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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침식사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800km 순례길에 첫 걸음을 내딛는다. 감사하게도 알베르게(순례자숙소)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이층 침대가 모여있는 방에서 부엌으로 나가니 호스피탈레로(알베르게봉사자)가 우유 시리얼 과자 커피를 각자 가져다 먹을 수 있게 준비하셨다. 순례자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준비하신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첫 아침식사는 조용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다들 어색했고 다들 묵묵히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왜 이 길을 걷는지 왜 비수기 때 왔을까 궁금했지만 벌써부터 질문하기엔 어색하고 실례라고 생각해 조용히 식사에 집중했다.

준비를 마친 순례자들이 하나 둘 숙소를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설렘과 걱정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준비를 끝냈다. 혼자 걸음을 시작하기에는 심심하고 두려워 잠깐 이야기를 나눈 미국인 친구와 같이 걸으려고 했다.

미국에서 5년 동안 해군 복무를 하고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는 친구는 내가 숙소에서 처음 대화를 나눈 사람이다. 머리는 오랫동안 손질하지 않았는지 헝클어진 장발에 예수님처럼 수염이 굉장히 길었다. 같이 이야기하며 걸으면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배울점도 많아보였지만 혼자 걷고 싶어하는 것 같아 홀로 숙소를 나서려고 했다.

스페인 순레자 St.Jean 숙소를 나와 길을 나서고 처음 만난 순례자
▲ 스페인 순레자 St.Jean 숙소를 나와 길을 나서고 처음 만난 순례자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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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어떤 스페인 사람이 숙소로 되돌아와 호스피탈레로에게 순례길 방향을 물었다. 스페인 사람이 길을 묻다니. 순례길은 노란 화살표와 길마다 길 안내를 해주는 표식이 있어 걷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걸로 안다. 다른 순례자들은 다 잘 간 거 같은데 스페인 사람이 잘 모르다니. 이 구간은 표시를 찾기 힘든가 걱정도 들었지만 막상 나서보니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길을 걸으며 이 스페인 순례자와 친해졌다.

종원 처음 대화를 나눈 한국인 순례자
▲ 종원 처음 대화를 나눈 한국인 순례자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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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한국인 순례자를 만나다

드디어 숙소에서 나와 순례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걷기 시작했다. 대부분 순례자들이 숙소를 나간 상태에서 출발한다. 아직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아까 봤던 스페인 순례자에게 인사를 하고 걷다 한국인 순례자를 만났다. 어제 순례자 사무실에서 한국사람 몇명의 얼굴을 얼핏 보긴했지만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다.

나 또한 순례길을 걷는 한국인이었지만 주로 한국사람들은 여름에 방학이나 휴가를 이용해서 산티아고순례길을 찾는다고 들었다. 첫 날부터 금방 한국인 순례자를 만나리라 상상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신기하기도 하고 더 반갑기도 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 통성명을 했다.

그의 이름은 종원이었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남미를 여행하고 유럽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아직은 어색했다. 설렘과 함께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두 번째 한국인 순례자를 만나게 됐다.

두번째 만난 한국인 순례자 첫 해외여행을 산티아고순례길을 택한 20살 소녀
▲ 두번째 만난 한국인 순례자 첫 해외여행을 산티아고순례길을 택한 20살 소녀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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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한국인 순례자를 만나다

두번째로 만난 한국인 순례자는 어린 여자분이셨다. 그냥 지나쳐서 뒤에서 힘겹게 걷고 있는 여자분이셨다. 종원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다니는 대학명을 말하게 됐다. 종원이는 뒤에 걷는 분이 나랑 같은 학교라고 이야기했다.

타지에서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는 것도 반가운데, 순례길 첫날부터 같은 학교 사람을 만나다니. 신기했다. 하지만 더 신기했던 일이 있다.

순례자의 이름은 강해인, 20살이었다. 해인이와 종원이는 어제 생장(St.Jean)에서 만나 알게 되었고 저녁을 같이 먹어서 안면이 있다고 했다. 혼자 시작한 길은 종원이를 만나 두명이 되고, 해인이를 만나 세 명이 됐다.

조금 걷다가 비가 내려 우리는 잠시 비를 피하기로 했다. 우리는 해인이가 갖고 있는 오렌지와 라면스프가 섞인 생라면을 먹으며 쉬었다.

