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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최근 국제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이 세 글자다. IS라는 무장 단체, 오래 지속되는 내전,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난민 수, 독재정권, 보수적인 문화 관습.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아마 이 정도일 것이다.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인 이슬람교의 신도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이 지역에 대해.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을까? 우리는 아랍에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들이 자리한지 모르고, 그 나라들의 수도를 모르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모르고, 아랍의 역사를 모르고, 아랍인들의 일상생활과 그들의 언어에 대해서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저울 위에 올리면 어느 쪽의 무게가 더 무거울까?

최근 들어 이슬람은 종종 폭력과 동의어처럼 간주된다. 몇몇 근본주의 단체들이 자행하는 테러와 협박, 살인과 전쟁은 아랍 곳곳을 황폐화시키고 있으며 수많은 생명과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랍이 유럽이나 미국보다 우리와 지리적으로도 외양적으로도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거리를 둔다. 무서운 사람들, 잔인한 인간들, 두려운 사회들. 그러나 저울의 무게는 확실히 '모르는 것' 쪽으로 기울 것이다. 이를 탁월하게 뒷받침하는 책이 출간됐기 때문이다.

영국인 성공회 신자의 아랍 기행, 그 발자취로부터 발견하는 사람들

<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 이븐 바투타와 함께한 이슬람 여행>이 지난 11일 출간됐다.
 <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 이븐 바투타와 함께한 이슬람 여행>이 지난 11일 출간됐다.
ⓒ 봄날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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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매킨토시-스미스의 아랍 여행기 <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 이븐 바투타와 함께한 이슬람 여행>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14세기 대여행가 이븐 바투타의 흔적을 따라가는 20세기 영국인이자 성공회 신자의 여행기이다.

마그리브인 법관이자 여행자였던 이바 바투타는 29년 동안 아랍 지역 전체를 두 발로 걸어 여행했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사람이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

"지금 지도로 볼 때 40개가 넘는 나라를 방문했고, 무려 12만 킬로미터를 말과 노새, 낙타, 소달구지, 정크선, 다우선, 뗏목을 타거나 걸어서 여행하며 당시에 알려졌던 세계의 거의 대부분을 보았다. 이 거리는 마르코 폴로가 탐험했다고 주장하는 거리의 대략 세 배에 이른다." (p.31, 들어가며)

영국의 성공회 신자이자 역사지리학자, 고고학자인 팀-매킨토시 스미스는 무려 600여 년 전 이바 바투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을 계획한다. 예맨의 수도 사나에 사는 그는 아랍어에 능통하여 이바 바투타의 여행기와 아랍어로 된 책 몇 권을 싸들고 이바가 출발한 모로코의 수도 탕헤르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군데군데 이바의 흥미로운 여행기가 인용되지만 책장이 훌훌 넘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매킨토시-스미스의 서술 때문이다. 그는 타일 장식 하나까지도 또렷하게 기록하는 굉장한 묘사의 대가이자, 우스꽝스러운 일화와 사람들과의 흥미로운 대화를 유쾌하게 들려주는 저술가다.

"멀리서 희미하게 예배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 캘빈클라인 청바지를 입은 사람은 어떻게 기도를 할까 궁금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스판이 도움이 될 것이다." (p.41, 모로코)

저자는 자신이 마주한 모든 것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아름답고 쾌활한 여인들. 자부심 있으며 동시에 온화한 남자들. 14세기 이바 바투타가 자신을 환대한 낯선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울음을 터뜨렸듯이, 20세기의 매킨토시-스미스도 재밌는 사람들, 툭툭 마음을 울리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어디서든 만난다.

불쑥 다가와 고대 아랍 시인의 구절을 종이에 적어주기도 하고, 열성적인 순례자들과 은둔수행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하고, 웅장한 건축물이나 소박한 식당으로 이끌어주거나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는, 관용과 환대가 몸에 밴 사람들.

한 장씩 읽어가는 과정에서 성공회 신자가 대체 왜 아랍에? 하는 단편적인 질문은 어느새 사라지고, 아랍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의 모습에 이입하게 된다. 종교의 차이는 '사람' 앞에서 무색해진다.

