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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5일 오후 1시 22분]

몽골에서의 첫날은 설렘으로 시작되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몽골여행을 계획했지만 실제로 몽골로 떠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차를 타고 초원의 긴 이동 거리를 장시간 이동하는 몽골여행. 가족을 데리고 여행을 마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몽골을 좋아할지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다행히 엄마, 아빠보다 먼저 몽골 여행을 다녀온 딸의 몽골여행에 대한 감탄과 적극적인 추천이 나와 아내의 몽골여행을 가능하게 하였고, 드디어 몽골 땅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 나와 아내는 몽골의 칭기즈칸(Chingiz Khan) 국제공항 밖으로 빠져나왔다. 한여름이지만 서늘한 밤공기가 매우 반가웠다. 푹푹 찌는 한국의 무더위를 떠나 시원한 여름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이어졌다. 원래 우리나라보다 시차가 1시간이 늦지만, 서머타임으로 우리나라와 시간대가 같다는 사실도 여행을 경쾌하게 한다.

나와 아내와 함께 며칠간 몽골의 내륙을 여행할 몽골 친구가 차와 함께 나왔다. 한국에서 13년이나 살았다는 이 몽골 친구는 공항에서 우리를 보자마자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차량 운전까지 맡을 이 몽골인 안내자는 놀랍게도 여자였다. 한국말이 유창하고 나이도 아내와 비슷해서 여행 기간 동안 여행의 친구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울란바토르 시내에 한국버스가 다닌다고?

공항을 빠져나온 나와 아내는 어둠에 묻힌 울란바토르(Ulaanbaatar) 시내로 들어섰다. 어둠 속에서 너무나 크고 동그랗고 밝은 보름달이 떠올랐다. 너무 가깝게 눈앞에 다가서는 보름달에 놀라면서도 하늘에서 쏟아지듯이 내린다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도 된다.

몽골이 2차대전 승전을 기념해서 세운 자이승 승전탑(Zaisan Memorial)이 산 위에서 보름달을 배경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울란바토르 시민들은 공원에 모여 바비큐를 해 먹고 있었다. 몽골에서는 짧은 절기인 여름의 밤을 즐기고 싶은 열망들로 보였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중고차를 수입하여 시내버스로 사용하고 있다.
▲ 울란바토르 시내버스 한국에서 사용하던 중고차를 수입하여 시내버스로 사용하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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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뜬 여름날의 해가 숙소의 커튼 뒤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긴 차량 이동 일정상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식사하고 몽골 여행을 같이할 사륜구동차에 올라탔다. 숙소를 나선 차는 울란바토르의 아침 시내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부터 출근하는 울란바토르 시민들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운 모습은 울란바토르 시내를 운행하는 시내버스들이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운행되다가 수입된 한국 버스들이라는 점이다. 내가 언젠가 서울에서 이용했을지도 모를 버스들을 보니 괜히 친근함이 느껴진다.

몽골에서는 혹독한 겨울을 보낸 포장도로를 보수하는 곳을 자주 만난다.
▲ 울란바토르 시내 몽골에서는 혹독한 겨울을 보낸 포장도로를 보수하는 곳을 자주 만난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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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시내의 중심대로인 피스 대로(Peace Avenue)에는 길을 막고 아스팔트 포장을 다시 하는 곳이 많다. 몽골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는 겨울에 혹한을 경험하면서 포장상태가 쉽게 상한다고 한다.

겨울에는 온도가 영하 20℃~40℃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꽁꽁 얼었던 도로들이 온도가 상승하면 압축, 팽창을 거듭하면서 도로가 갈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시 외곽으로 향하던 우리 차는 좁은 길을 빙빙 돌아서 다시 피스 대로에 들어서야 했다. 

칭기즈칸 광장에서 마르코 폴로를 만나다

마치 몽골여행을 안내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 마르코 폴로 상 마치 몽골여행을 안내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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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 광장 앞을 지나다가 아주 반가운 청동 인물상을 만났다. 바로 마르코 폴로(Marco Polo)였다.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몽골의 전성기였던 원나라 당시의 몽골을 여행했던 동방 여행가. 나의 몽골 여행의 환상 속에는 항상 그가 남겼던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이 남아 있었다.

울란바토르 시내 한복판에서 만난 마르코 폴로도 왼손에 동방견문록을 들고 있었다. 마치 울란바토르 시내를 떠나 몽골 초원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나에게 여행선배로서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나는 마르코 폴로의 배웅을 받으면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울란바토르 외곽을 향해 나아갔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다니다보면 다양한 형상의 기마상이 눈에 띈다.
▲ 기마상 울란바토르 시내를 다니다보면 다양한 형상의 기마상이 눈에 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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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대한 몽골인들의 사랑은 울란바토르 시내의 여러 곳을 지나가면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유명 식당의 지붕 위에도 도금한 기마상이 우뚝 서 있다. 말은 한 발을 들고 어딘가를 떠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고 말 위에서 칼과 방패로 무장한 몽골 기병은 한쪽을 응시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 동상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몽골인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중국 방향이었다.

