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손혜원 새정치민주연합 홍보위원장이 23일 국회에서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의원을 시작으로 펼치게 될 셀프디스 캠페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 대표의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박 의원의 "호남, 호남 해서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를 공개한 손 위원장은 "앞으로 일주일에 1~2명씩, 최소 100명까지는 셀프디스 메시지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 '셀프디스' 캠페인 선보인 손혜원 홍보위원장 손혜원 새정치민주연합 홍보위원장이 23일 국회에서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의원을 시작으로 펼치게 될 셀프디스 캠페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 대표의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박 의원의 "호남, 호남 해서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를 공개한 손 위원장은 "앞으로 일주일에 1~2명씩, 최소 100명까지는 셀프디스 메시지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벌써 10년도 더 됐다. 참여정부 초중반부터 봇물 터지듯 쏟아졌던 '노무현 비하' 댓글들이 인터넷을 뒤덮었던 때가. 미국에서도 '이게 다 오바마 때문이다'라는 비아냥의 뜻으로 'Thanks, Obama'가 유행했다고는 하나 한참 뒤의 일이거니와, 이를 인용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셀프 디스' 동영상을 제작하는 여유를 보인 것도 지지율이 상승한 이후이니 양상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셀프 디스', 그러니까 '자신(self)'과 '무례(disrespect)'를 섞어 자신을 스스로 풍자한다는 뜻의 이 인터넷 신조어가 우리 정치판에 출현했다. '메르스 사태'와 '국회법 개정 논란'으로 지지율 하락을 겪은 박근혜 대통령이나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내치고 대통령의 품에 안긴 김무성 대표가 해줬으면 속이 시원하련만, 뜻밖에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들고 나왔다.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호남, 호남해서 죄송합니다."

23일 새정치연합이 시작한 셀프 디스 캠페인의 첫 번째 두 주자인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의원이 내건 머리말이다. 일단 시선을 잡아끄는 데는 성공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새정치연합이 최근 영입한 '처음처럼' 손혜원 홍보위원장의 솜씨란다. '호남'으로 먹고 사는 박지원 의원에게 "호남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카드를 꺼내 들게 만들다니, 이 정도면 합격점이다.

한데, 응원은 해줄지언정 박수까진 못 쳐줄 것 같다. 미안하지만, 너무 늦었거나 조금 빠른 것 아닌가 싶다. 손혜원 위원장의 작품이 문제가 아니라, 새정치연합의 돌아가는 꼴이 그래서다. 정치가 쇼고, 그 쇼는 무조건 흥행이 되어야 맞다. 하지만 판을 벌인 무대 언저리에서 들리는 잡음들이 더 크게 들려서다.

문재인의 셀프 디스와 이용득 최고의원 막말 사이의 간극

22일 이용득 최고위원의 막말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용득 의원이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유승희 최고의원에게 욕설과 함께한 험한 말이 일제히 보도됐다. "정치적 보복을 당한 정봉주 전 의원이 사면 1호가 되야 한다"는 말에 반박하는 과정에서 거친 언사가 오갔다는 것이다. 정봉주 전 의원은 23일 이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단 축하한다, 이용득씨! 듣보잡 등극이다"라며 반박과 함께 이용득 의원과 새정치연합 최고의원회에 질타의 글을 남겼다.

"언제부터 새정치가 듣보잡 최고위원회가 됐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새정치 지도부 착각하지 마라. 당신들이 정봉주 사면하라고 해서 되지 않는다. 이 정권이 소통을 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당신들 지금까지 한 모습이 존재감 제로에 도전하는 무한도전 제로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버금가는 욕설이니, 이 좋은 떡밥을 놓칠 하등의 이유가 없질 않은가. 당사자들이 빌미를 제공한 셈이니 보수언론의 과한 공격이라 읍소해도 부질없는 짓일 테고. 독한 헤드라인만 꼽아 봐도 이 정도다.

막말, 무책임 정치, 安保 훼손…제1 야당 걱정된다 - <문화일보> 사설

[뉴스 9] 새정치민주연합, 또 다시 '봉숭아학당' 된 이유는? - TV조선

이용득 "X발"에 정봉주 페이스북에 "(이용득) 듣보잡, 잡종 양아치" 유승희 앙갚음(?)
새정치연합 최고위, 또다시 반말·고성 내며 충돌 - KBS

리더십 실종된 새정치聯의 민낯 - <동아일보>

'셀프분당론' 판치는 새정치, 셀프디스가 필요해?

