크게 총 6가지의 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상호성의 법칙, 일관성의 법칙, 사회적 증거의 법칙, 호감의 법칙, 권위의 법칙, 희귀성의 법칙이 그것이다. 이 법칙들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나는 왜 그간 길거리에서 받고 싶지 않던 사탕을 받아 놓곤 시간이 없음에도 설문에 응해주게 되었던 건지, 처음 받아들인 인상이나 이론, 가치관은 왜 그리도 버리기가 어려웠던 건지, 시도 때도 없이 왜 주위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던 건지, 비슷한 세계관이나 성격을 지닌 사람을 보면 왜 쉽게 마음을 열게 되었던 건지, 스스로는 주체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왜 번번히 '전문가'들의 말에 의존하게 되었던 건지, '마감 임박'이라는 문구만 보면 왜 버튼을 누르고 싶었던 건지를 말이다.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 사회적 증거의 법칙

저자가 설명하는 6가지 설득의 법칙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법칙은 제 3의 법칙인 '사회적 증거의 법칙'이었다. 이 법칙이 무엇인지를 간략히 소개해 보려 한다. 제노베스라는 20대 여자가 뉴욕에서 살해된 이야기를 보자.

새벽에 집으로 귀가하던 한 여성이 퀸스 구 자신의 집 앞에서 괴한에게 살해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여자가 죽기 전 괴한은 여자에게 세 차례나 칼을 휘둘렀고 여자는 살려달라고 여러 번 소리를 질렀다는 정황이 이후 밝혀졌다. 그런데 왜 집에서 창문을 통해 살인 사건을 지켜봤던 38명의 시민들은 제노베스를 구해주지 않았던 걸까.

누구 한 명이 경찰에 신고만 했어도 제노베스는 살 수 있었다. 아니 단 한 명이라도 창문을 열고 무슨 소리라도 내주었더라면 제노베스는 살 수 있었다. 여자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도망쳤던 괴한은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자 두 번이나 다시 돌아와 여자를 죽였기 때문이다.

38명의 시민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처음에 이 사건이 사회에 알려졌을 때 대중은 이들의 무관심에 분노하며 38명의 이름을 언론에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을 단죄함으로써 사회에 만연한 인간성 파괴 현상을 극복해보자는 거였다. 하지만 사회심리학자들은 일련의 실험을 통해 이들은 그저 평범하게 행동했던 것이며, 우리 대부분도 그런 상황에 놓이면 그렇게 무심한 행동을 취하게 게 될 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심리학자들은 말했다. 그들이 그렇게 지켜보고만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인간성이 파괴되어서가 아니고, 너무 많은 사람들, 즉 38명의 사람들이 함께 그 사건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고 말이다.

제노베스의 사건을 지켜봤던 38명의 시민들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우리 대부분도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누군가는 도와 주겠지', '아마도 누군가가 이미 경찰에 신고했을 거야' 라고 말이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확실한 수 없는 상황에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고 것도 실험을 통해 드러났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확신할 수 없는 사람들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어떤 '사회적 증거'를 찾으려고 시도한다. 주위의 태도와 행동을 통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해석하려 시도하는 것이다. 긴급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확실성'과 '사회적 증거'.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사회적 증거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가급적 침착하고 당황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도록 훈련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적 증거를 찾을 때도 주위 사람들을 냉정한 모습으로 살피게 된다. 모두가 이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비록 우리가 내부적으로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어도 최소한 외부적으로는 모두가 침착하게 위기 상황을 바라만 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 결과, 사회적 증거 법칙에 따라서, 그 상황은 위기 상황이 아닌 것으로 규명될 것이다. 그리하여 다수의 무지라는 현상이 또 한번 발생하게 된다. - <본문> 중에서

누군가가 대낮에 길거리에서 괴한에게 당하고 있는데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그들을 나쁘다고, 무정하다고 몰아세울 일은 아닌 것이다. 그들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속으로 누군가가 이미 신고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나까.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피해자 스스로가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알리고, 콕 한 명을 찍어 구조 요청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아저씨, 파란 잠바를 입고 있는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경찰에 연락 좀 해주세요. 이 사람이 저를 때리고 있어요"

사람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정말 우리는 이런 식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일까? 라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법하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살짝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때 떠오른 하나의 영상이 있었다. 언제가 텔레비전에서 본 심리실험이었는데, 그 실험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도 '사회적 증거' 앞에서 과감히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상에서는 몇 명의 사람들이 둘러 앉아 설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단 한 명만이 피실험자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실험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열심히 설문을 작성하고 있는 그때, 갑자기 문틈을 통해 연기가 새어 들어왔다. 방 안이 연기로 점점 자욱해지고 있는 상황. 누가 봐도 확실히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피실험자는 도망을 가지도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슬쩍 주의를 둘러보더니 아무도 미동을 하지 않자 이내 고개를 숙이고 하던 일을 계속할 뿐이었다. 나중에 실험이 끝나고 왜 그랬는지 물으니 피실험자는 다들 가만히 있길래 나도 가만히 있었다고 대답했다. 사회적 증거의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 실험이었다.

대체적으로는 인간이 사회적 증거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건 나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사회적 증거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는 일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매우 긍정적이다. 다수에게 검증 받은 물건이나 행위를 선택하면 큰 탈이 생기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자동적이고 고정관념화된 심리 작용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용한다면 우리는 의도치 않게 원하지 않은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사재기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놓은 책을 사게 될 수도 있고, 여론 조사에서 1위를 한 인물을 실제 선거에서 뽑을 가능성도 있으며, 여러 언론사가 이구동성으로 한 인물을 욕하면 어느새 그를 나쁜 사람이라 인식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증거 때문이고, 이런 사회적 증거는 충분히 조작될 수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선택 앞에서 진중해져야만 한다.

다시 한 번, 사회적 증거를 이용해 우리를 설득하려는 사람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기억해 두어야 할 점은 바로 이 세 가지이다. 첫째,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사회적 증거를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 다수의 무지로 인해 사회적 증거가 거짓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과 셋째, 대부분의 사람들도 우리처럼 사회적 증거를 찾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고집스러워질 필요가 있겠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나 말, 행동에 좌우되지 말고 우리의 직관을 믿고 이를 따를 고집, 그리고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가끔은 (어쩌면 자주) 우리 혼자만의 선택이 옳을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디니/21세기북스/2013년 07월 22일/1만6천원)



설득의 심리학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 개정5판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황혜숙 옮김, 21세기북스(2013)


태그:#설득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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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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