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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농부 전희식이 열 번째 책을 냈다. 지난 7월에 출간된 <옛 농사 이야기>(들녘, 2017)다. 공저 아홉 권을 빼고 단독 저서 열 권만 훑어도 저자가 넓힌 보폭이 글쓰기 이력으로 드러난다. 코앞에 닥친 어머니 모시기에서 출발해 점진적으로 농업 문제를 심도 있게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식으로 공동체적 삶으로의 확충을 보여준다.

열 번째 저서 <옛 농사 이야기>
 열 번째 저서 <옛 농사 이야기>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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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저서 9권은 4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치매 어머니 모시기'(<똥꽃>, <엄마하고 나하고>), '농사생활의 생태적 각성 및 농업 문제에 대한 통찰'(<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 먹다>, <시골집 고쳐 살기>, <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 <땅 살림 시골살이>), '농업문제에 대한 문명적 접근과 대안 모색'(<아름다운 후퇴>, <소농은 혁명이다>), '어린이책'(<하늘이의 시골일기>) 등이다. 이번 책은 두 번째 범주에 들어간다.

전체 4부로 구성된 <옛 농사 이야기>는 편집과 글짜임이 독자친화적이다. "겨울부터 이듬해 가을까지 1년 열두 달 옛 농사 생활 이야기를 담았"음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차례', 한 쪽 공간에 떡하니 들어앉아 감칠맛을 풍기는 '글제', 부제 중심의 글에서 멀찍이 떨어진 상단에 얇게 놓여 저간의 사정을 경쾌하게 밝히는 '이야깃거리' 등이 책읽기를 부추긴다. 책 내용을 후딱 훑으려면 '이야깃거리'들만 챙겨 보는 것도 괜찮다.

물론 전희식 글의 특징이라 할 생생한 사례와 향수 어린 일화가 구수하게 재미를 붙인다. 그걸 넝쿨 삼아 과학기술과 농정 같은 농촌 외적 변화가 농촌 생활을 상전벽해로 만들었음을 1년간의 농법 중심으로 펼쳐 보인다. 크게 보면, 지속가능한 인간화를 위한 문제 제기다. 문득 농부 전희식의 삶은 어찌 운영되고 있을까 궁금해져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다. 살충제 계란 사건이 터진 이튿날이었다.

전혀 다른 세계로 가는 휴식

지난 7월 서울시 주관 소비자 교육 강의 <밥상 주권의 회복과 육식의 문제>
 지난 7월 서울시 주관 소비자 교육 강의 <밥상 주권의 회복과 육식의 문제>
ⓒ 김유경(전희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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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열 번째 출간을 축하한다. 글 쓰는 농부로서 농사일과 글쓰기의 시너지 효과라면 무엇인가.
"평소 농사일 때문에라도 노트를 들고 밭에 간다. 농사일은 내 맘대로 일하고 쉬므로, 일하다가 깊은 감흥이 일거나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면 쓴다. 그러니까 농사하면서 글 쓰는 건 계획적이지 않으면서 아주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내게 휴식을 준다. 그때그때 휴식의 질과 내용이 다르지만, 전혀 다른 세계로 가는 휴식이다.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는 사건이 있으면 글을 최소한 며칠 이내로 쓴다. 한 번 더 내 하루를, 내 삶을 단순 복기가 아니라 깊이 반추하게 하는, 저변의 원리나 작동체계까지를 되새김질하게 하는 효과다. 세 번째는 느낌이나 감정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표현을 정제해내는 효과다. 표현에 의해 자칫 본질이 훼손되기 쉬운 감정과 느낌의 영역을 어쨌거나 문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표현이 보다 연마되는 효과다."

- 저자 소개에 보면 '생태영성운동가'이기도 하다. 농부 전희식에게 생태영성운동은 어떤 의미인가.
"세상 만물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서로 존재에게 가해 행위를 하지 않으면서 살리는 것이 생태적 삶이라면, 존재에 여러 층위가 있다고 할 때, 지고지순한 존재적 위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관심과 노력을 영성 운동이라 한다. 따라서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어도, 글쓰는 농부와 생태영성적 삶은 긴밀하다고 볼 수 있다. 농부의 일상이라는 것이, 현대 농업과 같이 왜곡되기 전에는, 영적 자연생태적 삶과 가장 밀접한 삶이기 때문이다. 농부의 삶이 생태영성적 삶과 분리되는 것은 자연농부로서의 본령을 벗어난다고 본다."

- 첫 책인 <똥꽃>에서 열 번째인 <옛 농사 이야기>에 이르도록 삶과 글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원래는 책 내려고 글을 쓴 건 아니다. 옛날에는 하이텔, 천리안 같은 곳에서 농사, 자연, 환경, 생태, 동식물, 민중문화, 전통문화 등 관심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썼는데, 출판사에서 찾아와서 첫 번째 책이 나왔다. 그 후에도 그때그때 인터넷에, 매체에 글을 썼다. 책을 내려고 몇 달 집필하고 산에 들어가서 글 쓰고 그런 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열 번째 책까지 나왔다.

