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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숙 선본
 홍지숙 선본
ⓒ 홍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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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꽤나 안다는 사람들은 항상 어떤 전략을 이야기한다.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저런 국면에서는 저렇게, 이렇게 훈수만 두는 '훈수꾼'들이 한국사회에는 좀 많다. 훈수가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훈수가 상황을 점검하고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훈수는 상대방을 잘 '이해'하고 있을 때나 가능하다.

요즘 훈수꾼들이 자주 등장하는 판은 청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뭐, 인간의 삶이 한번은 청년기를 거치니 아무나 한 마디씩 투척한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둥, 투표를 안 해서 그렇다는 둥,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둥, 온갖 훈수들이 둥둥 떠다닌다. 그렇지만 이런 훈수들은 대부분 영양가가 없다. 구체적인 대상 없이 속풀이 삼아 그냥 던져진 말들이 많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경기도 과천․의왕시 녹색당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홍지숙씨의 선거본부를 찾았다. 청년이나 미래를 표방한 후보자들은 다른 정당에도 여럿 있지만 선거본부 자체가 청년들 중심으로 구성된 경우는 별로 없다. 이들은 왜 정치를 택했을까?

녹색당 과천의왕 국회의원 후보로 나온 홍지숙씨는 35세이다. 그리고 선거본부에서 활동하는 장예정씨는 23세, 박주영씨는 20세이다. 가끔 거리 유세를 다니면 아들, 딸이냐고 묻는다고 한다(참고로 세 사람 모두 여성이다). 홍지숙씨가 노안이란 얘기는 아니고, 공직선거법상 배우자나 직계가족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으니 시민들이 그동안의 선거 관행에 익숙해진 탓이다(라고 믿는다!). 마치 이벤트 행사처럼 청년비례대표를 뽑고 청년정책을 만들어도 한국의 선거는 여전히 기성세대 중심이다. 선거과정은 비혼이나 청년에게 불리하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도 불리하다(선거 공탁금 1,500만원이라니, 알바들의 연봉이다!!). 이런 제도는 전혀 손대지 않은 채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말만 난무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불리함을 감수하고서도 이들이 정치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앎과 삶의 일치를 위해 우리는 정치에 나섰다

대안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을 가지 않고 정치에 뛰어든 박주영씨는 녹색당의 비전에 공감했다고 한다. 나의 삶이 곧 정치라고 생각했던 주영씨는 말과 삶이 괴리된 사람들에게 실망하면서 녹색당을 선택했다. 학교에서는 정치에 관해 배우기만 할 뿐 직접 참여하는 건 애매했는데, 졸업한 뒤 녹색당에 가입했고 얼마 뒤 자신의 지역에 녹색당 후보가 출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우연히 선거본부 사람들을 만나 참여하게 됐다(엮였다). 후보와 함께 돌아다닌 지 2주일이 되어가는 새내기이다.

대학을 가지 않고 정치판에 뛰어드는 걸 걱정하는 부모님에게 "공부야 학교를 다니면서 충분히 하지 않았나, 모르는 게 있으면 여기서 모르는 걸 배울 꺼다."라고 주영씨는 말했다. 이제는 도리어 부모님에게 정당투표는 녹색당이라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선거운동에 참여하면서 주영씨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처음에는 "와, 내가 후보를 만난다고? 후보님, 뭐라고 부를까요? 그랬더니 지숲이라고 부르라고. 아, 정치가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는 거구나. 아마 제게도 엘리트주의 같은 게 있었는지, 실제로 만나니 그냥 지숲이구나. 지난번에 루카님이 선거운동 촬영하러 왔는데 지숲이 길 가다가 초록색 옷에 꽂혀 가지고 정신을 못 차리는 거예요(웃음)." 홍지숙 후보가 내건 구호는 '평범한 우리, 정치하자'이다.

