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본 안보법안의 참의원 본회의 통과를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일본 안보법안의 참의원 본회의 통과를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 NHK

관련사진보기


'패전국' 일본이 70년 만에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탈바꿈했다.

일본 NHK에 따르면 집권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은 19일 새벽 집단 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하는 11개 안보 관련 법률 제·개정안을 참의원 본회의에서 표결을 강행하여 찬성 다수로 가결했다.

전날 야당 의원들과의 격렬한 몸싸움 끝에 참의원 특별위원회를 개최해 안보법안 표결을 기습적으로 통과시킨 자민당은 18일 본회를 열어 안보법안 성립을 위한 최종 표결을 긴급 상정했다.

19일 0시 10분 속개된 본회의에서 민주당, 유신당, 생활당 등 주요 5개 야당은 안보법안보다 우선 처리할 수 있는 아베 신조 총리와 각료들의 문책 결의안을 잇달아 제출하며 마지막까지 저항했지만, 수적 우위를 앞세워 모두 부결시키고 안보법안 표결까지 강행한 자민당의 벽을 넘지 못했다.

표결에 앞서 여야 의원 5명의 찬반 토론에서 자민당 측은 "집단 자위권 행사로 미일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 전쟁을 미연에 방지해 일본을 더욱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라며 "안보 정세가 언제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기 위한 안보법안의 조속한 성립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제1야당 민주당 측은 "(아베 정권의 안보법안은) 역사의 발걸음을 가볍게 여기며 입헌주의, 평화주의, 민주주의를 지켜온 일본의 전후 70년 발자취에 어긋나는 것으로 위헌이며 절대 반대"라고 맞섰다.

찬반 토론에 이어 마침내 기명 투표가 시작되자 자민당과 공명당을 비롯해 차세대당, 신당개혁, 일본을 건강하게 하는 모임 등 3개 군소 정당까지 찬성표를 던지면서 안보법안은 마지막 관문인 참의원 본회의 표결을 통과했다.

아베 총리는 법안 통과 후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제이며, 후손들에게 평화로운 국가를 물려주기 위한 법적 기반이 정비되었다고 생각한다"라며 "앞으로도 적극적인 평화 외교를 추진하여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데 만전을 기하겠다"라고 밝혔다.

야당, 온갖 수단 동원해 마지막까지 저항

이날 본회의가 시작되자 야당은 안보법안이 상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펼쳤다. 가장 눈길을 끈 인물은 생활당의 야마모토 다로 의원이었다.

야마모토 의원은 아베 총리에 대한 문책 결의안 표결에서 자기 차례가 되자 투표함이 있는 단상으로 향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려고 일부러 소처럼 느리게 걷는 '우보 전술'을 꺼내 들었다. 여당 의원들은 야유를 쏟아내며 "빨리 투표하라"고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야마모토 의원은 투표를 마친 뒤 단상 옆에 앉아 있는 아베 총리를 향해 마치 참배를 하듯 염주를 들고 합장했다. 일본 언론은 국민 다수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안보법안을 강행하려는 아베 총리와 자민당을 향해 '민주주의가 죽었다'라는 뜻의 퍼포먼스로 풀이했다. 아베 총리는 황당한 표정으로 야마모토 의원을 바라봤다.

일본의 유명 배우 출신인 야마모토 의원은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를 계기로 원전 반대 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정치인으로 변신,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했다.

곧이어 아베 내각 불신임 결의안 심의에서는 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간사장이 단상에 올라 무려 1시간 45분 동안 불신임 결의안의 취지를 설명하는 연설을 하며 아베 총리를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기도 했다.

민주당 정권 시절 정부 대변인 관방장관을 지냈던 인물답게 달변을 과시한 에다노 간사장은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안보법안은 입헌주의를 파괴하고 전후 일본의 평화체제를 일그러뜨리는 것"이라며 "아베 내각은 최악의 법안을 강행하는 폭주 상태"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자민당은 "아베 내각은 안정적으로 정책을 실행하고 많은 업적을 남기며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라며 "불신임 결의안 제출은 국민의 목소리와 기대를 완전히 무시하는 난폭한 행위"라고 맞서며 부결시켰다.

이 밖에도 야당은 아베 내각의 안보정책을 이끄는 나카다니 겐 방위상과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전날 참의원 특별위원회에서 안보법안 표결을 강행한 고노이케 요시타다 위원장 등에 대한 문책 결의안을 제출했지만 여당의 다수 의석에 막혀 모두 부결됐다.

국회 앞에서도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여 새벽까지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일부 시민은 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리며 "헌법 위반, 법안 철회, 아베 정권 퇴진"을 외치기도 했다.

일본의 새 안보법안, 동북아 정세 바꾼다

일본 안보법안 관련 NHK 뉴스 갈무리.
 일본 안보법안 관련 NHK 뉴스 갈무리.
ⓒ NHK

관련사진보기


아베 내각의 안보법안이 국회를 모두 통과해 최종 성립되면서 동북아 정세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됐다. 이로써 패전 이후 평화헌법 체제에서 제한적인 자위권 행사만 가능했던 일본은 전 세계로 범위를 확대해 본격적으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무력공격사태법안은 일본의 우방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의 존립과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존립위기사태'로 간주하고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주요영향사태법안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 후방지원을 명분으로 일본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일본 정부는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입할 상황이 일어날 경우 반드시 한국 정부의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법안에는 이 같은 조항을 명시하지 않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4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새 안보법안이 통과되면 집단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는 밀접한 관계국에 한국은 배제되느냐"라는 야당 의원 질의에 "배제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바 있다. 더구나 "존립 위기 상황을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느냐"라는 질문에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라고 얼버무리기도 했다.

아베 정권은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는 사태에만 집단 자위권을 행사하는 법안이며, 이라크전쟁처럼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집단 자위권 행사에 최종 결정권이 법안이 아닌 당대 총리에게 있다는 점에서 논리가 부족하다. 일본 진보언론들이 '법이 아닌 사람이 지배하는 일본이 되었다'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이 같은 안보법안은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서의 전쟁 및 무력 포기, 국가 교전권 부정 등을 담은 평화헌법(헌법 9조)에 어긋난다는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데다가 미국과 중국의 대립구도에 일본까지 가세하며 군비 경쟁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는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군사적 부담을 덜기 위한 미국의 이해와 일치한다. 전날 미국은 안보법안이 참의원 특별위원회를 통과하자 존 커비 국무부 대변인이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동아시아 지역과 국제사회 안보를 위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는 일본의 노력을 환영한다"라고 밝혔다.

반면 중국은 훙레이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회견에서 "일본은 국제사회 정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며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고, 평화의 길을 지속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압도적인 반대 여론과 위헌 논란을 무릅쓰고 안보법안을 강행하면서 아베 정권과 자민당이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거센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야권 세력이 약하다는 것이 걸림돌이다. 오히려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숙원인 '보통국가'로의 전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태그:#일본 안보법안, #집단 자위권, #아베 신조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