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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 추는 현종과 양귀비
 춤 추는 현종과 양귀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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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경 역사무극 <장한가>를 보기 위해 저녁 8시 화청궁 앞에 보인다. 공연이 8시 30분부터니 시간여유가 있다. 외국인에게는 입장시 특전이 있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낮에 보았던 양귀비 동상으로 가 밤에 양귀비의 자태를 살펴본다. 어슴프레 비치는 달빛에 어린 양귀비의 자태가 요염하기 이를 데 없다. 그녀는 허리를 한껏 젖혀 현종을 유혹한다. 현종은 두 팔을 벌려 양귀비가 가까이 오길 기다린다. 주변에 비파를 든 여인들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이것은 8시 30분부터 보게 될 뮤직 드라마 <장한가>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장한가>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장편서사시로, 백거이가 806년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전해지던 이야기를 토대로, 역사책을 참고하고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문체의 노래를 지어낸 것이다. 모두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귀비의 자결
 양귀비의 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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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은 양귀비가 현종을 만나 총애를 받는 내용이다. 하늘이 내린 미녀고, 나라를 무너뜨릴 정도의 미색인 양귀비는, 하루아침에 황제의 간택을 받아 귀비가 된다. 차가운 봄날 화청지를 찾은 두 사람, 양귀비가 목욕을 하자 하얀 살결이 드러난다. 밤의 정사가 힘들었는지, 황제는 다음 날 조회에도 나오지 않는다. 여색과 풍류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음에, 북평현 어양(漁陽)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제2장은 양귀비가 섬서성 흥평현 마외(馬嵬)에서 목매달아 죽을 수밖에 없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란에 놀란 황제는 서남쪽으로 피난을 간다. 도성을 떠나 백 여리, 현종은 신하들의 성화에 못 이겨 양귀비를 자결하도록 한다. 눈물을 삼키며 촉나라까지 도망간 현종은 아침저녁으로 양귀비를 그리워한다. 그러면서 달빛에 상심하고, 빗소리에 애를 끊는다.

 천상의 양귀비
 천상의 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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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은 현종이 양귀비 생각에 잠 못 이루고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반란이 평정되고 돌아가는 길에 마외에 이르러 그녀를 찾으나 옥 같은 얼굴(玉顔) 보이지 않는다. 부용지의 연꽃을 보고 양귀비의 얼굴을 생각하고, 미앙궁의 버드나무를 보고 양귀비의 눈썹을 생각하지만, 다 무슨 소용이던가. 봄날의 도리화(桃李花), 가을의 오동나무 쓸쓸하기만 하고, 꿈속에서 혼백이라도 만나고 싶어 한다.

제4장은 현종이 선계로 양귀비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도사와 방사(方士)의 도움으로 하늘나라로 올라간 현종은 선산(仙山) 누각에서 양귀비를 찾아낸다. 그러나 둘은 합방하지 못하고, 그녀가 쓰던 나전합(鈿合)과 금비녀만 전해 받는다. 양귀비는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다음과 같은 노래를 읊는다.

 장생전 야경
 장생전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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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칠석날 장생전에서                           七月七日長生殿
깊은 밤 둘이서 밀담을 나누었죠.               夜半無人私語時
하늘을 날려거든 비익조 되고                    在天願作比翼鳥
땅에 살려면 연리지 되자구요.                   在地願爲連理枝
장구한 천지는 다할 때 있겠지만                天長地久有時盡
이 한은 면면히 이어져 끊어지지 않으리다.  此恨綿綿無絶期

