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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이산(增位山) 즈이간지(隨願寺, 수원사)는 하리마 천태6산(播磨 天台六山)의 한 절로 사전(寺傳)에 따르면 고구려 혜변(惠便, 에벤)스님이 개기(開基, 불교용어로 개산'開山'과 같은 뜻으로 쓰이며 창건을 뜻함)한 절로 알려져 있다. 덴표연간(天平年間, 729-749)에 교키(行基)스님이 중흥했으며 원래는 법상종이었으나 덴쵸10년(天長, 833년) 닌묘천황(仁明天皇)의 칙명으로 천태종으로 개종하였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92)에는 가람이 정비되어 36개의 암자가 있을 정도로 큰 절이었다.(뒷줄임)"   

이는 즈이간지(隨願寺) 경내에 절의 유래를 적어 놓은 안내판에 있는 내용 가운데 일부다. 고구려 혜변스님의 발자취를 찾아 효고현에 있는 즈이간지(隨願寺)에 도착한 것은 지난 2월 15일 오후 4시 무렵이었다. 오사카역에서 오전부터 서둘러 신칸센을 타고 히메지역에 도착한 뒤 숙소에 짐을 풀고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즈이간지(隨願寺) 입구에 내리니 산중이라 그런지 짧은 겨울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즈이간지(수원사) 팻말이 있는 쪽은 숲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이다.
▲ 오솔길 택시에서 내려 즈이간지(수원사) 팻말이 있는 쪽은 숲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이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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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이간지(隨願寺)는 히메지역에서 꽤 멉니다. 버스도 드문데다가 버스를 타도 산길로 30분은 걸어가셔야합니다." 라고 하면서 히메지역 관광안내소의 여직원은 기자에게 택시를 권했다. 초행길인데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와야 하기에 역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에 올라타 기사에게 즈이간지(隨願寺)를 부탁하자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자에게 그곳에 가는 이유를 물었다.   

"그 절은 고구려의 혜변이라는 스님이 개기(開基)한 절입니다. 저는 한국의 고구려 출신 스님들이 창건한 절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일부러 즈이간지(隨願寺)를 보기 위해 일본에 왔습니다."라고 하자 기사는 매우 흥미로운 듯 연신 기자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한 20여분 달리자 기사는 절 입구라면서 차를 세웠다.택시가 돌아가고 두리번거리며 절 입구 팻말을 찾아보니 즈이간지(隨願寺)라고 적힌 작은 팻말이 눈에 띄었다. 사방은 빽빽이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절 초입에 자리한 개산당 뜰은 이끼가 껴있었고 매우 고즈넉했다
▲ 개산당 절 초입에 자리한 개산당 뜰은 이끼가 껴있었고 매우 고즈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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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로 난 좁은 나무 계단을 올라가니 키 큰 나무들로 사방은 어둑해 보였는데 음산한 겨울바람 한 자락이 휙하고 지나가자 갑자기 무서운 생각으로 소름이 돋았다. 택시에서 내릴 때만 해도 고구려 혜변스님의 발자취를 용케도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는데 어둑해지는 숲 속에 혼자라는 생각이 들자 와락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택시는 이미 떠나버린 뒤였다. 누군가 뒷덜미라도 잡아당기는 듯하여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오솔길을 뛰기 시작했다. 내리막길이라고 생각되는 곳쯤에 도착하자 멀리 절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휴! 

절 마당에 들어서자 본당(대웅전)이 아니라 즈이간지(隨願寺)의 초입에 있는 개산당(開山堂)이었다. 개산당이라면 절을 창건한 고구려 혜변스님을 위한 당우(堂宇)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조아렸다. 아! 혜변스님!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고즈넉한 개산당 앞에서 기자는 그렇게 혜변스님을 불러보았다. 한참을 이끼낀 마당에 서있었다. 좀 전의 무서움도 잊은 채 말이다.   


국가중요지정문화재인 즈이간지(수원사) 본당
▲ 본당 국가중요지정문화재인 즈이간지(수원사)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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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이간지(수원사)라고 쓴 편액이 걸린 본당의 건물은 지금으로부터 325년 전에 세운 것이다
▲ 본당 2 즈이간지(수원사)라고 쓴 편액이 걸린 본당의 건물은 지금으로부터 325년 전에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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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전경과 사진 앞 오른쪽은 경당(經堂)건물로 국가지정문화재다
▲ 본당과 경당 본당 전경과 사진 앞 오른쪽은 경당(經堂)건물로 국가지정문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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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천정에는 에도시대에 그린 선녀상이 색채를 그대로 간직한채 있었다
▲ 선녀상 본당 천정에는 에도시대에 그린 선녀상이 색채를 그대로 간직한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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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안의 관음상이 모셔져 있는 화려한 문, 이곳은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 관음상 본당 안의 관음상이 모셔져 있는 화려한 문, 이곳은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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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혜변스님이 나오는 일본의 문헌은 《일본서기(日本書紀)》권 20의 민다츠천황( 敏達天皇) 13년(584) 기록이다.  "민다츠(敏達13, 584) 9월, 백제로부터 불상 2구가 도착했다. 우마코(馬子)의 명령으로 시바닷토(司馬達等)와 함께 사방에 사자(使者)를 보내 수행자를 찾았는데 하리마국(播磨國, 지금의 효고현)에 있던 고구려승 혜변을 초빙해 시바닷토(司馬達等)의 딸을 출가 시켜 깊이 불법(佛法)을 믿게 했다." 

