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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아일체'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물아일체'에 자연을 뜻하는 '물' 대신 '듄'이란 낯선 단어가 들어갔다. '듄'이 뭘까. 이미 고등학생들에게는 친숙한 단어인데, 알고 보면 '입시공화국'의 단면을 보여주는 슬픈 뜻이 담겨 있다.

혹시 컴퓨터 자판이 있다면, '듄'에 해당하는 영문을 보자. 'EBS', 즉 교육방송을 뜻한다. 그러니 '듄아일체'를 풀자면 'EBS와 내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몇 년 전부터 교육 당국이 수능과 교육방송의 연계 정책을 펼친 덕분에 고3 교실은 '듄아일체'가 돼버렸다. 고3 학생들의 '듄' 사랑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서글픈 몸부림이다.

학교 혁신과 교육 민주주의에 관한 단상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 책표지 학교 혁신과 교육 민주주의에 관한 단상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 살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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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책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쓴 16년 차 교사 정은균씨는 고3 학생들에게 이렇게 선포했다.

"내년 수업 시간에는 '듄'을 다루지 않겠다. 3학년 교과 과정에 맞게 차근차근 수업을 진행해 나갈 것이다. 혹시 '듄'을 다루거나 그와 비슷한 입시 대비 수업을 하더라도 일방적인 문제 풀이는 하지 않겠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격으로 대학 진학을 고려하지는 말자." - 185쪽

당신의 기준에서 볼 때, 참 '나쁜' 선생님인가. 좋다, 의견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착한'의 진정한 의미가 혼란스러운 지금, 당신의 '나쁜'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말이다.

정은균 시민기자의 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생각이 더욱 또렷해졌다. 그래, 오히려 이런 '나쁜' 선생님들이 필요한 시대다.

'벌떡 교사'가 '배운 괴물'을 막는다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들을 교육한다. - 초중등교육법 제20조 제4항

법률이 규정한 교사의 임무는 이토록 간명하다. 학교는 공장이 아니다. 학생은 조립할 대상이 아니며 찍어내는 상품이 아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다. 고3 교실을 획일적으로 '듄아일체'로 만들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고 근시안적 잣대로 대책을 내놓는다. 꼭 교육 문제만이 아니다. 익사 사고를 막겠다고 계곡을 메운다는 식이다. 그래서 요즘 '기적의 논리'나 '헬조선식 일처리'란 말이 유행이다.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것을 모두가 안다. '헬조선'과 '노오력', 그리고 '흙수저'란 단어가 왜 '국사교과서'로 튀었는지 우주만 안다. 오죽하면 2015년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중·고등학생들'이 선정됐겠나. 참 미안하고 낯 뜨겁다.

정은균 시민기자는 그간 쓴 글을 깁고 더해 이 책을 냈다. 여기서 그는 "교육은 조각이다"란 말에 푹 빠진 적이 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서 가능성을 찾아내고 숨은 능력을 드러내 주는 교육의 한 본질을 잘 드러내는 말 같아서"였다.

하지만 이제 '조각'만으로 교육이란 단어를 온전히 담기엔 부족하다고 말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학생들을 지켜보고 또 배웠을 교사이기에 가능한 성찰이다. 책에서는 안타까운 자성과, 그럼에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저자는 자신을 스스로 '벌떡 교사'라 칭했다. 책에 따르면 교무회의 같은 데서 '벌떡' 일어나 나름대로 입바른 소리를 하는 교사가 있다고 했다. 세상 물정과 조직 논리를 모른다고 매도되는 사람, 그가 바로 '벌떡 교사'다.

한국 사회에는 뿌리 깊은 문화가 있다. '너만 닥치고 있으면 조용한데 왜 나서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해?' 정신이다. 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보수적인 교직 사회에서 어지간한 용기로는 '벌떡' 일어나지 못한다. 저자 역시 여전히 '벌떡' 설 때는 가슴이 두방망이질 친다고 고백했다.