"아무도 내가 이곳에 온 이유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내가 무슬림이냐고 움므 바하에게 속삭이듯 묻는 사촌이 있었다.
"내가 어떻게 알겠니?" 움므 바하가 내 고개를 돌렸다. "무슬림이세요?"
나는 메시아를 따르는 마시히라고 답했다.
"아." 그 사촌이 말했다. "이얄 암마나."
'이얄 암마나.' 우리 사촌이네." ('상이집트' 중에서, 204쪽)

소중한 것들이 사라진 곳 '아랍'

여행기는 모로코에서 시작해 나일 삼각주와 카이로, 상이집트를 거쳐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시리아 북부, 오만, 도파르, 쿠리아 무리아 제도, 아나톨리아를 거쳐 크림반도와 콘스탄티노플까지의 지난한 여정을 담고 있다.

지명들이 대부분 낯설 수 있으나 '시리아'라는 이름이 유독 눈에 띈다.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2011년 '아랍 혁명'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로부터 4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 또한 작년 한해 난민 문제를 국제적으로 부각시키며 인권과 평화에 대해 전 세계인들이 고민하게 했다.

매킨토시-스미스가 1990년대 말 아랍을 여행할 때에도 국경 검문소가 있었고 경찰관들이 있었지만 일반인들도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을 만큼 그곳은 평화로웠다. 그러나 불과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아랍의 여러 나라에선 출입국 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설사 간신히 발을 들여놓는다 하더라도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저자의 눈길은 아랍인들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아랍인들의 '인간성'을 발견한다. 다마스쿠스의 사원에서도 저자는 관광객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보이는 대로 묘사한다. 마지막 문장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란인들은 진지하게 즐기고 있었다. 몇몇 여자들이 설교단 옆에서 사진을 찍었고, 그러자 성직자 한 명이 간간이 아름다운 테너 음성으로 꾸란을 낭송하며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숨죽여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순례단이었다. 그들은 이스마일파 인도인들로 여자들은 식탁보나 커튼을 임시변통한 것 같은 꽃무늬 옷과 망토를 둘렀고, 남자들은 하도 얇아서 통상적인 다마스쿠스 소나기 한 방이면 투명해져버릴 것 같은 튜닉과 하얀 바지를 입었다. 어느 모로 보나 암살자들의 영적 후손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p.227, 다마스쿠스)

이슬람의 종교 내분은 수니파와 사이파라는 분파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미 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을지 모른다. 이란은 대표적인 수니파(정통파) 국가다. 아랍 국가들 사이에 끊이지 않는 분쟁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무서운' 나라라는 인식이 강할 수 있다. 극단적인 단체들이 수니파 계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매킨토시-스미스는 적는다. 어느 모로 보나 그들은 암살자들의 후손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시리아 북부의 하마라는 도시에 저자가 들렀을 때, 과수원에서 만난 젊은 남자 이야기는 또 어떤가. 저자가 이바 바투타의 여행기에서 시를 하나 찾아 낭송하고 있을 때, "알라!"라고 인사하며 다가온 그 남자는 시가 참 마음에 든다고 말하며 자신도 시를 하나 읊었다.

"반역자가 회개하며 가슴을 드러냈네
슬픈 노래를 부르던 옛 시인들처럼 슬픔에 잠겨
그 가슴에선 심장이 노리아처럼 쿵쾅거리고
그는 회오에 찬 눈물을 돌바닥에 떨구네." (p.267, 시리아 북부)

과수원집 아들이자 학교 졸업반이었던 젊은 청년 아흐마드는, 시를 몇 수 더 읊으며 저자에게 싱싱한 무화과를 건네주던 시절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는 무사할까. 슬픔에 관한 시를 읽던 그는 이제 슬픔 그 안에 깊이 잠겨있지 않을까. 젊은이들과 아이들, 여성들과 그들의 따스함에 대한 일화를 읽을 때마다 독자의 머릿속에선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이라는 이미지들이 겹쳐질 것이다. 종종 마음이 내려앉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거의 600미터나 되는 하미디야의 현란한 터널을 빠져나오니 날이 우중충하고 침침해져 있었다. 눈앞에는 군데군데 패고 보수한 자국이 있는, 커다란 돌덩이를 쌓아 만든 군부대 담 같은 벽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모스크의 첫 인상은 커다란 실망이었다. (⋯⋯) 729년에 우마르 칼리프가 죽은 뒤 겨우 30여 년 만에 우마이야 왕조는 소멸했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견뎠고, 우마이야 모스크 벽마다 새겨진 그들의 낙원, 천상보다는 지상에 가까운 그 낙원도 그랬다. 다마스쿠스에서 나는 시인들과 책에 속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적어도 이곳에서만은 그들이 노래했던 목초지와 숲 속의 빈터들이 영원한 봄을 누리고 있었다."(p.225, 다마스쿠스)

매킨토시-스미스는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스크라 불리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모스크 앞에서 과거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한때 "거대한 오아시스이자 낙원"이라 불렸던 다마스쿠스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읽는 독자들은 더 이상 그러한 천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식한다.