본당은 바로 개산당 모퉁이를 도는 곳에 자리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고구려 혜변스님이 창건한 절이라는 유래가 적힌 제법 커다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꼼꼼하게 절의 유래를 읽어 내려간 뒤 종무소를 찾았다. 종무소는 안내판 건너편에 있었다. 조심스럽게 종무소 건물에 들어서니 마침 주지스님이 작업복 차림으로 며칠 전에 큰 행사를 치렀다면서 뒷 일을 하고 있었다.   

통성명을 하고 나니 아주 반가운 모습으로 절의 자료들을 이것저것 챙겨준다. 건네받은 자료 가운데 즈이간지(隨願寺)의 유래가 비교적 자세히 적혀있는 75쪽 짜리 하리마관음33개사순례(播磨觀音33個寺巡禮)를 소개한 《하리마서국관음영장(播磨西國觀音靈場)》이란 책이 볼만했다. 즈이간지(隨願寺)는 4번째 순례절로 소개되어 있으며 13쪽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주지스님은 고구려 혜변스님이 창건한 절이라고 쓰여있는 곳을 가리키며 미소지었다
▲ 주지스님 주지스님은 고구려 혜변스님이 창건한 절이라고 쓰여있는 곳을 가리키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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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고구려를 뜻함) 혜변스님의 개기(開基, 곧 창건)절이라고 쓰여있다
▲ 안내판 고려(고구려를 뜻함) 혜변스님의 개기(開基, 곧 창건)절이라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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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토쿠태자(聖德太子)가 고구려승 혜변법사를 이곳에 주석시킨 데서 이 절이 유래한다. (가운데 줄임) 본당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장수인 벳쇼 나가하루(別所長治)에 의해 불탔는데 1692년 히메지 성주 사카키바라 타다츠구(榊原忠次)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그래서 인지 경내에는 히메지 성주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토 텟슈(加藤哲崇) 주지스님은 하던 일을 멈추고 기자를 본당으로 안내했다.  "천년고찰 즈이간지는 헤이안시대 번창 이후 무사정권기인 덴쇼원년(天正元年, 1573)에 대규모 법난(法難)을 겪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이어 또 한 차례 명치정부(1868)에 의한 폐불훼석(廢佛毁釋)으로 수난을 겼었습니다. 절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가 몰수되는 등 거의 고사 직전이었지만 선대(先代) 때부터 노력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라며 주지스님은 그간 즈이간지가 걸어온 고난의 길을 들려주었다.

그런 와중에도 즈이간지 경내에는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인 본당(대웅전)과 개산당, 종루 등이 건재하고 있으며 효고현(兵庫県) 지정문화재인 목조약사여래좌상(木造薬師如来坐像)과 히메지시 지정문화재(姫路市 指定文化財)인 교키보살좌상(行基菩薩坐像)등이 남아있어 유서깊은 절임을 알려주고 있다. 주지스님은 절의 수난사를 설명하고는 본당 앞에 나와 한국에서 일부러 찾아온 기자를 위해 포즈를 취해주었다.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인 종루는 상태가 양호했다
▲ 종루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인 종루는 상태가 양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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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나자 마침 작은 승용차 한 대가 경내로 들어왔다. 주지스님의 부인(일본은 스님들이 결혼함)이 시내에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러자 스님은 부인에게 기자를 히메지역까지 모셔다드리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렇잖아도 택시도 없고 날은 어두워져가서 하산길이 걱정이었는데 그런 기자의 사정을 알고 편의를 봐주는 주지스님 내외가 고맙기 그지없었다.   

화장기 없는 당찬 또순이 같은 사모님은 예순 정도의 나이였는데 구불구불한 산길을 능란한 운전 솜씨를 발휘하며 기자를 산 아래 히메지역까지 배웅해주었다. 며칠째 감기 기운으로 차 안에서 기침을 하자 목캔디를 건네며 '건강한 모습으로 답사를 마치고 귀국하시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며칠 전 행사에서 신도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만든 모나카과자를 선물로 건넸다. 사모님과 헤어져 역 근처 숙소에 돌아와 따스한 녹차 한잔과 달콤한 모나카를 먹으며 1,300여년 전 고구려 혜변스님이 고국 고구려에서 멀고먼 효고현 마스이산(增位山)에 즈이간지(隨願寺, 수원사)를 창건한 것을  생각하니 역사 속에 사라진 고구려가 가슴 속에서 부활하는 듯했다. 감격스러웠다.

* 찾아 가는 길
주소: 兵庫県 姫路市 白国 三丁目 12番 5号
전화: 079-223-7187
JR히메지역(姫路駅) 기타구치(北口)에서 신키버스(神姫バス)를 타고 시라쿠니(白国)정류장에서 내려 마스이산(增位山) 정상을 향해 30분쯤 걷는다. 기자는 날이 저물기 시작하여 히메지역에서 택시로 갔다.  2천 엔 정도.

*기사에 나오는 일본어 번역은 기자가 한 것이며 한자 지원이 안돼 구자체로 표기했음을 밝혀둔다.

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즈이간지, #수원사, #효고현, #혜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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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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