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프랑스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며 '지적 자기방어 교실'을 꾸리기도 한다는 소피 마재 님이 쓴 <너희 정말, 아무 말이나 다 믿는구나!>(뿌리와이파리,2016)는 책이름처럼 어린이나 푸름이가 '아무 말이나 다 믿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왜 이렇게 되었나를 돌아보는 인문책입니다.

글쓴이는 자꾸자꾸 묻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말을 믿느냐고 묻습니다. 책에 적힌 말이라면 다 믿을 만하느냐고 묻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면 모두 믿을 만하느냐고도 묻습니다. 교사가 들려주는 말이라면 다 믿어야 하느냐고도 물어요.

내 마음을 가장 답답하게 한 것은 아이들에게 비판 정신이 결여되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 비판력을 제대로 발휘할 줄 모른다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15쪽)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매번 같은 '전문가'들이 초대되는 것은 그들의 실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무능하단 뜻이 아니라, 그들 못지않게 유능한 다른 이들도 많다는 의미다. 다만 초대되는 전문가들은 방송 책임자들의 기준에 맞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부르면 응답한다는 것이다. (32∼33쪽)

겉그림
 겉그림
ⓒ 뿌리와이파리

관련사진보기

아이들이 무엇을 믿고 안 믿어야 하는가를 가리기란 만만하지 않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학교라고 하는 곳은 '아이들이 믿을 만한 이야기'를 가르치는 자리로 서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믿지 못할 만하다거나 배울 만하지 않은 이야기를 가르친다면 학교가 학교일 수 없겠지요.

그런데 때로는 '정치권력 입맛에 맞추는 교과서'가 나오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교과서 때문에 말썽이 생기기도 하지만, 지난날에는 버젓이 대놓고 '정치권력 입맛에 맞추기'가 일어났어요. 이를테면 '국민교육헌장'이 있고, '반공 웅변대회'가 있어요. 새마을운동을 벌이던 때에는 '제비집 헐기'를 으레 하기도 했으니, 이런 여러 가지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려는 몸짓이 되었을까요.

우리의 시각은 '우리 머릿속 이미지들'의 집합에 따라 형성된다. 언론이 보여주는 불완전한 허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 인식 속 현실을 만들어낸다. (37쪽)

드라마 한 편이 유권자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드라마를 통해 메시지를 퍼뜨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거액이라도 기꺼이 지불할 의사가 있다면 또 다른 증거가 더 필요할까? (67쪽)

예전부터 학교에서는 교과서로 '원자력 발전소는 가장 깨끗한 전기를 얻도록 한다'고 가르쳤어요. 그러나 이렇게 가르치면서도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쓰레기(폐기물)는 너무 무시무시하고 너무 오래 가기 때문'에 '폐기물 처리'에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이 든다고 했으며, 자칫 방사능이 조금이라도 새어나오면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는다고 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가 터질 일이 없다고 그토록 가르쳤으나 막상 원자력 발전소가 터지고 말았어요.

무엇이 참일까요. 무엇이 거짓일까요. 무엇을 읽고 듣고 생각하면서 알아야 할까요. 무엇을 믿고 어떤 살림을 지어야 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어떤 이야기를 가르치고 어떤 삶터를 물려줄 수 있어야 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제대로 된 정보나 지식을 골고루' 알려주거나 보여주기는 할까요? 이제는 거짓말이 뻔히 드러난 '4대강 살리기 사업'인데, '살리기'가 아닌 '죽이기'를 했는데에도 수많은 언론과 책은 그동안 '살리기'를 했다고 외쳤어요.

집단행동과 과민 반응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대장균 감염으로 갑작스러운 사망자가 속출해서일까, 아님 언론의 부채질 때문일까? 둘 다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알아둘 점은 우리 먹거리의 생산지인 '자연'에서 멀어질수록 우리는 비이성적 공포로 치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불안해 할 이유가 없을 때조차도. (130쪽)

그린워싱 광고 문구에서 말하는 '행동'이란 것은 결국 구매 행위다. (139쪽)

<너희 정말, 아무 말이나 다 믿는구나!>에서 말하기도 하는데,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자연에서 멀어지'면서 '내가 먹는 밥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자꾸 잊습니다. 손수 씨앗을 심고 길러서 먹는 밥이 아니라, 돈으로 사다가 먹는 밥이 되는 흐름이기 때문에 '조류독감'을 비롯한 이야기가 떠돌 적에 '소비자인 도시사람으로서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어요.

