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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세계 속 더 작은 우리, 일상은 늘 그렇게 오밀조밀하게 돌아간다. 반복되는 시간들, 모두 무엇을 위해서일까? 삶은 짧고 아무리 누려도 부족하다. 우리는 매순간 놀기 위해 살아간다.

호모 루덴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호이징하가 만들어낸 용어로 '노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는 놀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열광하거나 몰두하는 것, 즉 미치게 만드는 힘 속에 놀이의 본질, 원초적인 성질이 깃들어 있다', '놀이의 마지막 요소로 든 재미라는 요소는 어떠한 분석이나 논리적인 해석도 거부한다' 이렇듯, 놀이가 가지는 힘도 비중도 우리에겐 생각보다 거대한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얼마나 '잘 놀고' 있을까?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나의 세계는 모두 장난감으로 이뤄져있었다. 놀이터의 흙만으로도 나는 도시의 지도자나, 전쟁의 영웅이 되기도 했었다. 어머니가 나를 부를 때면 늘 아쉬웠다. 노느라고 하루를 다 쓰던 시절, 어쩌다 우린 여기까지 왔을까?

요즘의 놀이터는 사람들이 통 보이질 않는다. 과거보다 더욱 바빠진 사람들, 노는 것을 사치쯤으로 여기고, 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를 사용한다. 집보다 직장과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에게, 놀이터는 더 이상 노는 장소가 아니다.

바빠진 사람들에게 맞춰, 놀이도 진화했다. 우리는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애써왔다. 세상은 많은 놀이기구들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점점 더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거기에 맞춰서 놀고 있다. 각종 놀이들을 구매하고, 소비한다. 즉, 비용이 없으면 더 이상 스스로 놀지 못 한다는 것이다. 피씨방, 놀이동산, 카페, 영화관 등 놀이에도 많은 소비 시장이 생겼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현명한 놀이라 할 수 있을까?

당신은 자유롭게 놀고 있는가?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놀이에 길들여져 버렸다. 세분화된 놀이에, 상상력이 들어갈 자리는 더 이상 없다. 이미 일상에서 지친 우리는, 따로 생각하기를 꺼린다. 이미 나와 있는 틀에 맞춰 놀고, 그것에 질리더라도 새로운 것을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 다만,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당신도, 반복되는 여가에 질리는 순간을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만큼이나 돌고 도는 여가활동. 놀이에는 따로 '터'가 정해져있지 않다.

놀이는 그 어디에도 존재한다. 우리가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모든 즐거운 것들이 놀이가 될 수 있다. 한때, 유행했던 '볼펜 돌리기'를 생각해보자. 책상에 앉아 단지, 볼펜을 멋지게 돌리는 것에만 몰두하는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 돌리는 방법에 따라 명칭을 붙이고, 그것을 기술로 만들었다. 그것은 학교에 갇혀 책상에만 앉아있어야 했던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하나의 놀이다. 이렇게, 우리는 언제 어느 때라도 재미있게 놀 수 있다.

다만, 우리는 너무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소비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바쁜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휴식과 놀이는 하나로 인식된다. 일하지 않으면 논다는 것이다. 분명, 휴식과 놀이는 다르다. 휴식이 일상을 버티기 위해 단순히 쉬는 것이라면, 놀이는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놀이는 좀 더 치열하고, 열정적이다.

이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만나기 힘들다. 세계는 점점 더 빨리 바뀌고, 요즘의 아이들은 어른만큼이나 바쁘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가 모호한 시절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돈이 없어도 하루를 재밌게 보냈던 때를. 우리가 놀이에 써야할 것은 돈보다는 상상력과 능동성이다. 그것들은 우리를 더 풍요롭게 하고, 활기차게 만들어 줄 것이다. 놀이는 사는 것이 아니라 찾고, 만드는 것이다.


#놀이#호모루덴스#호이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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