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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권 소장이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구례군농업기술센터 풍경. 풍차와 산수유 열매와 꽃, 반달가슴곰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정연권 소장이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구례군농업기술센터 풍경. 풍차와 산수유 열매와 꽃, 반달가슴곰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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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떠나면서 살지//굳이/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바람이 날 데려가는 곳이라면/어디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하고 싶은 모든 말들/아껴둘 때마다/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너무 작게 숨어 있다고/불완전한 것은 아니야/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사람들은 모르지만/서운하지 않아//기다리는 법을/노래하는 법을/오래전부터/바람에게 배웠기에/기쁘게 살 뿐이야//푸름에 물든 삶이기에/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나는 늘/떠나면서 살지.

이해인의 시 '풀꽃의 노래' 전문이다. 지리산 자락에 지천인 이 들꽃을 돈으로 만들어낸 사람이 있다. 정연권(58) 전남 구례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이 그 주인공이다.

정 소장은 30여 년 동안 지리산의 야생화 연구에 매달려 산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꽃꽂이에서 출발해 화분으로, 생태조경용으로 키웠다. 야생화에서 뽑아낸 액으로 향수를 만드는 등 신소재 산업으로 발전시켰다. 시든 꽃은 압화로 만들어 자연생태 조형예술로 승화시켰다. 지금은 식품으로 키우고 있다.

정 소장은 야생화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로 산업화를 이끌며 '야생화박사', '꽃소장'라는 별칭을 얻었다. 신토불이 들꽃의 산업화로 주민소득을 높이고 지역의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기여하여 구례를 야생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지리산 야생화 이용해 향수 만들기도...

정연권 구례군농업기술센터 소장. 말단 직원 시절부터 야생화의 매력에 흠뻑 젖어 30여 년 동안 야생화 연구에 매달려왔다.
 정연권 구례군농업기술센터 소장. 말단 직원 시절부터 야생화의 매력에 흠뻑 젖어 30여 년 동안 야생화 연구에 매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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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군농업기술센터에 세워져 있는 이해인의 시 '풀꽃의 노래' 표지판. 야생화가 지천인 농업기술센터와 잘 어우러져 있다.
 구례군농업기술센터에 세워져 있는 이해인의 시 '풀꽃의 노래' 표지판. 야생화가 지천인 농업기술센터와 잘 어우러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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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이 구례거든요. 원추리가 지천인 지리산 노고단을 보며 자랐고 거기서 뛰놀았어요. 집의 장독에도 항시 꽃이 있었고요. 한번은 채송화 줄기를 꺾어서 땅에 꽂아둔 적이 있는데, 그게 자라서 꽃까지 피우는 거예요. 신기했죠. 감동적이기도 하고요."

나고 자란 환경 덕분에 야생화와 가깝게 지냈다는 게 정 소장의 얘기였다. 그가 야생화를 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건 1986년 전후였다. 1978년 농촌지도사로 공직생활을 시작, 1983년 구례군농업기술센터로 발령을 받은 뒤였다.

"86년 아시안게임 때였어요. 꽃장식이 개량꽃 일색이더라고요. 88올림픽 때는 야생화를 선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후 지리산의 야생화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실태 조사를 했어요. 사업화 가능성도 확인했고요."

구례군농업기술센터 내 압화전시관 풍경. 정연권 소장은 시든 야생화를 활용한 압화 공모전을 열어 전국대회를 넘어 국제대회로 키웠다.
 구례군농업기술센터 내 압화전시관 풍경. 정연권 소장은 시든 야생화를 활용한 압화 공모전을 열어 전국대회를 넘어 국제대회로 키웠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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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권 구례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이 지난 9일 기술센터 내 시험포장에서 야생화의 줄기를 뽑아 입에 대보고 있다.
 정연권 구례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이 지난 9일 기술센터 내 시험포장에서 야생화의 줄기를 뽑아 입에 대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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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소장은 이때부터 지리산을 내집처럼 올라 다녔다. 1주일에 한 번 이상씩 찾았다. 대량 재배에 성공하면 소득을 올릴 수 있겠다는 기대로 힘든 줄 몰랐다. 마땅한 공간이 없어 사무실 옥상에 흙을 올려서 시험재배를 했다. 집앞 뜰에도 심었다.

그 결과 노고단에서 채취한 용담화 재배에 성공했다. 1988년이었다. 꽃은 꽃꽂이용으로, 뿌리는 약용으로 팔았다. 반응도 좋았다. 이후 옥잠화, 무늬둥글레 등의 꽃꽂이 소재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올림픽이 끝나자 수요가 줄었다. 꽃꽂이의 수명이 짧고 야생화가 화려하지 않은 것도 흠이었다.

