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전여성정치네트워크(이하 여정네)가 10주년을 맞았다. 10년 세월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여정네와 함께 했다. 그 중에서도 20대 후반을 치열하게 이곳에서 보낸 유일한 남성회원 송석신씨가 있다. 그는 여정네가 아주 특별한 곳이라고 말한다. 여정네의 무엇이 그를 변화시키고 성장시켰는지 들어봤다.

송석신(34)씨가 여정네의 문을 두들긴 것은 2007년, 대학 3학년 때다. 인연은 그가 김경희 대표가 강의했던 여성학 수업을 들으면서 시작됐다. 여정네를 소개하며 사무실에 놀러오라는 김 대표의 말을 26세 청년은 흘려듣지 않았다.

여정네가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호기심에 따라 다른 회원들과 함께 여러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시각이 조금씩 변화되었다. 

"그 때만 해도 양성평등을 남녀를 똑같이 대하는 것으로만 이해했어요. 여정네 활동을 하면서 각종 세미나와 인문학 강좌,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점점 시각이 바뀐 거지요."

그는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기도 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였던 그곳에서, 사측이 고용한 용역깡패들이 시비 거는 장면을 직접 봤다. 물대포와 몽둥이가 등장하고 전경들로 둘러쌓인 시위 현장에서 그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 때 시위하는 걸 처음 봤거든요. 용역깡패들의 횡포를 보고 이가 갈리더라구요."

대전여성정치네트워크의 유일한 남성 회원 송석신씨
 대전여성정치네트워크의 유일한 남성 회원 송석신씨
ⓒ 이은하

관련사진보기


송씨는 사회가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정당 정치인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다시 하게 됐다.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우리가 욕하는 사람들과 똑같더라구요. 정치하는 사람에 대해 환멸감이 올라왔죠."

그러나 여정네 회원은 달랐다. 언어나 몸가짐에서 의견이 달라도 존중해주는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과 만나면 늘 힘을 얻었다.

"한국사회에서는 나이가 어리면 너가 뭘 아냐고 무시하거든요. 여정네에서는 모두가 평등했어요. 의견을 막지 않고 들어 주며 토론하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뒤치닥거리만 시키는 기업체와도 확연히 달랐다. 그는 청소년정치아카데미, 벼룩시장 등 여러 사업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했다. 사업계획서를 쓰고 강사 섭외를 하고 사업 진행을 하면서 활동가로서 여러 역량을 키워나갔다.

"대기업에 갔다면 서포트 하는 일만 했을 거예요."

그는 일을 할 때 필요한 전문성도 향상됐지만 사람에 대한 진중한 태도,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비빔밥처럼 어우러져야 사람과 소통하는 기쁨을 얻는다는 것을 배웠다. 회원들이 바로 선생님이었다.

"처음 여정네에 왔을 때 제가 유일한 남성 회원이었거든요. 여성들 속에서 청일점으로 있는 게 쑥스러워 얼굴이 빨개지곤 했어요. 지금처럼 누나 동생하며 지낼 줄은 상상도 못했죠."

그는 교육을 받고 여정네 활동을 하고나서야 자신이 대학에 와서 성교육을 처음 받은 현실
을 인식했다.

눈이 나쁠 때 안경을 쓰면 세상이 더 잘 보인다. 그는 기쁘게 '여성주의' 안경을 썼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가 쓴 안경은 요술방망이처럼 그를 더 돋보이게 했다.

"이곳에서 소통의 기쁨을 알게 된 점이 제일 행복해요. 벼룩시장이 단순히 안 쓰는 물건 파는 곳이 아니더라구요. 한 번 찾아주셨던 분들이 그 다음 벼룩시장에 또 오시고요. 그렇게 만나서 소통하다 보니 의남매처럼 지내는 누나들이 여럿 생겼습니다."

100일 된 딸 아율이의 아빠이기도 한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벼룩시장에 왔던 이름 모를 5살 꼬마 아이"라고 배시시 웃었다.

"고생했으니 아이스크림 사달라는 아이와 너가 오늘 돈을 벌었으니 니 돈으로 사라고 답했던 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떠올라요."

벼룩시장이 경제교육의 장이자 환경교육의 장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송석신씨는 좋은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을 가장 큰 수확으로 꼽았다. 그는 지금 한 회사의 어엿한 사장이다. 여정네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남들 시선을 의식하며 아직도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저는 결혼 후에 아내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밖에서 일을 하고 아내가 출산을 하고 딸 아율이의 육아를 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아내가 더 많이 하게 됐어요. 오랜만에 여정네 사무실에 와서 수다를 떨다보니 나의 가부장적인 모습이 오버랩 되어 반성을 하게 되네요."

그러나 송석신씨는 새벽 1시까지 딸아이의 100일 상을 손수 차리고 벽장식까지 하는 자상한 아빠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느라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그는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와 여정네 수백 명 회원들은 나이도 다르고 성장배경도 다르다. 하지만 소통이 세상을 바꿀 힘을 준다는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가진 믿음은 10년 세월을 거치며 새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오랜만에 여정네에 와서 수다를 떠니 살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송 회원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태그:#대전여성정치네트워크, #여성단체남성회원, #페미니즘, #남성페미니스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이밥 대표이자 구술생애사 작가.호주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전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