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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밀짚모자를 쓰면 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지혜의 완성입니다.
 마지막으로 밀짚모자를 쓰면 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지혜의 완성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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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머리에 선다는 입추(8월 7일)가 지났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가을 전령사들의 풀벌레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가을 문턱에 들어섰다고 하면 성급해도 한참 성급할 것 같습니다. 더위는 하늘을 찌를 듯 기세가 등등합니다. 느낌으로 보면 올 여름 중 가장 더운 날 같습니다.

나는 오랜만에 볼 일이 있어 읍내에 나왔습니다. 콩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고서 내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현덕이네 좀 들렸다 갑시다!"
"왜요?"
"그동안 궁금하기도 하고. 참깨 벨 때 되었는데, 좀 여쭤보게!"
"더운데 어딜 가요? 여름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데…."

잠깐 인사만 드리고 오자고 하자, 아내는 순순히 운전대를 현덕이네로 돌립니다. 형제간처럼 우리를 늘 살갑게 대해주는 현덕이네라 오랜만에 인사도 드릴 겸 방문하였습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더위에 고추밭에서...

집 안에 사람이 없어 우리는 현덕이네 고추밭으로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뙤약볕에서 현덕이어머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흔을 넘긴 분께서 한낮 뙤약볕에서 고추를 따고 계십니다.

"아니, 지금 이 더위에 고추 따시는 거예요?"
"첫물고추를 빨리 때내야 하는데, 우린 조금 늦었어!"
"해 숨 죽이면 일을 하셔야지!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덥다고 일 안하고, 선선할 때 기다리다 금방 해 넘겨 못하고! 그럼 어느 세월에 일을 한담!"

요 며칠 벼논에 이삭거름 주느라, 고추 따는 게 늦었다며 찜통더위에도 손을 놓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덕 어머니 차림새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머리에 밀짚모자를 쓰고, 망사 그물망을 동여 맨 모습이 보통 차림이 아닙니다. 아내가 의아해서 묻습니다.

"아니, 머리에 뭘 쓰고 계세요?"
"으응 너무 뜨거워서 얼음을 수건에 넣었지!"
"얼음을요?"
"이렇게 하면 얼마나 시원한데!"
"어머나 세상에!"
"요기 한번 볼래?"

머리 위에 있는 수건 안에 얼음이 들어있습니다. 한 시간 정도는 시원하게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머리 위에 있는 수건 안에 얼음이 들어있습니다. 한 시간 정도는 시원하게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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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들어간 수건을 머리에 얹고 망사로 동여멥니다.
 얼음이 들어간 수건을 머리에 얹고 망사로 동여멥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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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사 수건 같은 걸로 얼음이 든 수건을 묶어주면 흘러내리지 않는다며 당신의 지혜를 보여주십니다.
 망사 수건 같은 걸로 얼음이 든 수건을 묶어주면 흘러내리지 않는다며 당신의 지혜를 보여주십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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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 속에 얼음을 둘둘 말아 넣어 머리에 얹고, 흘러내리지 않도록 망사로 묶었습니다. 추운 날 목도리를 머리 위아래를 묶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밀짚모자를 눌러 썼습니다.

"이걸 어디서 배웠어요?"
"누가 가르쳐 주긴! 하도 더우니까 이렇게라도 해보는 거지!"

현덕 어머니의 천연덕스러운 말씀에 우리는 할 말을 잊습니다. 감동의 머리 패션이 따로 없다며 아내는 혀를 내두릅니다. 파란에 망사 위에 밀짚모자가 예쁘고 멋스럽게 잘 어울립니다.

농부의 마음은 이런 걸까?

아내가 다니러 온 걸 이야기하자 현덕 어머니는 수다스럽게 말씀하십니다.

"참깨 베는 거 때문에 왔다고 했지? 참깨는 아래쪽을 잘 봐야 해. 까매지면서 깍지가 벌어지기 전에 베야하니까. 깍지 벌어진 게 보여서 베면 깨가 많이 쏟아지는 수가 있어! 그건 그렇고, 나도 이제 쉴 참이니까 음료수나 한 잔하게 들어가자구! 토마토 주스로 갈아놓은 거 있으니까!"

우리는 손사래를 치고 차 시동을 걸었습니다. 현덕어머니는 차를 막아서며 "잠깐만!" 하십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비닐봉지에 뭔가를 잔뜩 가져옵니다.

"토마토주스 안 먹고 갈려면 요 토마토나 가지고 가라고! 아침에 따서 아주 좋은 거아! 이걸로 얼음 넣고 믹서에 갈면 음료수로 최고야, 최고!"

우리 차안에 넣어주신 잘 익은 토마토입니다.
 우리 차안에 넣어주신 잘 익은 토마토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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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집에도 농사지은 토마토가 있다 해도 한사코 차안에 넣어주십니다. 전문가가 지은 토마토하고 같을 수 없다면서요.

혹서의 날씨에도 고추밭에서 소중한 땀을 흘리는 현덕어머니의 모습에서 '진정한 농부는 이런 것이구나!' 생각합니다. "덥다, 덥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네가 좀 사치스럽게 여겨졌습니다. 손을 흔드는 현덕어머니께 나는 당부를 하였습니다.

"일도 일이지만, 몸 상하면 안 되니까 쉬엄쉬엄 하시게요. 다음에 또 올게요!"

퇴악볕에서도 열심히 일하시고 우리를 배웅해주시는 현덕어머니
 퇴악볕에서도 열심히 일하시고 우리를 배웅해주시는 현덕어머니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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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혹서, #농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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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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