전기에서도 이와 비슷하지요.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쓸 수밖에 없다는 사람이 늘어나지만, 정작 전기를 자가발전이나 마을발전으로 얻지 못합니다. 시골에 커다랗게 지은 발전소에서 끌어들이는 전기인 터라 '엄청난 전기요금'을 한여름에 떠안아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해요.

자,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믿을 수 있어야 할까요? '도시에서 살며 자연이나 시골이 깨끗하도록' 하자면, 이리하여 '도시에서 살며 먹는 모든 것이 깨끗하도록' 하자면 어떻게 하는 길을 걷거나 어떤 지식을 익혀야 할까요? '도시가 안전하도록' 원자력 발전소나 커다란 발전소나 위해시설을 '도시 바깥인 시골'에 짓기 마련인데, 시골이라는 터전은 바로 '도시 사람이 먹는 모든 것을 짓는 터전'이기도 해요.

원자력 발전소나 위해시설이 들어서기를 반대하는 '작은 시골 작은 사람들 목소리'를 섣불리 지역이기주의로 몰아세워도 될까 하는 대목을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그리고 발전소나 위해시설을 '도시 바깥에 두어 도시를 안전하게' 한다는 길이 참말로 '도시나 시골 모두한테 안전할' 만한지도 생각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언론에서 내놓는 자료나 정보에 기대지 않고, 우리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전형적인 것들은 우리 마음을 안심시킨다. 아무것도 비판하거나 고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152쪽)

함부로 특정 집단을 낙인 찍어 놓으면 나중엔 그들이 '정말로 우리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래서 학대와 낙인은 결국 한 끗 차이다. (197쪽)

예방주사를 놓고도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방주사가 있기에 돌림병이나 큰병을 미리 막을 수 있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예방주사를 만들 적에 수은이나 포르말린이나 알루미늄 같은 성분이 쓰인다는 대목을 따져 볼 수 있습니다. 화장품이나 세제에서도 우리 몸에 나쁜 성분이 있다는 이야기가 불거지는데, 이뿐 아니라 예방주사 성분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예방주사는 꼭 맞아야 한다'고 말하는 일이 얼마나 올바른가 하는 대목을 이야기해 볼 수 있어요.

한때 '공장 두부'는 응고제나 소포제나 유화제 같은 것을 모두 쓰면서 '성분을 안 밝혔'지만 요즈음은 '공장 두부'도 응고제나 소포제나 유화제를 썼는가 안 썼는가를 반드시 밝힙니다. 두부면 그냥 다 두부가 아니지요. GMO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정부나 기업이나 언론이 밝히는 자료만 고스란히 믿으면서 살아야 한다면 '예방주사에 든 수은 성분'은 달라지지 않을 테고, '라면 msg'나 '두부 응고제·소포제·유화제' 대목도 달라지지 않을 테지요.

누군가 '저 말은 뭔가 안 믿음직한데?' 하고 느끼면서 '새롭게 생각'을 하기에 비로소 달라지는 길이 열린다고 느껴요. 무턱대고 믿는 몸짓이 아닌 따지는 목소리가 될 때에 비로소 사회를 바꾸는구나 싶습니다.

프랑스 교사가 쓴 <너희 정말, 아무 말이나 다 믿는구나!>를 읽다 보면,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도 어린이나 푸름이가 참말로 '매체에서 말하는 대로' 믿거나 따르는 얼거리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학교에서 더 잘 가르치고 더 슬기롭게 가르칠 수 있어야겠다고 느낍니다. 학교가 입시지옥이 되지 말고, 학교가 아름다운 배움터가 될 수 있어야지 싶어요. 학교가 자격증을 따도록 돕는 곳이 되기보다는, 학교가 사랑스러운 꿈터요 이야기터가 될 수 있어야지 싶고요.

덧붙이는 글 | <너희 정말, 아무 말이나 다 믿는구나!>
(소피 마재 글 / 배유선 옮김 / 뿌리와이파리 펴냄 / 2016.8.22. / 15000원)



너희 정말, 아무 말이나 다 믿는구나 - 지적 자기방어를 위한 매뉴얼

소피 마제 지음, 배유선 옮김, 뿌리와이파리(2016)


태그:#너희 정말, 아무 말이나 다 믿는구나!, #소피 마재, #인문책, #청소년인문, #사회읽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