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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앙정부도 마을공동체사업의 한계와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업 현황, 문제점, 그리고 해결방안을 놓고 전문가, 공무원, 주민이 함께 정책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이어지고 있다. 2015년 9월 행자부가 주관한 '공동체 발전 국민포럼'은 행자부를 비롯 농림부 등 각종 정부지원 마을공동체 사업의 전반적인 현황과 방향을 짚어보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한국정책학회는 229개 기초지자체에 대한 서면조사와 46개 마을현장에 대한 실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정책학회의 진단에 따르면 정부가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는 사업은 6개 부처의 14개 사업으로 연간 예산규모는 약 1조 2천억원('14년 1조 1,700억원, '15년 1조 1,8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구체적으로 행자부는 '마을기업' '정보화마을' '희망마을' 등 4개 사업을 하고 있고, 농림부는 일반 농산어촌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연간 9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쓰고 있다. 국토부도 도시활력증진 지역개발 사업을 통해 매년 1000억원을 지출하고 있다.

지난 6년간 투입된 예산 1억원당 매출액은 약 3천 7백만원, 일자리수는 7.7명 정도가 창출되었고, 마을공동체 사업의 총 매출액, 일자리수, 방문자수 등은 증가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외형적으로나마 정책지원의 효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주민인식을 조사한 결과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평화생태우수마을, 발전소주변지역지원, 신규마을(구 전원마을)사업 등 일부 사업의 경우, 경제적 효과가 떨어지고 사회적 성과로 기대한 공동체성의 향상 측면은 부정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한 총 3,517개 사례 가운데 사업이 완료된 사업은 2,833개, 시공 중인 사업은 684개로,  완료된 사업(2,833개)중 가동기간이 연 3개월 미만 사업장은 137개이며, 152개 사업장은 아예 운영중단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마을공동체사업의 운영주체인 마을주민들의 사업에 대한 이해 부족과 준비 부족이 주요 원인일 것이다. 그리고 부처간 유사사업의 추진, 동일지역에 대한 무분별한 중복적인 지원 등에 따른 부작용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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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공동체 재생과 활성화 방안을 모색한 ‘2015 공동체글로벌 한마당’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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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동체 기본법'이 시급하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농림부, 행자부, 문화부, 국토교통부 등 각 부처가 다양한 명분과 목적을 내세워 마을공동체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체험ㆍ숙박시설 조성, 제조ㆍ가공ㆍ판매시설 조성, 환경개선ㆍ생활편익시설 조성 이라는 세 가지 틀의 관성과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행자부의 희망마을, 평화생태우수마을, 농림부의 창조적마을만들기, 산림청의 산촌생태마을 등은 주관부처, 예산금액, 지원지역 등만 다를 뿐 사업내용과 목적은 큰 차이가 없어 중복지원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결국 지난 십수년 동안 정부가 지원한 마을·지역공동체사업은 형식적으로는 마을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상향식으로 사업을 신청·운영·사후관리 하도록 하였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선 범정부차원 또는 법·제도적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본질적 원인이다. 그간 개별 부처차원에서 분절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여 왔을 뿐 유사·중복사업을 연계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그래서 각 부처 사업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지 못했다.

또 주민의 역량이나 수준은 고려하지 않은 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보조금이 무차별지원됐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주민들이 장기적인 마을종합계획을 준비했을리 없다. 그나마 행정좌 주민의 의존할 수 있는 전문가 조직으로서 민관 교량역할을 맡은 중간지원조직마저 예산 등 지원 부족, 전문 역량과 책임감 미흡 등으로 제 역할과 기능을 다 하지 못했다.

심지어 "경로당이나 복지회관은 유류비가 국가에서 나오기 때문에 운영이 되지만 마을회관은 연료비가 따로 나오지 않아 냉난방이 제대로 안돼 방치되고 있는 일도 있다"면서 "각종 마을공동체 사업에 지원되는 정부 보조금을 받아내기 위해 조언을 해주고 용역비를 사업비의 10% 까지 받아챙기는 사이비 용역업자, 브로커까지 활개를 치고 있다"고 개탄했다.

