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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경주에서 지진계측 이후 최대 규모(강도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수도권 지역에서까지 감지됐다. 지진에 놀란 시민들이 건물 밖으로 뛰쳐 나왔다. 정부는 물론이고 국민 개개인 모두 이 일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진 규모가 조금만 더 컸더라도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에 앞서, 가까운 일본의 구마모토현에서는 지난 4월 14일과 16일, 각각 6.5와 7.3 규모의 연쇄 강진이 일어났다. 규슈지역에서 일어난 400년 만의 대지진이었다. 이 지역은 4개월 여가 지난 8월 20일까지만 해도 진도 1 이상의 지진이 2000회를 훌쩍 넘었다. 피해액도 약 49조 원에 이른다. 하지만 민관의 빠른 대처로 수 천명이 구조돼, 인명 피해를 크게 줄였다고 한다.

일본을 보면, 대형 지진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6월 중순 경, 현장 취재를 중심으로 강진을 경험한 구마모토 지역을 돌아보았다. 지진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구마모토 이야기가 그동안 지진에 미숙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말]
지진으로  폐허로 변한 구마모토 시내 주택가 (지난 6월 중순)
 지진으로 폐허로 변한 구마모토 시내 주택가 (지난 6월 중순)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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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 우르르!"


지난 4월 14일 밤 9시 26분 일본 큐슈 구마모토현. 폭탄이 터지는 듯한 큰소리와 함께 천지가 흔들렸다. 구마모토 인근에서 논밭을 산책 중이던 우찌다 게이스케 씨(67,농업문제 연구가·우사토 유기협동농원 이사장)는 현기증을 느끼며 흙바닥에 넘어졌다. 눈앞에 서 있는 전봇대가 심하게 흔들렸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천둥이 칠만한 날씨도 아니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이대로 끝나는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집으로 달려와 뉴스를 보니 진도 7의 강진 때문이었다. 놀랐지만 큰 피해가 없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틀 뒤인 4월 16일 오전 1시 25분. 또 다시 굉음이 고막을 때렸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우찌다 씨는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집 건물이 한참 동안 위아래로 요동쳤다.

"이제 죽는구나 했죠." 

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당시를 떠올렸다. 다행히 점차 흔들림이 약해졌다. 건물을 살폈다. 지붕 기와가 대부분 떨어져 내렸다. 기둥은 금이 갔다. 목욕탕 타일 대부분이 깨져 있었다. 여진이 계속됐다. 급히 자동차 안으로 몸을 피했다. 이때부터 한동안 자동차 안은 우찌다 씨의 침실이 됐다.

지진으로  폐허로 변한 구마모토 시내 주택가 (지난 6월 중순 촬영)
 지진으로 폐허로 변한 구마모토 시내 주택가 (지난 6월 중순 촬영)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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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주변 논밭을 둘러보던 그는 또 한 번 놀랐다. 논밭 곳곳에 금이 쩍쩍 가 있었다. 농업용 저수지마저 무너져 농경지 곳곳이 침수됐다. 집집마다 농기계 창고가 무너져 농기계마저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

우찌다 씨는 미사토마치(美里町)에서 5명의 직원을 둔 유기농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 중순 현지에서 만난 그는 "수리시설이 파괴돼 모내기를 하지 못했고, 토란과 생강, 토마토, 피망 등 농작물은 제때 심지 못해 농사가 제대로 안 됐다"고 말했다. 이어 "농민들의 경우 정신적, 육체적 피해에다 경제적 피해까지 겹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방자치단체인 구마모토 현청에 따르면 두 차례 큰 지진으로 현 내에서 수리시설 1940곳이 피해를 입었다. 논 4만 4000ha도 침수 등 피해를 보았다. 농로도 2017곳이 끊겼다.

구마모토현 아소산 일대는 더욱 심각했다. 구마모토현 미나미 아소 촌이 산사태로 흙더미에 깔렸다. 아소 일대를 포함 구마모토현 내에서 주민 95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는 전체 수 천여명에 달했다. 특히 18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파괴된 가옥은 16만 채로 조사됐다. 전체 피해액은 약 49조 원(한화)으로 추정됐다.

지난 6월 15일 찾은 지진피해 현장은 지진 후 두 달 가까이가 지났지만 그 날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현장은 참혹했다. 땅바닥 곳곳이 심하게 울퉁불퉁 꺼지거나 솟아 있었다. 특히 지진의 진원지인 구마모토 시 마시키마치(益城町) 마을은 거대한 고물상을 보는 듯했다. 도로를 따라 수십여 채의 목조 주택이 폭격을 맞은 듯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무너진 콘크리트더미에 자동차 한 대가 매몰돼 있었다.