나 : 해인아 해외 여행 경험은 많아요?
해인 : 아니요 처음이에요.

나 : 그런데 첫 해외여행인데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으러 온 거에요?
해인 : 네 그냥 관광보다는 도전하고 의미있는 여행을 하고 싶어서요.

해인이는 학교를 일년 다니다 휴학을 신청했다. 산티아고순례길 800km를 걷기 위해 첫 여행으로 스페인에 왔다고 했다. 나는 지난해 28살에 첫 유럽여행을 했다. 해인이는 20살에 단순 관광이 아니라 순례길 800km를 걸으러 왔다니 대단히 용기있는 친구인 것을 알았다.

아무래도 그 당시 또래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여행을 하더라도 편한 관광을 더 선호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해인이를 보고 편견이라는 것을 꺠달았다.

호주에서 약 10개월간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여행을 하는 종원이, 20살에 첫 해외여행으로 순례길을 걷는 해인이를 보면서 자극을 받았다. 또 배우게 되어서 너무 신났고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지 기대됐다.

산티아고순례길 첫째날 생장(St.Jean) 에서 론세스바예스 가는길
▲ 산티아고순례길 첫째날 생장(St.Jean) 에서 론세스바예스 가는길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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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없는 피레네 산맥

좋은 사람들을 만나 신났지만 날씨가 걱정이었다. 쏟아지는 빗방울은 아니었지만 비가 왔다가 그쳤다 하는 바람에 체온은 떨어졌다. 곧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나폴레옹길은 폭설로 인해 폐쇄됐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고도가 낮고 더 편한 길을 택하게 되었다.

나폴레옹길은 경사가 가팔라서 체력이 좋고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쉽지 않은 길로 유명하다. 하지만 풍경이 아름답고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공격했을 때 넘어간 길이라 많은 사람들이 더 선호하는 길이다. 나 역시 순례길을 걷기로 했을 때 가장 기대했던 구간이기도 했다.

스페인 북부지역이 추운 지역임은 알았으나 3월에 아직도 눈이 많이 쌓여 있다. 나폴레옹길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안 좋은 날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편한 길도 그 날만큼은 우리를 괴롭혔다.

같이 걷던 종원이와 해인이보다 빨리 걷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시야에서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잠시 기다려도 봤지만 고도가 높아지면서 강풍과 함께 기온이 떨어져 너무 추워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앞이 온통 눈밭이었고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론세스바예스 가는길 우산은 절대 비추 스틱도 망가져서 버릴 수 밖에 없었다
▲ 론세스바예스 가는길 우산은 절대 비추 스틱도 망가져서 버릴 수 밖에 없었다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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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눈밭을 걷는데 설상가상으로 눈보라가 몰아쳤다. 갖고 있던 우산은 바람을 못 이기고 부러져 어쩔 수 없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집에서 가져온 스틱도 망가져서 버릴 수 밖에 없었다.

배터리가 없어 핸드폰이 꺼져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도 됐다. 피레네 산맥에서 간혹 조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고 실제로 The Way라는 영화에서 피레네 산맥에서 목숨을 잃는 캐릭터도 있었다. 직접 산에 올라와보니 왜 그런지 실감이 났다. 그나마 감사하게도 먼저간 이들 발자국 덕분에 어디로 가야할지 알았다.

누군가의배려 감사하게도 방해되는 나무토막을 잘라놨다
▲ 누군가의배려 감사하게도 방해되는 나무토막을 잘라놨다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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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걷다보니 신발 속 발이 다 젖었다. 온통 흰색이라 길도 헷갈리는데 먼저 간 순례자들 발자국 위치를 따라 똑같이 걸었다. 한 번은 옆을 잘못 밟았다가 허벅지까지 쌓인 눈에 푹 빠져버렸다. 그렇게 젖은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니 산에서 빠져나와 도로로 나오게 됐다.