정 소장은 야생화의 분화와 함께 생태조경용으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야생화 프러그묘 육묘법을 개발, 거리 조성용으로 보급했다. 옥잠화의 대량 증식에 성공한 것도 이맘때였다. 야생화의 저변확대가 이뤄졌다. 구례가 '야생화의 메카'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정연권 구례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이 연구와 개발을 거쳐 개발해 낸 야생화 관광상품들. 기술센터에 전시돼 있는 모습이다.
 정연권 구례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이 연구와 개발을 거쳐 개발해 낸 야생화 관광상품들. 기술센터에 전시돼 있는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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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권 구례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이 지리산의 야생화를 활용해 만든 종이향수. 구례관광 기념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연권 구례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이 지리산의 야생화를 활용해 만든 종이향수. 구례관광 기념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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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꽃 자체만으로는 소득이 그리 높지 않았다. 정 소장이 야생화의 문화관광 상품화에 눈을 돌린 이유다. 지리산의 향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잔하고 은은한 향의 원추리와 맑고 달콤한 향의 옥잠화가 제격이었다. 그렇게 옥잠화와 원추리에서 천연향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1997년이었다.

향수 '노고단'을 구례의 문화관광 상품으로 육성했다. 이후 녹차와 감국을 이용한 '전통향(구례소리)'과 찻잎에서 추출한 '녹차향수(소지)'도 개발했다. 2004년엔 종이향수를 개발, 향수시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종이향수는 누구나 편하게 지니고 다닐 수 있도록 5×7㎝ 크기로 만들었다.

이뿐 아니다. 전국 처음으로 야생화 압화 공모전을 연 것도 정 소장의 아이디어였다. 지금은 종합대상의 훈격이 대통령상으로 격상되고 국제대회로 커졌다. 구례농업기술센터에 지리산과 섬진강을 본뜬 야생화학습원을 조성하고, 야생화 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그였다. 정 소장의 인생이 대한민국의 야생화 연구 역사인 셈이다.

"야생화 사업의 마지막 단계는 먹을거리"

지리산 야생화 학습원 표지석. 정연권 소장이 구례군농업기술센터에 만들어 놓았다.
 지리산 야생화 학습원 표지석. 정연권 소장이 구례군농업기술센터에 만들어 놓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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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야생화 학습원에 피기 시작한 수련. 정연권 소장의 노력으로 구례군농업기술센터가 가볼만한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지리산 야생화 학습원에 피기 시작한 수련. 정연권 소장의 노력으로 구례군농업기술센터가 가볼만한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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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소장은 이제 야생화의 식품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 눈으로 보고, 향을 맡고, 제품을 만드는 단계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야생화 연구 개발의 마지막 단계인 셈이다.

"야생화 사업의 마지막 단계는 먹을거리예요. 먹는 야생화, 즉 나물이죠. 원추리, 눈개승마, 쑥부쟁이, 잔대, 다래순 등에 꽂혀 있고요. 이것들을 장수 힐링식품으로 키우려고요. 쑥부쟁이는 벌써 사업화가 시작됐습니다."

정 소장은 쑥부쟁이를 생나물과 마른나물로 무쳐먹고 비빔밥과 나물밥, 떡과 국수 등으로 먹는다고 알려줬다. 우리 몸에 칼슘과 철분을 보충해주고 과잉 섭취한 나트륨을 배출해 주는 칼륨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게 쑥부쟁이라고 덧붙였다.

쑥부쟁이 무침. 정연권 구례농업기술센터 소장이 야생화 연구 개발의 마지막 단계로 최근 개발한 식품이다.
 쑥부쟁이 무침. 정연권 구례농업기술센터 소장이 야생화 연구 개발의 마지막 단계로 최근 개발한 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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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에서 만난 쑥부쟁이솥밥의 식단. 정연권 소장의 노력이 묻어나는 식단이다.
 구례에서 만난 쑥부쟁이솥밥의 식단. 정연권 소장의 노력이 묻어나는 식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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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누리고 싶어요. 시간과 공간, 신분의 제약에서 벗어나서요. 홀가분하게. 그런 다음 1인 연구소를 만들려고요.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야생화도 만나야죠.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의 눈으로 보면 또 다를 것 같아요. 누구나 부담없이 야생화를 보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도 하고 싶고요."

내년 여름 공직생활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될 정 소장의 포부다. 날마다 도시락 하나 싸들고 산과 들로 돌아다닐 생각에 약간 흥분도 된다고 했다. 벌써 그의 퇴임 이후 행보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정연권 구례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이 지난 9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야생화 연구와 개발, 그리고 퇴임 이후의 구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정연권 구례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이 지난 9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야생화 연구와 개발, 그리고 퇴임 이후의 구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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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야생화, #정연권, #구례군농업기술센터, #야생화박사, #쑥부쟁이솥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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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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