한국정책학회는 이번 조사와 진단을 통해 마을·지역공동체사업의 성패는 마을종합발전계획 수립, 마을역량단계별 지원 시스템, 책임감 있고 헌신적인 훌륭한 리더, 전문적인 중간지원조직의 활성화, 지속적인 사후관리 등에 달려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조사결과를 보더라도, 완주군, 진안군, 충남도, 그리고 농림부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등과 같이 마을공동체 역량단계별로 사업을 추진하는 체계로 개편하는 게 효과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또 토건 인프라, 하드웨어 위주의 시설투자에서 공동체 조직운영 등 주민역량을 높이는 데 투자를 집중하는 등 정책 집행의 플랫폼과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따라서 중앙 정부마다 산재된 유사·중복사업의 정비 또는 통제를 위한 컨트롤타워 기능, 지자체 각 부서 마다 가로막혀있는 '행정 칸막이' 제거, 중간지원조직의 전문가 조직  육성, 단순 시설투자에서 공동체 활성화로 기조 전환  등을 골자로 하는 '(가칭)지역공동체 기본법' 제정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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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공동체의 사회적 자본 네트워킹 사례, ‘서귀포 혁신비전포럼’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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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하려면 '사회적 자본 발전소'부터

그런데 지역공동체를 재생하고 활성화하려면 법이나 정책 이전에 더 중요한 게 있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공동체의 재생과 활성화를 촉발하거나 공동체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 견인할 만큼 사회적 자본이 충분하지 않다. 신뢰, 협동, 연대, 참여, 규범, 네트워크 같은 혁신적 동력과 창조적 에너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근현대에 걸쳐 봉건 조선왕조, 일제 식민지배, 동족 상잔의 전쟁, 군부독재 등의 반사회적 암흑기에 매몰돼 미처 사회적 자본을 생산하거나 축적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물론 계, 두레 등 농경사회의 전통적 유산, 심지어 새마을회 같은 국민운동단체를 사회적 자본이라 내세우는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이 사회의 혁신에 얼마나 쓸모가 있는 사회적 자본인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농촌지역의 사회적 자본 잠식 또는 파산 상태는 심각하다. 지난날 산업화 및 공업화 개발경제 과정에서 농촌지역의 인적 자본이 대거 도시로 이동, 전통적인 농촌 마을사회의 사회조직 또는 공동체조직이 와해되고 공동체 규범이 약화된 게 근본적 원인이다. 이러한 인적 자본의 약화는 농촌마을과 지역사회의 지도력 약화로 직결되었다. 농촌 지역사회 내부에 그나마 축적되었던 사회적 자본이 쇠퇴되면서 농촌 지역사회의 활력과 동력이 상실되고 만 것이다.  

이른바 '마을만들기', '사회적 경제' 등 마을과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사업(Community Business)의 성공적 추진의 최우선 필수조건은 행정의 지원도, 주민의 학습도, 전문가의 역량도 아니다. 신뢰, 협동, 연대, 참여, 규범, 네트워킹 같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다. 사업을 벌이는 마을과 지역사회 공동체 안에 충분히 내재·축적된 고유 사회적 자본의 보유 여부와 활용 정도가 사업 성패의 열쇠일 것이다.

즉, 이미 마을공동체 내부에서 마을공동체 구성원끼리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고 연대하며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나누지 않는 마을공동체사업은 시작부터 온갖 어려움에 부닥친다. 마을공동체 스스로, 내발적이거나 자생적으로 마을공동체의 규범과 관계망을 형성하고 강화할 수 있는 자체 동력이 필요하다. 결국 마을·지역사회 공동체의 문제 해결과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유·무형의 자산으로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바탕이 되고 전제되어야 마을공동체사업은 가능하다.