기우뚱 기울어진 주택이 도로 양옆으로 한참 동안 이어지기도 했다. 줄 지어선 작은 전봇대도 보였다. 어떤 곳은 전깃줄에 버스 지붕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기까지 하다. 지진으로 땅이 가라앉으면서 작게는 수십cm, 최고 1~2m가량 전봇대가 내려앉은 때문이다. 폭탄이 떨어진 듯 주변으로 수십 채의 집이 무너져 무덤 형태를 띤 곳도 많았다.

무너져 내린 구마모토 성(지난 6월 중순)
 무너져 내린 구마모토 성(지난 6월 중순)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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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역사를 자랑하던 일본의 3대 성으로 불리는 구마모토성도 곳곳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구마모토현청은 구마모토성과 아소산을 복구하는 데만 20여 년을 예측했다. 4월 첫 강진 이후 당시까지 1700회가 넘는 여진이 이어져 본격적인 복구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피해가 심한 지역의 주민들은 당시까지 대피소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13일 현재 주민1500여 명이 가설 주택에서 거주 하고 있다)

학생들의 피해도 심각했다. 구마모토 시내 학교의 경우 지진 발생 후 13일간 휴교를 단행했다. 하지만 일부 학교는 이때까지도 천막을 치고 수업을 하고 있었다. 구마모토 시내에 있는 소학교와 중학교의 체육관 건물 절반 정도가 피난소로 운영되면서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생들은 약간의 소리에도 무서워하는 등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설문조사에서도 소학교 학생의 3명 중 1명이 심리상태가 매우 불안한 것으로 분류, 상담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유아들이 불안감으로 '응석이나 밤 울음이 심해졌다', '밤에 잠을 못 잔다', '식욕이 없다', '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등의 상담이 이어졌다.

구마모토 현 교육위원회에서는 학교별 심리치료사를 배치, 상담 체제를 가동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본고등학교 교직원노동조합 구마모토지부의 이시마사오미 위원장은 "제일 심각한 것은 아이들과 교사들의 불안한 마음"이라며 "교육 당국에 학생과 교직원의 건강과 마음을 안정시킬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대피소 운영 등 피해자 보호 시설운영은 호평을 받고 있다.

지진이 발생하자 민관합동으로 긴급 구호활동이 시작됐다. 지진 초기 구조된 인원은 1700여 명에 이른다. 평소 전기 일을 하는 다나카 노부유키 (65·田中信幸·일본 구마모토현 거주)씨는 "지진 발생 직후 핸드 마이크를 들고 마을을 돌며 대피안내를 하고 치매 노인들을 직접 부축해 대피시켰다"고 말했다.

구마모토시청을 주축으로 172개소의 대피소가 긴급운영됐다. 지난 6월, 기자가 찾은 마시키마치에 있는 한 대피소도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매우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수백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생활관은 사생활을 고려해 남녀 공간을 분리했고 깔끔했다. 휴대폰 충전 공간, 휴게실, 샤워 공간도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중앙 현관에는 갖가지 구호 물품이 쌓여 있었다. 한국의 게스트하우스를 연상하게 했다.

각 언론 브리핑은 일주일에 두 차례씩만 허용됐고, 주민 인권을 위한 취재 매뉴얼까지 세부적으로 정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우왕좌왕하고 혼란스럽던 진도의 체육관이 자꾸만 교차됐다.

구마모토지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월 14일부터 8월 20일까지 4개 월여동안 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일어난 진도 1 이상의 지진횟수는 2004회다.
 구마모토지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월 14일부터 8월 20일까지 4개 월여동안 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일어난 진도 1 이상의 지진횟수는 2004회다.
ⓒ 구마모토신문 8월 21일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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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구마모토학원대학이 자체 운영한 '자원봉사센터'는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구마모토학원대학은 지진이 발생하자 교내에 '자원봉사센터'와 함께 고령자와 장애인 등 재해약자를 위한 피난소를 운영했다. 사회복지학부 학생과 자원봉사 학생들이 운영을 맡았다.

이 대학의 미야키다 다카시(64) 교수는 "구마모토에서 많은 피해주민이 장기적인 보호소 생활을 하고 있지만, 매우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우리 대학 자원봉사센터의 경우 포괄지원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전국 곳곳에서 담당자들이 구호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구마모토 지진은 8월 20일 현재 2000회를 넘어섰다. 지난 4월 14일부터 8월 20일까지 4개 월 여 동안 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일어난 진도 1 이상의 지진횟수는 2004회다. 3.5 이상의 지진도 267회에 달한다. 이는 지난 한 해 동안 일본 전역에서 관측된 진도 1 이상의 지진 1842회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또 1995년 한신 대지진 이후 내륙과 연안에서 발생한 지진으로는 최다횟수다. 지금도 간간히 진도 4 이상의 지진이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지진 횟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 큰 지진이 올 가능성도 작아지고 있지만, 구마모토 지진은 현재 진행형이다.


태그:#구마모토 지진, #강진, #연쇄 강진 , #2000회, #인명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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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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