그런데 첫 번째 책이 나오니까 처음으로 원고 청탁을 받는 일이 생겼다. 그때부터 원고료를 받으며 일을 하게 됐고, 그러다 중앙지 유명 매체에 글이 나가다 보니까 인터뷰, 방송, 시민단체나 공공기관의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이렇게 글쓰기, 출판, 원고 청탁, 강의 등으로 연결되는 망들이 형성되었다.

청탁을 받으면, 그냥 십분 만에 생동감있고 자연스럽게 쓰던 블로그 글과 달리, 원고 매수를 의식하며 며칠을 머리를 싸맨다. 그 과정에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느낌이나 오감 중심이 아닌,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드는 지적인 자양분을 요구한다. 그런 글쓰기 과정을 통해서 지적 교양적 학문적으로 많이 공부하게 되는, 그래서 글 쓰는 과정이 공부하는 과정이고, 세상 사물을 익히는 과정이다. 다른 하나는, 세상과 사람을 대하면서 훨씬 더 깊어질 수 있다. 글 쓰는 게 쌍방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 같다.

책들은 초기에 비해 뒤로 갈수록 주제의식이 뚜렷해지는 경향이 있다. 단일 주제로 쓴 책들이 나오게도 되고. 2003년에 나왔던 <아궁이불에 감자를 구워먹다>는 일상생활 전반을 묶은 책인데, 뒤에 것들은 주제의식이 뚜렷해지는 글들로 모아지는 그런 변화다.

<똥꽃>이나 <엄마하고 나하고>가 나오고 나서는 우리 집을 찾아오는 경우도 많고, 그 분야인 노인, 요양, 간병, 그리고 의료나 보건 쪽 부분으로 관계 형성이 많아졌다. <아름다운 후퇴>가 나오고서는 에너지, 식문화 부분을, <시골집 고쳐살기> 나오고서는 집짓기와 관련된 대면, 지면, 강연, 방송 등의 관계들로 확장되는 일들이 생겼다. 서울 소재 롯데백화점 아카데미 센터에 거의 다 출강했다."

- 그렇게 집으로 맞이하거나 전국 여기저기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가.
"내가 살고 있는 데 대해서 글을 쓰고 얘기하게 되니까, 그리고 그렇게 만나지는 사람들은 관심분야가 일치하니까 훨씬 보람 있고 즐겁다."

과도한 육식문화 밥상을 뒤집어엎어야

지난 7월 집에서 행한 농장탐방교육(아침 기공수련)
 지난 7월 집에서 행한 농장탐방교육(아침 기공수련)
ⓒ 김유경(전희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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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농사 이야기>에 "농사에 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느냐는 전통 농법을 어떻게 계승하느냐와 같은 물음이다"가 있다.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진드기 때문에 살충제를 썼는데 닭을 살리려고 그런 거다. 그런데 달걀을 전량 폐기하고 닭도 몰살하게 되고 인간도 위험해졌다. 닭 살리려다가 모두를 죽이는 이런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후퇴>에서 말했듯 '자해문명' 현상이다. 그러니까 이번 사태를 축산양계문제로 한정 짓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는, '동물복지가 필요하다', '방사양계가 필요하다' 등의 이런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다.

방사나 복지농장을 한다고 해서 해결이 될까. 진드기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1년에 7억3천만 마리나 되는 닭을 먹는 이 과도한 육식문화가 반생명적인 무차별 집단 살육을 일삼는다. 지난 조류독감 때문에도 4000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특히 사람들의 혀끝을 농락하는 양념칠갑의 식문화가 조류독감도, 구제역도, 진드기 살충제 달걀도 갖고 온다. 일종의 풍선효과다. 이쪽을 꾹 누르면 저쪽이 툭 튀어나오고 저쪽을 누르면 이쪽이 튀어나오는. 그래서 밥상을 뒤집어엎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집회에서 치맥이나 치킨 100마리를 쏘겠다고 했던 김제동은, 다른 건 좋은데, 이건 반성해야 한다. 절대 치킨을 쏘면 안 되는 거다."

- 대안은 무엇인가.
"육식 관련 업체 전부에게 환경부담금 및 반생명부담금을 물려야 한다. 그리고 축산을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 그 다음에 대대적인 식생활 개선 국민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그 외 다른 대안이 없다. 우리가 정면 대응해야 한다. 이번에 미봉책으로 넘어가면 다른 게 또 생긴다."