공연을 보러 구룡호 앞 비상전으로 가다

 실경 역사무극 <장한가>의 무대인 구룡호
 실경 역사무극 <장한가>의 무대인 구룡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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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문을 지나 부용호 앞에 이르니 물속에 비친 장생전이 아름답기 그지 없다. 장생전은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눈 장소로 유명하다. 현종은 국사를 팽개치고 이곳 장생전에서 하루 종일 노래와 음악 그리고 춤을 즐겼다고 한다. 현종이 노래를 만들면, 양귀비가 즉석에서 이것을 연주하고 노래하며 춤을 추는 방식이다. 그러면 현종도 그에 화답해 춤추고 노래하며 장단을 맞췄다고 한다. 이들 두 사람은 예술적인 면에서 천생연분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장한가> 공연은 비상전 앞 구룡호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구룡호가 무대가 되고 비상전이 객석이 된다. 비상전 앞 광장에 객석을 마련했는데, 계단식으로 만들어져 7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객석은 네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장생전 바로 앞에 귀빈구가 있다. 귀빈구 앞에 중구가 있다. 그리고 중구 양쪽에 동구와 서구가 있다. 이들 구역에 따라 입장료가 다르다. 귀빈구가 490~990위안이고, 중구가 240~300위안이며, 동서구가 190~260위안이다.

 비상전 앞의 관객들
 비상전 앞의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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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구에 앉는다. 객석이 거의 만석이다. 수상무대 위쪽으로 궁궐 역할을 할 용음사 그리고 만하정과 신욱정에 불이 들어와 있다. 그 뒤로 여산이 화청궁의 진산을 이루고 있다. 해가 넘어진 직후여서 하늘이 아직도 푸르스름해 보인다. 말 그대로 실경을 이용한 역사무대다. 이곳에서 잠시 후면 130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불이 번쩍 하더니 별과 달이 온 세상을 수놓는다

 양옥환의 출현
 양옥환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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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무극 <장한가>는 서막을 포함 모두 10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현종과 양귀비가 처음 만나 서로에게 연정을 느끼고 즐거워한다. 현종은 양귀비에 빠져 그녀를 총애한다. 그러나 난이 일어나 둘은 피난을 가다 죽음으로 이별을 한다. 마지막에 두 사람은 선경에서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눈다.

8시 30분이 되자 깜깜한 세상에 불이 번쩍 하면서 서막이 열린다. 여산을 배경으로 별과 달이 떠올라 온 세상이 반짝인다. 부용호에 펼쳐진 무대 전체에 불이 들어오고 연극의 시작된다. 1000㎡가 넘는 부용호에 몽환적 무대가 드러난다. 곧 이어 백옥 같은 얼굴에 하늘하늘한 비단옷을 걸친 양옥환(楊玉環)이 선녀 같은 모습으로 줄을 타고 내려온다.

 현종과 양귀비의 2인무
 현종과 양귀비의 2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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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옥환의 모습을 본 시녀들이 화려한 옷가지로 성장을 시킨다. 그리고 그녀를 호위하며 계단을 올라 현종을 알현하게 한다. 이제 둘의 만남을 축하하는 화려한 군무가 펼쳐진다. 곧 이어 사랑하는 두 사람이 무대로 내려와 둘만의 춤이 이어진다. 이것이 백거이의 <장한가>에서 표현된 현종과 양귀비 사이의 밀담이다. 마지막에 두 사람의 만남을 축하하는 공연이 펼쳐진다.

3막에서 두 사람은 화청궁으로 옮겨 목욕재계한다. 목욕하고 나온 양귀비의 몸에서 나는 향기와 자태로 인해 현종은 정신을 잃는다. 이것을 문학적인 용어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한다. 현종과 양귀비에게 화려하고 즐거운 궁중생활이 이어진다. 4막에서 안록산이 등장해 호선무(胡旋舞)를 선보이며, 당나라의 문화와 예술에 활력을 더해준다. 양귀비가 이 춤을 배워 좀 더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준다.

 연꽃 피는 날의 연회
 연꽃 피는 날의 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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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막과 6막에서 양귀비는 옥루에서 펼쳐진 연회에 참석해 술에 취한 모습을 보여준다. 양귀비는 춘풍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하늘거리며 춤을 춘다. 술에 취한 그녀의 모습은 요염의 극치다. 고력사(高力士) 등 환관은 그녀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다. 여산 북쪽 화청궁에서는 매일 이처럼 연회가 펼쳐지고, 음주가무가 일상화된다. 배꽃피는 날의 연회, 연꽃 피는 날의 연회, 단풍철의 연회 등이 펼쳐진다.

