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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에는 정원 스님을 기억하는 이들의 다짐이 녹아져 있었다.
▲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서울대병원에는 정원 스님을 기억하는 이들의 다짐이 녹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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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불타오른 촛불시민은 헌법재판소의 판결만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만 애만 태울 뿐이다. 박근혜는 물러나지 않는다. 촛불의 요구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극단적인 사태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촛불의 현장에서 한 스님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면서까지 촛불의 승리를 열망했다. 분신이라는 끔찍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스님은 간절했을 것이다.

그리고 1월 13일은 장례식장에서 스님을 뵐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스님께 인사드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만큼 나는 한걸음에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마치 백남기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러 갔던 그때처럼 말이다.

스님이 걸친 노란 천이 유난히 눈에 띈다.
▲ 정원 스님의 분향소 스님이 걸친 노란 천이 유난히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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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했다. 고인을 기리는 자리만큼 경건하고 엄숙한 자리가 있을까. 시민들이 간간히 장례식장을 들리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장례식장을 찾은 대다수의 시민들은 생전 한 번도 스님을 뵌 적이 없는 이들이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스님께 인사를 드리러 장례식장을 찾은 이유. 바로 스님의 희생이 우리를 위한 것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정원 스님을 '제2의 전태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모두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었던 전태일 열사의 재현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전태일 열사의 재현에 누리꾼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분신이라는 사건이 주는 임팩트가 이렇게 약했나 싶을 정도로 관심이 적기만 했다. 나는 놀랐다. 지인 중에는 정원스님의 소식을 듣지 못한 이도 많았다. 노란 천을 두른 정원 스님이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인터넷 상에서는 스님께서 통합진보당(아래 통진당) 당원출신이란 이유로 그의 죽음을 깎아내리는 글도 많다. 심지어는 '시체팔이' 라고까지 한다. 나는 통진당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하지만 난 그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저 순수하게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죽음에는 촛불의 승리를 염원하는 응원이 담겨있었으니 말이다.

그가 생전에 어떤 일을 했던 간에 한 생명의 죽음만큼은 순수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왜 세상을 떠났는가, 세상을 떠나면서까지 하고싶었던 말이 무엇인가. 생각보다 그의 죽음이 큰 이슈가 되지 못하는 이유에는 언론의 책임과 그의 죽음을 폄하하는 이들의 공작정도가 있을 것이다. 마치 5.18 민주항쟁이 군사정권에 의해 빨갱이 사건이라고 덮혀진 것처럼.

하지만 역사의 가르침을 통해 얻은 것이 있는 우리는 제대로 봐야 한다. 그의 죽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봐야 한다. 자신의 죽음이 촛불의 승리와 민주수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랬던 그의 외침을 들어야 한다.

그의 바람은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국민의 승리를 위해 목숨까지 희생한 그의 메세지를 따라 우리는 그저 계속 촛불을 키면 된다. 그가 남긴 숙제를 우리는 풀어야 한다. 마치, 영원히 바다에 잠든 한 영웅의 말과 닮아있는 그 숙제를 말이다.

"뒷일을 부탁합니다."

세월을 기억하는 그의 글. 그의 희생은 세월을 위해 봉사한 우리의 영웅과도 닮아있다.
▲ 정원 스님의 글 세월을 기억하는 그의 글. 그의 희생은 세월을 위해 봉사한 우리의 영웅과도 닮아있다.
ⓒ 조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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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원 스님, #촛불혁명, #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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