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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르 차크마크 광장

아미르 차크마크 광장
 아미르 차크마크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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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르 차크마크 광장은 이슬람력으로 새해 첫 달 무하람(Muharram)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무하람은 카르발라 전투에서 비통하게 죽은 후세인 이븐 알리를 추모하며 근신하는 종교적인 축제다. 이 행사의 절정은 열흘째 이루어지는 아슈라(Ashura)다. 이날 시아파 무슬림들은 후세인을 지켜내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한탄하며 몸에 채찍질을 한다. 무하람 행사가 열리는 광장을 후세이니아(Hussainia)라고 하는데, 이곳 야즈드 후세이니아가 테헤란과 더불어 가장 크고 유명하다.

아미르 차크마크 광장이라는 이름은 티무르제국 시대 야즈드를 통치한 총독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1418-1438년 야즈드에 마스지드를 건설하고, 그 주변에 광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광장 옆에 바자르와 카라반사라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마스지드와 광장에 아미르 차크마크란 이름이 붙었다.

아슈라에 사용되는 원통형 관 나흘
 아슈라에 사용되는 원통형 관 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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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광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건물은 두 개의 미나렛과 3층으로 이루어진 테키예(Tekyeh)다. 건물 옆에는 아슈라에 사용되는 원통형 관 나흘(Nakhl)이 세워져 있다. 나흘은 카르발라 전투에서 죽은 3대 이맘 후세인의 관을 상징한다. 야자나무로 만들었으며, 나흘 아래 막대를 받쳐 어깨에 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람들은 아슈라에 나흘을 지고 후세인과 그의 추종자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행진한다.

광장과 마스지드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팔레비 왕조에 이르러서다. 1935년 레자 샤는 광장을 둘러싼 살만도로(Salman-e Parsi)을 내고 광장을 직사각형으로 만들었다. 그 때문에 마스지드와 광장은 현재 도로로 구분되었다. 광장으로 들어가다 보면 꽃밭과 연못 그리고 분수대가 조성되어 있다. 테키예 1층에는 현재 쇼핑센터가 들어와 있다.   

이란 전통 보디빌딩을 하는 체육관을 찾아서

보디빌딩 체육관
 보디빌딩 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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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르 차크마크 광장 북서쪽 골목에 가면 이란 전통 보디빌딩을 가르치는 체육관이 있다. 이 체육관의 이름은 사헵 자만 클럽(Saheb A Zaman Club Zurkhaneh)이다. 추르하네가 힘을 키우는 집(House of Strength) 즉 체육관이 된다.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란의 전통 스포츠를 알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체육관 지하에 있는 물저장고 압 안바르(Ab anbar)를 보기 위함이다. 이란의 사막도시에는 생존을 위해 이처럼 물을 저장하는 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체육관으로 들어가자 보디빌딩용 곤봉이 실내에 가득하다. 곤봉은 우리가 사용하는 것보다 봉이 훨씬 크고 무게가 나간다. 그러므로 곤봉이 우리처럼 매스게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근육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목재와 철재로 만든 운동기구가 있다. 처음 보는 것들이라 이름과 사용방법을 알 수가 없다. 체육관에 관리인이 없어 운동방법에 대해 물어볼 수도 없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흉내를 내 본다.

물 저장고
 물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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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저장고는 체육관에서 다시 지하층으로 내려가야 찾을 수 있다. 이곳의 물 저장고는 마스지드와 광장에서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하기 위해 1580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하 물탱크는 거대한 항아리 모양이다. 그 높이가 29m나 된다고 한다. 우리는 사방에 주둥이처럼 뚫린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본다. 물은 없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 저장고는 야즈드, 나인, 카샨, 케르만, 밤 같은 사막지대에 필수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나중에 방문한 나인과 카샨에서도 압 안바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체육관으로 들어올 때 지붕 위에 있는 바람의 탑(Badgirs)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실내와 물의 온도를 낮춰 시원하게 하기 위한 장치다. 사막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설이다.

바람의 탑
 바람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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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바람의 탑의 구조와 원리는 어떻게 될까? 기본적으로 바람의 탑은 1개, 4개, 8개로 이루어져 있다. 에어컨 모양으로 4각형의 바람기둥을 만들고, 상층부에 바람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도록 환풍구를 만들었다. 환풍구를 통해 들어온 바람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한 바퀴 돌고 다시 나가는 과정에서 실내가 시원해지도록 했다.

또 하나는 실내 또는 지하로 물이 흐르게 한 다음 바람이 지하수에 의해 차가워져 돌게 만드는 것이다. 물은 공기에 비해 온도가 낮아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귀족의 주택에 적용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지하수를 이용한 바람의 탑은 오후에 방문한 돌라트 아바드 정원의 저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돌라트 아바드 정원이 있는 저택

돌라트 아바드 정원
 돌라트 아바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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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라트 아바드 정원 저택은 잔드왕조 시기인 1750년 카림 한에 의해 지어졌다. 그래서 외관은 쉬라즈의 카림 한 왕궁과 비슷하게 높은 담과 망대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 정문을 통해 정원 저택 안으로 들어가면 수로와 정원이 나타난다. 정원에는 꽃과 초본류보다는 나무가 심어져 있다. 석류나무와 포도나무가 눈에 띈다.

