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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서 김금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일상을 가만히 견디다가도 어느 순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서 주변의 누군가에게 - 낯선 당신에게라도 - 가서 막무가내로 묻고 싶을 때가 잦은데, 그건 그러니까 왜 이렇게 됐습니까, 하는 질문이다.

김금희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는 작가의 이 질문, "왜 이렇게 됐습니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과도 같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이렇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왜 이렇게 슬프고 절망스럽고 또 견뎌내야 할 그 무엇이 돼버린 걸까요.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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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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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그래서인지 9개의 단편소설 속엔 저마다의 과거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과거, 어떤 과거. 화자의 과거, 주인공의 과거. 좋았던 과거, 비참했던 과거. 각기 다른 과거들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에까지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리네 모두의 과거가 그렇듯이.

단편 하나, 하나를 읽어가면서, 읽은 페이지의 두께가 두꺼워지고 남은 페이지가 얇아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저는 약간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습니다. 과거를 말하는 이 짧은 소설들이 취하고 있는 자세가 그 자체로 과거 같다고 느껴졌거든요. 아득하고 아련하고 또 지우고 싶기도 하면서 잊힐까 봐 두려운 과거 말이에요.

소설은 명료한 메시지를 주지 않습니다. 어렴풋이 더 슬픈 감정에서 덜 슬픔 감정으로, 희망 없음에서 희망 있음으로 나아가는 듯하다고 느낄 뿐입니다. 명확한 말이 아닌 불투명한 정서로 다가오는 이 소설을 받아들이는 주체는 그래서 가슴이 됩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들 속에서 어떤 간명한 메시지를 끄집어내 글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느낀 정서가 '슬프지만 따뜻한'이었거든요. '아름답고 따뜻한'도 되겠네요. 아릿하고 슬픈 이야기 속에서 찾아낸 따뜻함이라는 정서. 이 소중한 정서는 책의 표제작 '너무 한낮의 연애'에도 있었습니다.

부끄러워 말아요

소설의 주인공 필용 또한 과거를 추억합니다. 그가 과거를 떠올리는 연유에는 이런 사정이 있습니다. 인사 이동 통보. 영업팀장에서 시설관리팀 직원으로의 좌천. 좌천은 사실상 권고사직이란 걸 알지만 그렇다고 회사를 떠날 수는 없는 필용. 회사를 떠나진 못했어도 사람들과 함께 아무렇지 않은 듯 점심을 먹을 생각은 들지 않는 필용의 머리에 떠오른 건 십육 년 전 종로의 맥도날드였습니다. 필용은 맥도날드에서 양희와 함께 햄버거를 먹곤 했지요.

이 소설이 지닌 독특하면서도 말간 분위기는 양희로부터 나옵니다. 양희라는 사람, 양희라는 존재는 흐릿하여 실감마저 느껴지지 않습니다. 과연 이런 사람이 내 주위에도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없었습니다. 묘하면서 진실하고 무심한 듯 하나 다정한 양희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어떤 가치를 나타내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책에선 필용과 양희를 이렇게 대비시킵니다.

필용과 양희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필용이 앞으로 펼쳐질 인생, 그 과정에서 반드시 이겨내야 할 어려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나서야 얻게 될 성취와 인정에 대해 상상하며 지냈다면 양희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양희에게는 현재라는 것만 있었다. 하지만 그 현재는 지금 생생하게, 운동감 있게 펼쳐지는 상태가 아니라 안개처럼 부옇게, 분명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게 풀풀 흩어지는 것에 가까웠다. 뭔가 생활 자체가 그랬다. - 본문 중에서

필용이 추구하는 가치와 양희가 추구하는 가치는 다릅니다. 필용이 추구하는 가치는 사실 우리 대부분이 추구하는 가치지요. 미래, 극복, 성취, 인정. 하지만 '추구'라는 말 자체와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양희에겐 현재에 살면서 현재를 바라보는 것만이 중요해 보입니다.

이러한 양희의 삶의 태도는 어떤 의지나 의도에서 비롯된 건 아닌 듯해요. 양희는 그냥 그렇게 그런 사람이 된 것 같거든요. 이런 양희가 바라보는 건 현재뿐만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삶, 감정도 지긋이, 무심히 바라보지요.

필용은 자기 스타일은 영 아니나 심심하기도 해서 과후배인 양희와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 나날을 보냅니다. 필용에게 양희는 '위대한 듣기 능력'이 있는 아이일 뿐이었습니다. 필용의 허세 가득한 말들을 잘 참으며 들어주더라고요. 그러다 그날 이후 필용의 모든 것이 흐트러집니다. 뜬금없는 양희의 사랑 고백. 그런데 사랑 고백을 한 양희는 아무렇지 않고, 필용만 안달이 납니다.

내일이면 사라질지 모르는 감정이지만 오늘은 선배를 사랑한다는 양희의 희한한 고백은 필용을 미치게 합니다. 양희가 아닌 많은 것에 관심을 보이던 필용에겐 이제 양희만이 관심 대상이 됩니다. 필용은 매일 양희에게 아직도 나를 사랑하느냐 묻는데 정신을 다 쏟습니다. 그러다 한낮의 맥도날드를 벗어나면 "양희의 외모나 한심스러움, 생기 없음, 무기력함, 가난"을 경멸하곤 했지요.

사랑을 하면 어떻게든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필용과 사랑을 하면 사랑하는 감정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던 양희의 인연이 끝난 건 양희가 더는 필용을 사랑하지 않게 돼서였습니다. "아, 선배 나 안 해요, 사랑"이라고 말하는 양희에게 필용은 할 말 못 할 말 다 내뱉은 후 자리를 박차고 나갔지요.

이후 이번에는 내 쪽에서 사랑 고백을 하려던 필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필용을 가로막은 건 필용의 속물적 기준이었어요. 양희의 집과 양희의 가난이 필용을 멈추게 했습니다. 미안하다 사과하는 필용에게 그런데 양희는 동네 어귀의 거대한 느티나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해요.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나무를 보라고요.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 본문 중에서

십육 년이 지나 필용이 다시 양희를 떠올린 건 양희와 함께 놓고 온 그 무엇 때문이었을 겁니다. 가지 않은 길일 수도 있고, 추구하지 않은 다른 삶의 형태일 수도 있고, 버리고 만 사랑일 수도 있고, 잃어버린 순수일 수도 있고, 그 시절 품었던, 그러나 이젠 사라진 미래, 극복, 성취, 인정에 대한 미련일 수도 있지요.

"다른 선택을 했다면 뭔가가 바뀌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자책감에 필용은 울음을 터트립니다. 그런 필용 앞에 다시 나타난 양희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 필용을 바라봐 줍니다. "그 어느 밤의 느티나무처럼" 나무가 된 양희는 필용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내 앞에서는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난 당신을 비웃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당신도 당신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당신 자신을 비웃지도 말아요. 그게 우리가 할 전부니까요."

덧붙이는 글 |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문학동네/2016년 05월 31일/1만2천원)
개인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문학동네(2016)


태그:#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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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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