몽골 각지를 달리는 시외버스도 대부분 한국산이다.
▲ 울란바토르 시외버스 터미널 몽골 각지를 달리는 시외버스도 대부분 한국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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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외곽으로 나오니 울란바토르 시외버스터미널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한 줄기 철길 외에는 모든 여행지가 도로로 연결된 몽골에서는 버스들이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몽골의 지방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들에는 한국 버스들의 흔적이 더 많이 남아 있다. 버스 앞뒤에 한국에서 운행되던 당시의 관광버스회사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몽골인들의 외모도 우리와 너무 비슷하고 거리의 차들도 같으니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칭기즈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칭기즈 보드카’가 가장 인기이다.
▲ 몽골의 보드카 칭기즈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칭기즈 보드카’가 가장 인기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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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립니다
기자는 몽골 친구의 말을 바탕으로 몽골에서 만난 한국 라면이 '짝퉁'이었다고 서술했습니다. 하지만 추후 해당 라면이 '짝퉁'이 아니라는 지적이 들어왔고, 그 여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어 기사를 수정했습니다. 독자여러분께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울란바토르 시내 밖으로 나오자 '노민 홀세일(Nomin Wholesale)'이라는 큰 마트가 보인다. 본격적으로 몽골의 초원 속으로 들어서면 기본적인 생필품을 사기도 힘들어서 우리는 이 대형 상점에서 물과 여러 먹거리를 사 가기로 하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주 넓은 매장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주류 판매대다.

그리고 주류 판매대에 가장 많은 술은 보드카이다. 몽골의 독립을 도운 러시아의 영향으로 몽골에서는 보드카를 즐기는데, 몽골도 역시 추운 지역에 있어서 알코올 도수가 높은 보드카를 즐기는 것이다. 보드카 중에서도 700년 전의 위대한 제국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칭기즈 보드카(Chinggis vodka)가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몽골인들은 '칭기즈'를 마시면서 그들의 영웅을 회상할 것이다.

계산대에 마주한 손님과 점원의 모습에서 다양한 인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몽골 여인들 계산대에 마주한 손님과 점원의 모습에서 다양한 인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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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덩치 큰 몽골 여인이 서 있는 계산대에 내가 산 물건을 가지고 갔다. 물건을 사고 물건값을 치르는 몽골 여인은 광대뼈도 크고 얼굴도 동그란 전형적인 몽골인의 모습을 하고 있고 계산대 점원 여인은 위구르인이나 카자흐인 같은 갸름한 얼굴형을 하고 있다. 같은 나라 안의 사람들이지만 국토의 면적이 워낙 넓고 사람이 귀해서 다양한 종족들이 사이좋게 잘 어울리고 산다.

시원하게 펼쳐진 몽골의 광야, 감탄사 절로 나온다

몽골인들은 이 어워에서 안전한 여행을 기원한다.
▲ 고개 위의 어워 몽골인들은 이 어워에서 안전한 여행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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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에 타고 길을 나서자 눈앞으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시원스런 몽골의 광야가 드디어 펼쳐진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이 시야를 장악하더니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계속하여 이어진다. 산과 나무가 가득한 나라에 살다가 거칠 데 없이 펼쳐진 초원 지대를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리고 나지막한 고개가 나타나면 여지없이 우리나라 서낭당 같은 '어워(Ovoo)'가 자리를 잡고 있다. 몽골인들은 도로가 지나는 고개 위의 어워를 돌며 자신의 여정에 사고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있었다.

아! 차가 조금 더 전진하자 몽골의 초원에 방목 중인 다양한 가축들의 무리가 점점이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나는 몽골의 초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몽골 초원의 가축들은 도로변에도 많을 뿐 아니라 도로 위에 서서도 다가오는 차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곳의 말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차도 피하지 않는다.
▲ 도로를 횡단하는 말의 무리 이곳의 말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차도 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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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말들이 우리가 달리는 도로 위를 종단하고 있었다. 이 말들은 사람들의 차가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 같다. 말들은 차들이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로 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몽골에서는 도로 위에서 차들이 수많은 말들을 피해서 간다. 이 말들을 보면서 비로소 나는 몽골 안에 들어섰음을 실감했다.

초원에는 말도 있고 소도 있고 양도 있고 염소도 있다. 그리고 이 가축들은 수백 마리씩 무리 지어 풀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21세기에도 이런 나라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나는 몽골 초원의 더 깊숙한 곳으로 계속 들어갔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0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울란바토르, #칭기스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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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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