이사를 하자마자 집 경계선 문제로 옆집 국회의원과 싸우면서 정치를 항상 가깝게 느껴왔다는 장예정씨는 대학 4학년 1학기를 휴학하고 선거운동에 결합했다. 하루를 JTBC 뉴스로 마무리한다는 예정씨는 역사와 법을 전공하고 현실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예정씨는 정치에 매우 부정적이었고, 사실 그래서 정치에 직접 나섰다. 기존의 정치가 모두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에 녹색당이 다가왔다고 한다.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우리가 먹는 게 이만큼 중요하고, 우리가 쓰고 있는 전기가 이만큼 중요하고,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소수자에게도 평등한 권리가 있고. 너무도 당연한 얘기를 하는 정당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얘기를 하는 정당이 나타났으니 여기에 결합해야지 생각했어요. 특정한 의제에 꽂힌 건 아니었어요. 기본소득도 와 닿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고." 예정씨에게 녹색당은 상식을 고집하는 정당이다.

예정씨는 정치에 관심이 없던 홍지숙씨가 후보로 활동하는 걸 보며 정치에 희망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관심이 없다가 출마까지 할 만큼 큰 관심을 갖는 건 처음 봤어요. 지숲을 독서모임에서 처음 만났고 후보로 나선 뒤 간혹 하는 인터뷰를 들으면서 저는 개인적인 희망을 가지게 되었어요. 주변의 관심 없는 사람들도 어느 순간 우리의 생각에 동참할 수 있겠구나, 어느 순간 관심을 가질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 선거본부를 어떻게 소개할까? "평범한 시민들도 정치를 할 수 있고 정치를 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가 출마한다고 얘기해요. 목소리를 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지숲이 총대를 멘 거다." 총대를 멘 건 맞지만 후보는 대표도 대변인도 아니고 시민들의 마이크이다.

청년들에 대한 훈수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슬쩍 물어보자 예정씨는 "청년들이 투표를 안 한다기보다는 노인들이 투표를 너무 열심히 하는 거죠. 저는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게 제 주변은 다 열심히 투표를 하거든요."라고 답한다. "청년이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해요. 20대, 30대, 이렇게 나누는 건 몰라도. 그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청년이라는 점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청년이 아니다. 서로를 동등한 시민으로 보지 않는 나쁜 습성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죄송) 홍지숙씨는 어떨까? 지숙씨는 "정치가 내 삶에 미치는 영향도 몰랐고" 이미 민주화가 된 줄 알았고 자기 삶을 가로막는 장벽도 별로 없었고 학생운동도 좀 실망스러워서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지숙씨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건 학교가 아니라 교회였다. 개인적인 신앙에서 사회적인 문제에 책임을 지는 신앙인으로 성장하면서 홍지숙씨는 <녹색평론>을 읽고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녹색당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당원이 되다니"라고 일기에 적을 만큼 녹색당에 참여한 계기는 아주 우연이었다. 지숙씨는 2014년에 과천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서형원씨를 통해 녹색당을 접했다. "서형원 캠프에 뭐 도와달라고 해서 잠깐 갔는데, 여자들이 반 이상이고 어렸을 때 집에서 반상회하는 분위기였어요. 내가 가니까 회의를 하다가 멈추고 서로 소개하며 한 바퀴 도는 거예요. 그런 게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끝날 때 처장님이 당원가입 했어요? 이렇게 물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날 인터넷으로 가입했어요."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정치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녹색당에서 이런저런 일을 거들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 정치는 이런 것 같다 주장하게 되었어요. 사실 선거 시작하고 나서도 몰랐다가 알게 된 거 정말 많아요." 녹색당은 지숙씨에게 '나도 정치를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자각시켰다.