인적 자본, 물적 자본 등 여타 자본이 절대 부족한 농촌지역에서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농촌마을공동체 사업을 준비하는 마을주민들은 마을사업을 신청하기 전에, 우리 마을의 사회적 자본이 어떤 게 있는지, 얼마나 있는지, 어떤 쓸모를 지니고 있는지부터 냉정하게 조사하고 정리해두어야 한다. 조사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마을공동체사업에 나서면 안 된다.

그런데 한국의 근현대사를 돌이켜보면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공동체가 주체적으로, 창조적으로 사회적 자본을 배우고 축적할 기회나 시간이 많지 않았다. 신뢰와 협동보다 불신과 경쟁이, 규범과 네트워킹 보다는 위법과 이기주의가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동체 지원 법과 제도를 만들기 이전에 농촌공동체 재생과 활성화에 유용한 사회적 자본부터 새로, 충분히 발굴, 개발, 육성, 축적해야하는 과제가 시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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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지역의 ‘사회적 자본 발전소’ 모델, <서울혁신파크>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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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Bridging) 및 관계(Linking) 사회적 자본'의 플랫폼을

무엇보다 우리 농촌공동체 사회적 자본 생산과 개발을 촉발시킬 열쇠는 '사람(인적 사회적 자본)'일 것이다. 특정 지역 내부, 일부 집단 사이의 폐쇄적, 배타적, 고립적 '결합(Bonding) 사회적 자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장애나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보다는 다른 지역, 외부인 등과 열린 생태계에서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도록 '연결(Bridging) 사회적 자본'과 '관계(Linking) 사회적 자본'의 플랫폼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도 결합(Bonding) 사회적 자본은 또래, 같은 인종, 같은 종교와 같은 사회화 과정에 동일한 특성들 사이에 생겨나는 사회적 자본으로 규정했다. 다인종 사회에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사회적 자본, 즉 연결(Bridging) 사회적 자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정기환 연구위원은 "농촌지역사회 내의 공식적·비공식적 사회집단 또는 구조 속에 존재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통하여 집단에 속한 개별 구성원이나 집단이 추구하는 이익이나 목표 달성을 촉진할 수 있는 능력"을 농촌지역 사회적 자본을 정의했다. 구체적으로 사회집단이나 사회구조 속에서 사회의 구성원 들이 사회적 상호 작용으로 행하는 사회적 교환과 보상, 협동, 경쟁, 그리고 갈등 해소 메커니즘 등이다.  

또 우리나라 전통적 농촌지역 마을공동체에서는 연대적(결합, Bonding) 사회적 자본과 교량적(연결, Bridging) 사회적 자본이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마을 사회집단의 연대 의식이 높고 사회집단 간 협동적 관계가 원만하게 지켜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 연구위원은 "농촌지역 마을개발을 위한 정부의 각종 지원정책이 시행되면서 마을의 한정된 자원 이용, 개발사업 참여 여부 및 정도, 이익 분배, 개발의 주도권 등을 둘러싸고 마을공동체 및 지역사회 내부에서 반목과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정부 지원 농촌지역개발사업의 경우, 마을 주민 총회, 개발위원회, 추진 및 운영위원회 등의 의사결정기구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의 및 총의에 이른 후, 주민 의사가 반영된 내발적이고 상향식의 주민 주도 계획에 의거해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때 마을 주민 총회 등 주민 의사결정기구는 퍼트남 등이 강조한 교량적(Bridging) 사회적 자본을 형성, 확충해주는 장치이자 메카니즘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아울러 농촌지역개발의 핵심 주체인 정부와 주민 사이의 파트너십, 지역사회 단위의 협력체제(지자체, 기업, 대학, 연구소, 전문가 등)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특히 정부, 주민, 전문가 등 이른바 마을공동체사업의 핵심 3주체가 참여, 교육, 컨설팅 등을 통해 농촌마을공동체의 계획 및 개발에 필요한 사회적 자본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중간지원조직의 구축도 절실하다. 농촌지역의 공동체사업의 주체가 될 '민주시민'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중간지원조직이 '사회적 자본의 발전소'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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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지역의 ‘사회적 자본 발전소’ 모델, <완주공동체지원센터>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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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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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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