천천히 걷다보니 뒤에서 종원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너무 반가웠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800km 순례길을 얕잡아 본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일부 구간을 걸었기에 별 일 없다면 완주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첫 날부터 세게 주먹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초콜라떼 꼰 츄러스 걸쭉한 초콜라떼에 츄러스를 찍어먹는다
▲ 초콜라떼 꼰 츄러스 걸쭉한 초콜라떼에 츄러스를 찍어먹는다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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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라떼 꼰 츄러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눈덮힌 산을 넘어 론세스바야스(Roncesvallas)에 도착했다. 눈은 그쳤지만 여전히 너무 추웠다. 우리는 바에 들어가 몸을 녹이기 위해 초콜라떼를 주문했다.

너무 춥고 힘들어서 기진맥진해져서 배가 너무 고팠다. 원래 단 음식을 좋아하는데 힘든 길을 이겨내서인지 츄러스와 초콜라떼가 훨씬 맛있었다. 스페인 초콜라떼는 일반 음료보다는 걸쭉하고 진하다.

초콜라떼나 츄러스 둘 다 지역이나 가게마다 조금씩 맛이나 걸쭉함 차이는 있지만 스페인에서는 보기 흔한 음식이다. 간식용으로도 좋고 지금처럼 추울 때 엄청 큰 에너지가 된다.

헤어드라이기 종원이의 헤어드라이기가 다른용도로 큰 도움이 됐다
▲ 헤어드라이기 종원이의 헤어드라이기가 다른용도로 큰 도움이 됐다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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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휴식을 취하다가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멀지 않은 알베르게로 움직였다. 해인이는 잘 왔는지 걱정도 되고 다른 순례자들은 별 탈 없는지 궁금했다.

알베르게에 가니 어제 봤던 반가운 얼굴들도 보인다. 다행히 해인이도 도착했다. 해인이에게 물어보니 산을 넘어 도로로 나왔을 때 지나가던 현지인이 힘들게 걷던 해인이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차에 태워줬다고 한다. 걱정했는데 별 탈 없는 모습에 반가웠고 스페인 사람의 친절함에 감사했다.

다들 젖은 옷들을 말리고 정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 또한 젖은 옷들을 침대에 걸쳐놓고서 신발에 있는 깔창을 빼고 신문지를 구겨 넣었다. 처음 알았는데 젖은 신발에 신문지를 넣으면 신문지가 습기를 다 흡수한다고 한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이제야 진짜 순례길을 걷는구나 실감이 났다. 정말 비싼 옷들과 장비를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구색은 맞춰 입었는데 옛날 순례자들은 어떻게 험난한 길을 걸었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쉬고 있다가 레스토랑으로 이동해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저녁 미사 각국의 순례자들이 미사에 참여하는 모습
▲ 저녁 미사 각국의 순례자들이 미사에 참여하는 모습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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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끝나고 개인 시간을 가지는 순례자들이 있는 반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종원이 해인이 그리고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신부님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 미사가 끝난 후에는 성당 투어가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성당투어 성당 내부를 설명해주시는 신부님
▲ 성당투어 성당 내부를 설명해주시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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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피곤했지만 미사가 궁금했고 성당도 둘러보고 싶어 참여했다. 투어에 참여한 순례자들 중에는 나와 같이 천주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국적과 문화 언어는 다르지만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순례길을 걷는 이유들은 각자 다르겠지만 이 길에서 만나게 된 것이 참 신기했다.

빅워크 어플리케이션 어플 실행 후 10m 당 사이버머니 1noon이 적립되고 기부할 수 있다
▲ 빅워크 어플리케이션 어플 실행 후 10m 당 사이버머니 1noon이 적립되고 기부할 수 있다
ⓒ 빅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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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투어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핸드폰을 켰다. 내 여행기를 보고 빅워크 어플리케이션에서 참여하는 사람이 있어서 신기했다. 다시 한 번 걸을 수 있고 헌혈할 수 있을만큼 건강함에 감사했다.

여행기에 동감하고 많은 분들이 참여할까? 헌혈증은 많이 모금할 수 있을까? 걱정도 들면서 내일은 또 어떤 길이 펼쳐지고 누굴 만날지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덧붙이는 글 | 프랑스길 St.Jean 에서 스페인으로 가기 위해서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겨울철에는 날씨로 인해 나폴레옹길이 폐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고바랍니다

실제로 피레네 산맥에서 조난당하는 경우가 있어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태그:#산티아고순례길, #스페인, #피레네산맥, #나폴레옹, #눈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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