그래도 왜 녹색당일까?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라는 건 녹색당에서 만난 사람들이 보여준 모습이었어요. 훈수질을 안 했어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주도권을 주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의견을 반영하고. 실제로 의견이 반영되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말 한 마디가 녹색당이 가는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을 하니 책임감을 갖게 되고. 객체가 아니라 주체이니까." 그럼에도 기대 이상으로 열악한 당의 상황이었지만 지숙씨에게 녹색당은 만족스러운 곳이다. "녹색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좋았고, 사람들이 정말 좋았어요. 사람이 좋으니깐, 사람 만나고 싶어서 녹색당이 왔지. 내가 성장하고 싶어서 녹색당에 온 건데, 성장하려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여기 좋은 사람들이 많다." 이념과 가치가 구호보다 사람들로 구현될 때 정치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홍지숙 선본의 선거전략은 평범함을 드러내며 다가서는 것이다. 그래서 그 활동을 보고 있으면 설렌다. 코빼기도 안 보이던 타정당 후보들이 대형 현수막부터 내걸 때 홍지숙 선본은 길거리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건넨다. 분명한 가치와 노선은 있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은 조곤조곤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 대화 속에 후보도 설레고 만나는 시민들도 설렌다.

그렇지만 그런 설렘이 정말 득표로 연결될까? 아닐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 예정씨는 "당선이 못 된다는 걸 알고 시작했고, 아니깐 다른 선본이 못하는 걸 할 수 있고 그걸 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지역구에서 표를 더 많이 얻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비례대표를 당선시키는 것이 목적이고 우리의 목소리들을 모아서 전달하는 게 목표잖아요. 우리를 안 뽑아도 이런 걸 하고 있구나,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선 참 쿨한 발상인데, 뭐, 세상일은 모른다. 웃자고 시작한 일이 생업이 되는 걸 가끔 보게 되니깐.

그래도 선거비용으로 나가는 돈은 어쩌나? "15%가 되어야 선거비용 보전을 받겠지만 못 받는다고 생각하고 아껴 쓰고 있어요." 고르게 가난한 선거운동이 되어야 하는데, 이 선본은 정말 가난하다.

그럼에도 선거에 나서는 이유는 절실해서이다. 아니, 정말 정치를 하고 싶어서이다. 지숙씨는 "당선을 떠나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하고 싶어요. 이 선거가 아니면 제가 아무에게나 못 다가가요. 녹색당 얘기도 못하고. 지금은 후보니까 달려들어서 얘기할 수 있고 그 사람들도 싫더라도 귀를 기울여보고. 국회의원 후보라고 하면 나이든 남자일 줄 알았는데, 젊은 여자애가 아들, 딸이랑 같이 다니고(웃음). 자식도 많아. 사람들이 일단 거기서 어 생각하는 게 있어요. 이런 걸 어떻게든 활용하고 싶어요."라고 절실하게 말한다.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좀 절실해진다.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홍지숙 선본의 장점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선거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밑바닥을 다지다보면 어느 순간 끓어오르는 시점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물론 그 시점은 몇몇 사람들만의 힘으로 정해질 수 없지만 또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모르지 않는가. 그리고 그 사건은 선거 전이 될 수 있고 선거 후가 될 수도 있고.

인터뷰를 하면서 내 자신도 기성세대의 관념에 쩔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면,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충분히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인터뷰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 "와 훌륭한 청년들이 나타났네", 이따위 이야기를 나열했을지 모르겠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훈수가 아니다. 사실 세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세 사람에게는 영향을 미친 각기 다른 인물들이 있다. 박주영씨에게 영향을 많이 미친 사람은 대안학교의 선생님으로 녹색당을 연결해준 사람이다. 장예정씨에게 영향을 많이 미친 사람은 성당 신부님으로 탈핵운동을 열심히 하는 신부님이다. 홍지숙씨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은 교회의 목사님으로 <녹색평론>을 소개하고 사회에 대한 인식을 넓혀 줬다. 말이 아니라 삶이 정치의 씨앗을 서로의 가슴 속에 심어주고, 그렇게 정치는 사람과 사람을 통해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을 무조건 지지하진 않더라도 이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보자. 그래야 미래가 있다.

녹색당 홍지숙 후보의 홈페이지http://www.zisoop.com



태그:#홍지숙, #장예정, #박주영,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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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서 가입을 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라는 거창한(?) 호칭은 싫어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주로 책동네에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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