그러나 7막에서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면서 사태는 급변한다. 현종은 양귀비와 함께 궁을 떠나고 궁궐은 불에 탄다. 성당시대의 몰락이 시작된다. 8막에서 피난중인 현종에게 충신들이 간언을 한다. 양귀비를 죽이라고... 둘은 사랑의 2인무를 추며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양귀비는 결국 마외에서 목을 매 아쉬운 생을 마감한다. 현종은 축 늘어진 양귀비를 보며 절규한다. 그녀는 봉황이 되어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오작교에서의 재회
 오작교에서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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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막에서 현종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 장안으로 돌아온다. 그는 양귀비의 얼굴이 생각나 잠을 이루지 못한다. 꿈속에서나마 그는 봉래산이 있는 선경에 올라 양귀비를 다시 만난다. 이때 그들은 견우와 직녀처럼 오작교를 통해 만난다. 양귀비는 무지개로 만든 치마와 깃털로 만든 저고리를 입고 나타나 춤을 춘다. 그래서 그녀가 추는 춤을 예상우의무(霓裳羽衣舞)라 부른다.

지상의 인간과 선계의 여인이 천상에서 만나 함께 추는 마지막 춤이다. 수 많은 백조가 이들과 함께 춤을 춘다. 그리고 그들이 칠월칠석날 한 맹세, 비익조 되고 연리지 되자는 맹세가 울려 퍼진다. 그와 함께 자막이 올라가고, 이들 두 연인은 분수 속으로 사라져 간다. 이렇게 해서 다시 만나자는 그들의 소망은 역사무극을 통해 이루어진다. 연극은 이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이루게 하는 묘한 능력이 있다.

양귀비를 잃은 현종의 말년은 어땠을까?

 안사의 난으로 불타는 궁전
 안사의 난으로 불타는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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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사는 이처럼 해피엔딩이 아니다. 755년 안사의 난으로 양귀비를 잃은 현종은 756년 황제 자리를 태자인 이형(李亨)에게 물려준다. 그가 숙종이다. 그에 따라 태상황이 된 현종은 757년 안사의 난이 평정되자 장안 흥경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환관 이보국(李輔國)의 이간질로, 부자 사이가 나빠져 현종은 태극궁 감로전에 유폐되기에 이른다.

이에 현종은 우울증이 깊어지게 되었고, 762년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위남시 포성현(蒲城縣) 풍산에 묻혔으며, 능호는 태릉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숙종도 현종이 죽은 지 13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 후 당나라는 대종이 황위를 승계했고, 당나라는 점점 더 내리막길로 빠져들게 되었다.

 경국지색 양귀비
 경국지색 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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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청궁을 나오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개원의 치 30년간 성당시대를 만들었던 현종이, 천보(天寶) 연간 어떻게 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을까? 그러나 개원의 치 말년에 이미 현종의 실정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현종의 실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처자식 관리에 실패했다. 두 번째 이들 여인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했다. 셋째 현명한 인재를 중용하지 못했다.

현종은 총애하던 무혜비(武惠妃)의 말에 따라, 737년 태자를 양귀빈(楊貴嬪)의 아들 이형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자신의 14번째 아들 수왕(壽王)의 비인 양옥환을 745년 자신의 비로 만들었다. 더 나가 이임보(李林甫) 같은 간신을 재상으로 중용해 인재를 멀리하고, 언로를 막았으며, 기강의 문란을 초래케 했다. 752년 이임보 사후 현종은 또 양귀비의 오빠인 양국충(楊國忠)을 재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755년 안사의 난이 일어나게 되었고, 나라는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게 되었다. 정치인의 말년은 늘 이렇게 비참한 걸까?


#<장한가>#실경 역사무극#현종과 양귀비#화청궁#개원의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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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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