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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가 작성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의견서 주요 내용
▲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의견서 내용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가 작성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의견서 주요 내용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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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만든 '학교 성교육 표준안'의 내용이 성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성적 다양성을 배제하고,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일각에서는 해당 표준안을 국가 차원에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전문가나 단체들의 자문을 받지 않은 채 제작해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란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초등학교 중학년,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고등학교별로 학생들의 발달단계의 필요에 의해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성교육 가이드 라인이다. 표준안은 올해 초 도입됐다. 지난 3월, 초·중·고 성교육 담당교사를 대상으로 표준안 활용 연수를 실시할 당시, 교육부가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다루지 말라고 지침을 내려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 6일,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를 야기할 수 있다며 교육부에 민원제기 형식으로 '교육부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0일, 해당 의견서를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 의견서에 따르면, 교육부가 만든 학교 성교육 표준안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성별 고정관념과 성 역할을 강화하는 성차별적 내용 ▲성적 다양성과 다양한 가족형태를 배제하는 내용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오히려 강화하고 성폭력 예방을 어렵게 할 수 있는 내용이 그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의견서에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직접 인용해,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여성은 외모, 남성은 경제력?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표준안 내용 중 '미혼 남녀의 배우자 선택 요건'에서 여성은 외모를, 남성은 경제력을 높여야 한다고 서술한 부분(초등고 8차시) 등이 '성별 고정관념과 성 역할을 강화하는 성차별적인 내용'이라고 판단했다.

또 표준안이 성기를 생식기능에 한정하여 설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성기를 설명하고 있는 부분에서, '난소(여자의 아기씨를 만드는 곳), 난자(여자의 아기씨), 난관, 자궁(아기가 자라는 공간), 질(아기가 나오는 길)'이라며 내부기관을 설명하는데 그쳤다는 것이다(초등중 15차시).

표준안이 이성간의 성관계를 남성성기 중심으로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성을 임신·출산에 국한해 서술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표준안이) 십대 여성의 제각각 다른 경험과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태교와 모성을 강조하며 임신중절에 대해 여성만을 비난한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표준안에는 잘못된 정보도 존재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표준안에서 피임법으로 소개된 '기초체온법, 월경주기법, 점액관찰법, 질외사정법'(중등 19차시) 등은 피임법으로 볼 수 없으며, '응급피임약의 성공률은 75%, 질외사정법의 성공률은 80%'(고등 21차시)이라는 내용이 부정확하다고 지적했다.

이성애·정상가족'만' 옳다는 학교 성교육 표준안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함께 있고 싶어서 남녀가 동거하면 이것도 결혼일까?: 동거에는 가족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내용(중등 9차시)이나, '엄마는 힘이 세기 때문에 정리를 잘하시며 아빠는 힘이 세기 때문에 요리를 잘하신다'를 '엄마는 섬세하기 때문에 정리를 잘하시며 아빠는 힘이 세기 때문에 무거운 물건을 옮기신다'로 고치는 학습활동(초등중 6차시) 등이 '성적 다양성과 다양한 가족형태를 배제하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표준안이 '가족 구성과 혼인·동거 형태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성 역할 고정관념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표준안이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대한 오해를 확산시키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고 있다고 봤다. '성-영혼적 영역-성과 관련된 윤리적, 도덕적 결정(예-낙태, 성적소수자, 미혼모 등)'(중등 1차시)이라고 표현한 부분이나, '성적 학대를 받은 경험이 많을 때도 이 장애(성 정체성과 관련된 장애)가 생긴다는 연구도 있다'(중등 6차시)라고 서술한 부분이 대표적인 예다.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오히려 강화하는 내용'으로는 '(남성의) 성에 대한 욕망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급격하게 나타나는데'(초등저 23차시)라고 서술한 부분 등이 제시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표준안이 '남성의 성적 충동에 대한 통념을 일반화하여 성폭력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여성은 능동적인 성적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표준안에서 '건전하지 않은 성행동을 에이즈 또는 성매개 감염병의 원인으로 꼽는 등 성행동의 (과장된) 부정적인 결과를 강조하는 부분', '여성이 조심하면 된다는 내용을 데이트성폭력 예방 행동 지침으로 제시하는 부분' 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페이스북을 통해 교육부에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민원 제기를 부탁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민원 제기 부탁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페이스북을 통해 교육부에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민원 제기를 부탁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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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성교육 표준안 만드는데 보수단체 입김 작용"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표준안은 성이나 인권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지게 하고 이성애, 정상 가족 틀로만 생각하게 하는 구성"이라며, "교육부에서 해당 표준안에 대한 민원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서 의견서를 제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국 성폭력상담소, 가정폭력상담소 등의 단체와 연대하여 전국적으로 민원을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의전화와 함께 의견서를 작성한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해당 표준안이 국가 수준의 표준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관련 단체나 전문가 자문이 없었다"라며 "표준안 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성소수자나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반대하는 단체들이 이 표준안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민원이나 압력을 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2014년 2월에 나온 '학생 성교육 강화 연구용역 최종 결과 보고서'의 '성교육과 관련한 쟁점사항과 처리내용' 부분을 보면, '시민단체 <동성애 문제 대책 위원회>를 비롯한 국내 28개 단체(건강한 사회를 위한 국민연대, 결혼친화상담봉사회, 교육과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연합, 기독교유권자연맹, 대한기독교 여자 절제회 등)에서 동성애라는 용어의 사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임'이라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처리 결과는,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동성애'라는 용어를 '다양한 성적 지향'이라는 용어로 통일하여 사용함'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교육부가 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될 때마다 부분적으로 표현을 수정하면서 대처하고 있는데, 표준안에 대한 전면적 수정을 요구할 예정"이라며, "현재 서울지역에 있는 단체들과 연대체를 구성해 표준안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고, 8월 24일에는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기자는 11일 오후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 학생건강정책과 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출장과 회의 등의 이유로 끝내 반론을 듣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김예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성교육, #교육부, #학교성교육표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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