추려서 그렇지, KBS부터 TV조선까지 기사로 다룬 매체들의 스펙트럼이 넓디 넓다. 이런 미디어의 질타와 국민적 피로감을 예상 못 했을 리 없다. 못했다면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용득 의원 본인만큼은 어떤 자신감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걸까.

하필 "왜 당을 갖고 물고 늘어지느냐, 당이 싫으면 당을 떠나면 되지"라고 또다시 분당을 언급한 걸 보면 말이다. 보수언론들은 이 상황을 두고 다시 문재인 대표 공격에 나섰다. 최고의원회에 자리에 동석했던 문 대표가 과거 막말 파동처럼 강력한 리더십과 거리가 멀게도 지켜만 보고 있었다는 논조였다.

최근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의 유시민 전 의원은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십 수 명 탈당해 정의당으로 오면 강력한 좌파 정당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의당 선거와 야권 지형도를 설명하며, 여기저기 새정치연합 의원 본인들이 꺼내 드는 분당 카드에 대해 질타 섞인 조언(?)을 건넨 것이다.

어제도 분당, 오늘도 분당. 야권 지지층에서조차 "그럴 거면, 자를 인물들은 잘라 버리고 분당해라"란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각에선, 지난 16일 "새정치연합의 현 모습은 민주당 분당 이후 누적된 적폐의 결과"라며 탈당을 선언한 박준영 전 전남지사를 향해 오히려 "잘 나갔다"는 환영(?)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셀프디스 캠페인을 시작했다. 뭔가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인지부조화'같지 않은가. 한쪽에선 막말을 일삼으며 "그럴 거면 분당해"라고 악다구니를 치는데, 또 한쪽에선 "자기 성찰"을 캠페인화 시키는 형국. 이런 상황에, 굳이 '셀프디스'가 필요한지도 굳이 이해를 해줘야만 납득이 갈 정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셀프디스'가 아니더라도 이런 캠페인은 더 빨랐어야 맞다. '프레임' 싸움에서 단 한 번도 이겨본 적도 없고, 심지어 홍보전문가를 초빙하는 여당에 아이디어 싸움에서도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야당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는 굉장히 어색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유머를 품은 야당의 캠페인 환영하지만...

"반응들은 생각보다 좋다. 의외다, 재밌다, 신선하다는 의견이 많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 계속해나가면 어떤 이야기가 강하게 형성될 것 같다. 문재인 대표의 경우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했다'는 문구는 정확히 봐야 한다. 셀프디스를 통해서 자기 해명을 주는 글이다.

각자 국민이 보기에 자기 약점을 들춰낸 뒤 본인이 왜 그랬는지 얘기하게 하는 거다.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광고는 아니지 않나. 이 캠페인은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거고, 이걸로 모든 걸 끝내자는 건 아니다."

23일 오후 JTBC <뉴스현장>과 전화 통화를 한 손혜원 위원장의 설명이다. 또 손 위원장은 '셀프디스'란 용어를 쓴 것을 두고 "자아비판이나 내 탓이오"가 아니라 유머 섞인 표현으로 봐달라고도 했다. 벌써 10명이 넘는 의원들의 신청도 들어와 있다고 한다.

그렇다. 요즘 유행하는 '셀프디스'는 이미 '디스'를 당할 사안을 무사히 넘겼거나, 그 사안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여유를 지녔을 때 행해진다. 한 마디로, 일정 정도 여유를 가진 자들이 행할 수 있는 유화의 제스처란 얘기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를 견뎌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맙다, 오바마"를 직접 연기를 통해 돌파해내는 오바마의 차이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렇기에, 새정치연합의 '셀프디스' 캠페인은 문제가 있다. 여유를 부리기에 당의 상황은 절박함을 더 필요로 한다. 유머보단 (욕설이 아닌) '정색'과 '진중'해야 할 시점이란 말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기 밥그릇만 충실히 챙기려는 이들이 득시글한 제1야당의 유머를 너그러이 받아들일 지지자들이 다수라 생각한다면, 오산이요, 오만이다.

조경태 의원에게는 "분당, 분당해서 죄송합니다"라거나 정청래 의원에게는 "막말, 막말해서 죄송합니다"라는 패러디가 벌써 나도는 게 바로 그 증거다. 유머러스하고 재기발랄하며 공감을 살 만한 캠페인이 야권에서 더욱더 활발히 터져 나오기를 기대한다. 다만, 때와 시기는 좀 가릴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셀프디스
댓글1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