저자의 유쾌한 스토리텔링조차 어떤 부분에선 조금쯤 서글프고 안타깝게 여겨질지 모른다. 이 책은 그 어떠한 여행기보다도 시간의 간극으로 인해 극명한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그 자체로 보여주는 운명을 지녔다고 말한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랍, 이슬람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곳인가?

아랍인들은 코란(책에서는 '꾸란'으로 표기되었다)의 구절을 신성시하며, 그들의 일상생활은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방식이 그저 낯설고 거부감이 들기보다는, 새로우며 또한 한편으론 사랑스럽다.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삶의 한가운데에서도, 아랍인들 중 누군가는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릴 것이며 미래에 대해 한 줄기 희망을 비밀스레 품고 있을지 모른다. 카이로에서 만난 한 의사의 겸손한 말을 닮은 태도처럼 꾸준하고도 성실하게 말이다.

"나는 700년이나 되는 전통을 지켜 와서 자랑스럽겠다고 말했다. 원장은 잠시 생각했다. "그 때문에 전 가끔 우리가 얼마나 천천히 진보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제 말은, 우리는 지금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기본적인 기술은 똑같아요. 당신의 그 여행기가 이곳에 왔을 때에도 백내장 수술이 시행되고 있었어요. 전 늘 '너희는 약간의 지식을 얻었을 뿐이다'라는 꾸란의 구절을 기억하려고 애씁니다." (p.147, 카이로)

흥미로운 것은 글 전반에 걸쳐 매킨토시-스미스가 자신이 성공회 신자라는 것을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세속적인 유적 사냥꾼'(p.155)이라 칭하는 그에게 종교로 인한 적대감이나 차이로 인한 불편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기껏해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우리 함께 정오 기도를 드릴 수 있겠네요"라는 사원 문지기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키는 정도다. 아랍인들도 그들의 종교를 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혹시 무슬림이냐고 물은 뒤 아니라고 답하면 미소를 지으며 "그것은 당신이 선택할 일, 우리 종교는 관용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몰랐던' 무슬림이다.

존중한다는 내색조차도 구태여 과시하지 않음으로써, 저자는 아랍인들의 평화로운 공존과 배려를 글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왔던 아랍인들의 관용적인 모습들이 책 곳곳에 자연스레 스며있다. 무슬림에 대한 무의식적인 이질감 혹은 막연함 두려움과 같은 선입견들은, 때로는 얼얼할 정도로 스르르 무너진다.

다이애나 왕비 암살이나 제2차 세계대전 같은 현대적 사건들이 예언자들과 성인들과 코란의 까마득한 고대 세계, 그리고 십자군 전쟁과 같은 중세의 역사와 오묘하게 교차하며 흥미진진하게 서술된다. 독자들은 팀 매킨토시-스미스와 여행을 하는 동시에 이바 바투타와 여행을 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책이 무엇보다 가치 있는 지점은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 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히잡 뒤에 숨겨진 무서운 눈동자나 전투 장비로 무장한 근본주의 단체가 아니라, 밥 먹고 농담하고 허풍 떠는 '사람'들. 직접 그들을 만나고 함께 생활하는 저자를 따라가면서, 아랍에 대한 거리감이 어느 때보다 더 커진 2016년을 살고 있는 독자는 아랍에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지구상의 그 어떠한 집단보다도 기울어진 저울 위에 놓인 '이슬람'에 대한 인식이 조금쯤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현재로서는 가장 방대하고 꼼꼼한 이슬람 여행기다. 물론 현재 엄청난 비극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기에 마냥 즐겁게만 읽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아랍과 이슬람에 대해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될 때, 비로소 어떤 작은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저자의 메시지가 마음을 울린다.

"요즘 이븐 바투타의 고향인 아랍 세계와 이 행성의 다른 지역 사이의 관계가 좀처럼 수월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이븐 바투타의 시대를 다시 돌아보고 영감을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여행은 느렸지만 국경은 열려 있었습니다. 아마 마음들도 그랬겠지요." - 2016년 1월, 예맨에서, 팀 매킨토시-스미스


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 이븐 바투타와 함께한 이슬람 여행

팀 매킨토시-스미스 지음, 마틴 요먼 그림, 신해경 옮김, 봄날의책(2016)


태그:#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븐 바투타, #팀 매킨토시-스미스, #봄날의책,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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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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