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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에 있는 샨티학교 학생들 사진
 문경에 있는 샨티학교 학생들 사진
ⓒ 조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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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경 산골에 있는 샨티학교 글쓰기 강사다. 이곳에는 어른들의 잣대로 만들어놓은 삶과 교육에 지친 십대들이 모여 있다. 불안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라고 날마다 확인하며 위로받는 곳이다. 겨우내 눈이 녹지 않는 학교 뒷산을 히말라야 설산이라고 상상한다. 일주일에 세 번, 싱싱한 젊음을 만나러 히말라야로 간다.

수업이 시작되자 한 학생이 묻는다. "왜 수업이 '글쓰기를 부탁해'인가요?" 내가 원하던 질문이다. 누군가 한 명은 물어주길 원했다. 학생들에게 제발 글쓰기를 하자고 애원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고민해온 이야기를 풀어냈다. 

"남들이 당신을 설명하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든지 또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남들이 말하게 하지 마라"는 마사 킨더의 말이 생각났다.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을 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수업의 진짜 이름은 '자신을 알기를 부탁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선생님은 자신을 알고 있나요"라고 물을까봐 고해성사를 했다. 글쓰기를 통해서 나를 잘 안다고 멋있게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른 중반을 넘어서고도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다만 어떤 사건을 겪을 때 글쓰기 이전의 나와 글쓰기 이후의 나는 분명 다르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부대낌이든, 세상과의 관계든 한 발짝 물러서서 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할까.

대학이 아니면 다른 길이 없었던 10대의 터널을 무사히 지나온 것도 야자 시간에 몰래 쓰던 일기 때문이었다. 친구에게 다 털어놓을 수 없는 땡감 같은 감정을 쏟아내고, 막연한 꿈들을 나열하면 살아갈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산후우울증에 걸려 허덕이고 있을 때 잠들지 않는 날에는 꼭 글을 썼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이 아니라 토해내는 피울음 같은 글이었다.

긴 여행을 떠났을 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단어가 '글쓰기'였다. 마치 유명한 작가라도 된 듯 노트를 끼고 살았다. 글을 쓰고 남들에게 보여주는 게 겁이 나 꽁꽁 동여맨 글들은 여전히 장롱 속에 있다. 아직도 누가 볼세라 답안지를 숨기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소심함까지 고백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글쓰기를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

<글쓰기를 부탁해> 수업 이야기
▲ 글쓰기 수업 첫 시간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하다 <글쓰기를 부탁해> 수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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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기 부끄러울까봐 적어보라고 쪽지를 나눠줬다. 앗, 필수 수업인 글쓰기 수업을 기다렸던 학생도 있었구나. 다양한 시도와 모험을 할 것이니 마음을 열고 수업에 와달라고 했다. 수업시간에 끊임없이 글을 적을 것이며, 어떤 글을 쓰든 너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너의 글에 빨간 펜을 들이대며 난도질은 하지 않으리라고 덧붙였다.

"어떻게 하면 안 잘까요?" '글쓰기를 부탁해' 수업이 아니라, '졸지 말기를 부탁해' 수업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질문의 솔직함에 박수를 쳐줬다. 수업시간 내 주구장창 글을 쓸 거라 잘 시간이 없을 것이다. 혹시 잔다면 내 목소리가 감미로워서 자는 거라 착각하리라. "나이는 어떻게 되시나요." 어머, 내가 매력적이긴 하구나. 이건 나의 대한 순진한 관심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는데 "선택으로 안 바뀌나요?" 질문이 나왔다. 안 바뀐다고 명쾌하게 이야기해줬다. 글쓰기의 매력에 흠뻑 빠지도록 해주리라는 오기가 생겼다.

"수업 중 검정고시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업도 준비가 돼 있나요?" 타임머신을 타고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대안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누리는 자유와 동시에 검정고시에 부담감을 안고 있는 10대들. 어디 검정고시뿐이겠는가. 대안학교 다닌다고 하면 따갑게 보는 시선 앞에서 당당해지기 위해서라도 글쓰기가 필요하리라.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초등학교 학생들의 장래희망 1위가 공무원이라고 한다. 불안한 세상 목이 쉬도록 '안정'을 부르짖었던 어른들. 안정 속에서 사라져간 많은 꿈들은 어디로 간 걸까.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거부하고 '비주류'로 살아온 나. 아니 내가 원하지 않는 세상에 편입될 수 없었던 나는 흔들리는 눈망울들에게 말한다.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사람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고,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원해요. 세상에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제가 선택한 것은 글쓰기에요."

글쓰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주를 돌아 한 권의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글쓰기와 책 때문에 내 인생이 꼬인 것만은 확실하다. 더 좋은 쪽으로! 온몸으로 10대들을 만나고 온몸으로 글을 쓸 것이다. "얘들아! 졸지 말고, 글쓰기를 부탁해" 하며 구걸할지라도 내 목소리는 까랑까랑할 것이다.


태그:#글쓰기, #대안학교, #샨티학교, #글쓰기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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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쓸 때는 은둔자가 되고 싶으나,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여인. 곧 마흔, 불타는 유혹의 글쓰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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