- 식생활 개선 국민 캠페인을 어떻게 하는가.
"하나는, 식품영양적 식품건강적 식품영성적으로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합리적인 논리와 설득력을 계발하고 전파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오염된 식탁을 벗어나는 금단현상을 관통해야 한다. 그러려면 실제 입맛을 바꾸는 구체적인 캠프와 밥상 바꾸기를 위한 프로그램들을 국가 차원에서 순차적 계획적으로 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에 포르투갈은 채식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입법화 했다. 모든 식당은 채식 메뉴를 필히 갖추어야 한다. 또한 광주시는 2008년도에 식생활교육진흥법이 제정되어 '고기 없는 월요일'(시민단체, 대표 이현주) 같은 학교급식활동을 몇몇 구청에서 채택했다. 이런 활동들이 지자체와 국가 중심으로, 특히 학교급식에서 행해져 '고기는 수요일만' 하는 식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걸 위해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에너지 등급이 높은 건물에 세제 혜택을 주듯이, 채식을 주는 학교나 식당을 지원해야 한다. 왜냐하면 육식은 축산 과정에서 지구온난화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젤차 등에 환경부담금을 물린 만큼 그런 학교나 식당에 환경기여금을 줘야 한다."

- GMO 반대 시위나 집회에도 참여한다. 성과도 있다고 들었는데...
"얘기가 간단하지 않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에서 요청하면 몇 시간도 강의할 수 있다(웃음). 결론적으로 GMO는 위험하다. 생물공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 산업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큰 재앙을 만날 수 있다. 그런 위험한 시도는 않는 게 좋다."

생태순환적 공동체 삶이어야

자신이 발명한 목암낫(탈핵낫)을 들고(지난 7월 농장탐방교육)
 자신이 발명한 목암낫(탈핵낫)을 들고(지난 7월 농장탐방교육)
ⓒ 김유경(전희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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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텃밭 만들기' 같은 소량이나마 먹을거리를 자급자족하며 귀농에의 욕구를 다스리는 개별적 움직임들이 늘고 있다. 그 사람들에게 도움말을 준다면.
"아마 가장 큰 동기는 시중에서 파는 식품에 대한 불신이 작용한 것으로 본다. 아울러 한 생명체를 가꾼다는 노동을 통해서 내가 쇄신되는 것을 좋아하거나 기대해서 한다고 여긴다. 이왕이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지자체나 이웃, 시민단체, 도시농부학교 같은 곳과 연락해 종자, 정보, 친교 등을 맺어 나가면 개인이 해결하기 힘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다. 또 지자체 같은 데에 옥상이나 베란다를 이용한 텃밭 가꾸기 관련 강의 요청도 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면 보다 용이하게 텃밭을 가꿀 수 있다."

- 공동체 삶을 일구는 장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간화와 관련하여 어떻게 바라보는가.
"아주 필요하고, 현대적 여러 병폐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 여긴다."

-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삶이 너무 개별화 파편화 되어 있다. 생각, 감정, 판단까지도 파편화되어 있다. 옛날 같으면, 힘들면 여기저기 풀어헤쳐놓고 자기를 이완시킬 수 있는 정서적 심리적 의지처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고립화 되다 보니까. 그리고 사회적 스트레스(환경, 관계 등)라는 게 끊임없이 작용하다보니까 해결 통로를 찾지 못 한다. 공동체적 관계는 극단화된 자본주의적 개별화된 삶의 대안적 기제가 많이 작동한다.

우선은 소유 문제에서 극단적 개인화 부분이 많이 해소되어 있다. 왜냐하면 일정한 공유영역도 생기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생활, 시간, 행위, 감정, 여행, 문화, 생활용품까지 상당부분 겹치는 부분들이 생겨난다. 거기서 안정과 중층적 유대 형성 같은 게 가능해진다. 요즘 단톡, 카톡을 하면서 맺히기도 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그런데 생태순환적 공동체를 하게 되면, 맺히기 보다는 끊임없이 풀고 나누는 이런 작동이 되도록 하는 관계망이 된다. 관련 유형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반 GMO 전국행동 개최 집회, 농업진흥청 앞에서(2016. 09. 왼쪽 첫 번째가 전희식 씨. 이날 집회 관련하여 벌금형 선고를 받았다.)
 반 GMO 전국행동 개최 집회, 농업진흥청 앞에서(2016. 09. 왼쪽 첫 번째가 전희식 씨. 이날 집회 관련하여 벌금형 선고를 받았다.)
ⓒ 김유경(전희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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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들이 곧잘 하는 표현 중 하나가 '준비된'이다. 그 수식어는 언제든 역량 발휘가 가능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평소 출타하는 경우가 많아 전화 인터뷰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사전 의논 없이 질문들을 했는데, 마치 준비된 인터뷰이처럼 즉각즉각 대답했다. 최근 통계수치까지 술술 쏟아내면서.

그는 지난 23일 전주교도소에 입감했다 27일 나왔다. 지난해 9월 반 GMO 집회 관련하여 받은 50만 원 벌금형 선고를 항의하는 차원에서 몸으로 때운 거다.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 그의 청년스러운 선택이, 인간의 존엄과 신성을 되찾으려는 <옛 농사 이야기>의 저자답다. 살충제 달걀 사태를 마주한 우리 안팎도 자연성 회복을 위해 저런 뚝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옛 농사 이야기 - 사람 땅 작물 모두 돌보는 전통 농사살림

전희식 지음, 들녘(2017)


태그:#전희식, #글 쓰는 농부, #살충제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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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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