튀는 교사는 별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 학부모는 자녀가 개성 넘치는 교사 아래 있기를 그다지 바라지 않는다. 교육철학이 뚜렷하고 소신이 넘치는 교사는 '불온' 딱지를 얻는다. 학부모와 학교는 그들을 말없이 받아 줄 만큼 유연하지 못하다. 그럴수록 학교나 교무실은 점점 더 정적인 공간이 되어 간다. - 35쪽

그럼에도 '벌떡 교사'가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민주적이지 못한 학교가 민주 시민을 길러낼 수 있을까. 회의적이라고 본다. 저자는 이를 "'벌떡' 일어서지 않는 교사 아래서 '배운 괴물들'이 나온다"고 표현했다.

학생만 줄 세우기? 교사도 '등급 매기기'

'벌떡 교사'가 되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든다. 불이익이 뒤따른다. '줄 세우기' 사회는 학생들로 모자라 선생님들에게도 '등급'을 매기고 있다. 교원성과급제가 그 주인공이다. 지독한 경쟁 구도를 낳고 이에 따라 서로를 이간질하는 구조를 완성했다. 이제 교무실도 '점수 시스템'이 지배한다.

성과급제는 '강탈' 시스템과 비슷하다. 성과급 예산은 교육 공무원 각자에게 돌아가야 하는 봉급의 일부에서 뗀 돈을 이용해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사들은 등급에 따라 돈이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성과급제 시스템에서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동료 교사와 경쟁한다. 눈으로 보기 힘든 '진짜 교육'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결과물에 집착하는 '가짜 교육'에 몰두한다. 강탈 시스템이 지배하는 교무실에서 교사들은 시나브로 '성과'의 노예가 되고 있다. - 77쪽

이런 상황에서도 '벌떡 교사'들이 존재하기에 희망이 있다. 이를테면 '착하다'처럼, 흔히 쓰지만 놓치고 있는 말의 경우가 그렇다. 사회에서 이제 '착하다'는 말은 칭찬이라 하기 애매하다. 문맥에 따라선 '이 풍진 세상, 그리 어수룩해서 어찌 살래'란 측은지심이 깔리기도 한다.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무심코 뱉는 동료 교사의 '선생님 반 애들은 말을 잘 들어요, 정말로 착한 것 같아요'가 불편했다. '아이들은 교사 말에 복종하는 대상'이어야 한단 전제가 깃든 말이다. '말 잘들어요→착하다'란 의미 사이에 명령과 복종, 지시와 순종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저자는 교사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착하다'는 언사는 중립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인간상을 규정하는 말로 변색됐다고도 덧붙였다. 개탄스럽고 미안했다. 당연하게도, 본디 '착하다'는 말에는 한쪽 일방의 헌신이나 복종의 의미가 없다.

'착한' 아이들은 언젠가 우리 사회를 역습할 것이다. 교사에게 고분고분 순종하기만 하고, 아무 말 없이 자기 공부만 하는 아이들이 교사의 말을 거부하는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내면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불우함을 공감하듯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착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역설적이게도 선한 곳이 될 수 없는 이유다. - 100쪽

쉽지 않겠지만 '벌떡 교사'가 많아지길 바란다. 학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인권 감수성을 지닌 민주 시민을 길러낼 의무가 있다. 교육 현장에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이에 대한 제도적·구조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갈 길이 멀다.

아울러 아이들을 보는 슬기로운 눈이 필요하다. 저자는 기형도의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를 인용하며 책을 마무리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고유하고 다양한 색을 지녔다. 교사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먼지'가 아닌 '푸른색'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길 희망한다.

먼지 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아이들의 '먼지'가 아니라 '푸른색'을 볼 줄 아는 눈을 갖고 싶다. 나는 교사다. - 284쪽

덧붙이는 글 |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정은균 지음 / 살림터 펴냄 / 2016.01 / 1만 5000원)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 학교 혁신과 교육 민주주의에 관한 단상

정은균 지음, 살림터(2016)


태그:#정은균, #시민기자,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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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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