정원의 한 가운데 넓은 수로와 연못을 만들고, 그 안에 분수가 솟아오르도록 했다. 물가로는 안쪽에 활엽수를, 바깥쪽에 소나무 같은 침엽수를 심었다. 그리고 수로의 끝 양쪽으로 건물을 지었다. 우리는 바람의 탑이 우뚝한 본관 건물로 간다. 2층 건물로, 가운데 바람의 탑이 하나 서 있다. 이곳에 있는 바람의 탑은 높이가 33m를 넘어, 이란에서 가장 높다. 1960년대 붕괴되었다가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돌라트 아바드 정원 저택
 돌라트 아바드 정원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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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라트 아바드 정원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10개의 페르시아 정원 중 하나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보면 실내에 수로가 연결되어 있고, 분수장치까지 있다. 창문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 있고, 천장 장식도 기하학적으로 아름답다. 창문은 나무로 되었는데, 색깔과 무늬가 정말 고상하고 화려하다. 바람의 탑을 통해 시원한 바람이 순환함을 느낄 수 있다. 탑 위쪽으로 자연광이 비쳐드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는 본관 건물뿐 아니라 부속 건물도 여러 채 보인다. 이들 중 바람의 탑이 네 개 달린 건물도 보인다. 돌라트 아바드 건물들은 모두 최근에 수리 보수를 한 것 같다. 외관이 너무 깨끗하기 때문이다. 또 정원을 감싸고 있는 성벽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란에서는 페르시아 정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이들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그 결과 이들 정원이 201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될 수 있었다.

마르코 폴로와 오도릭의 기록 속 야즈드

황량한 평원
 황량한 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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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는 1271년 베네치아를 떠나 1275년 원나라 수도 상도(上都)에 도착한다. 그리고 16년간 중국에 체류한 다음 1291년 베이징을 떠나 1295년 베네치아로 귀환한다. 그는 24년간의 기나긴 여정을 기록으로 남겼으니, 그것이 유명한『동방견문록』(1298)이다. 이 책을 보면 그는 중국으로 갈 때와 올 때 이란 지역을 지나간다.

마르코 폴로는 1272년 고상한 도시 야즈드를 떠나 7일간 거대한 평원을 여행한 후 케르만에 도착한다. 여기서 평원은 오히려 고원으로 번역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야즈드에서 케르만에 이르는 길은 해발 1200m에서 2000m에 이르는 고원지대이기 때문이다.

고귀하고 신성한 도시 야즈드
 고귀하고 신성한 도시 야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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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즈드는 훌륭하고 고상한 도시로 교역이 활발하다. 그곳에서는 야즈디(Yazdi)로 알려진 실크 천이 다량으로 생산된다. 상인들은 그것을 여러 지역으로 가져다 판다. 당신이 이곳을 떠나 더 멀리 여행하려고 하면, 7일 동안 말을 타고 거대한 평원을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항구로 나가는 길은 세 곳으로 나 있다.

가는 길에 대추야자를 생산하는 훌륭한 과수나무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 나무에 쉽게 올라간다. 평원에서는 동물 사냥과 매사냥 같은 스포츠가 행해지고 있다. 뇌조와 메추라기 같은 새들을 잡는 다른 종류의 사냥도 있다. 그 길을 지나가는 상인들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그곳에는 또한 야생 당나귀와 멋진 동물들이 있다. 말을 타고 7일 동안 그 평원을 행군하면, 케르만이라 불리는 훌륭한 왕국에 도달할 수 있다." 

야즈드의 포도나무
 야즈드의 포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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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회 소속 사제이던 오도릭(Odoric: 1265-1331)은 동방에 기독교를 전하기 위해 1318년 4월 베네치아를 떠난다. 그는 이란,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을 거쳐 10년만인 1328년 베이징에 도착한다. 그리고 몽골, 티벳, 이란을 거쳐 1330년 베네치아로 귀환한다. 오도릭은 12년 동안 여행하며 보고 들은 바를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것이 『동방기행』(1330)이다.

이 책에서 오도릭은 야즈드를 언급하고 있다. 오도릭의 기록 속에 야즈드는 이에스트(Iest)로 나온다. 그의 여행은 카샨, 야즈드, 페르세폴리스를 지나 인도로 이어진다. 오도릭은 카샨을 세 명 동방박사의 출신도시로 보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카샨까지는 50일이 걸리는데, 동방박사들은 신통력이 있어 그곳까지 단숨에 갔을 것이라 적고 있다.

오도릭은 야즈드를 페르시아에서 세 번째 큰 도시로 소개한다. 그러면서 먹거리가 풍부하다고 말한다. 그 예로 무화과와 건포도가 흔함을 든다. 이곳 야즈드에서 하루를 가면 사막에 이르는데, 모래바람 때문에 누구도 그곳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때문인지 오도릭은 사막으로 가지 않고 코메룸(현재: 페르세폴리스)으로 향한다.


태그:#아미르 차크마크 광장, #바람의 탑, #돌라트 아바드 정원, #마르코 폴로, #오도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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