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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작년 한 해에 어림잡아 최소 오백 명은 학교 밖 청소년이 됐을 것이다. 이 문장에 나오는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렇게 많이 쓰이는 단어가 아니라 생소할 수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쉽게 알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맞다. 이 단어는 말 그대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그리고 나는 이 '학교 밖 청소년' 중 한 명이다. 즉, 나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아니다.

학교를 그만둘 때, 나는 이것의 의미에 대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부모님을 포함해, 선생님 등 주변에서는 모두 내가 학교를 그만둘 때 뜯어말렸지만, 나는 쉽게 학교를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나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실제로 쓸모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를 생각해 보자. 중세국어를 국문학과나 사학과 등 관련 전공에 진학할 때 빼고는 쓸 일이 있는가? 따라서 나는 굳이 학교에서 공부하지 않아도 사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와 더불어, 나는 학교를 그만두는 것과 다니는 것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개인적인 믿음이 있었다. 즉, 학교를 그만두어도 사회적인 위치가 크게 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어차피 같은 청소년이니 학교에 다니던, 다니지 않던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다니는 것과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존재한다. 학교에 있을 때는 이 차이를 실감하지 못하였지만, 학교 밖에서 부딪혀보니,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 학교에 다닐 때와 학교에 다니지 않을 때의 차이를 적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사회적 시선이 다르다. 보통 사람들은 나를 처음 보면 몇 살이냐고 물어보고, 내 나이를 바탕으로 어느 고등학교에 다니는지 물어본다.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이다.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 어떤 고등학교에 다니는지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 질문이니까. 그런데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선뜻 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대답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그다지 좋지 않거나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원래 다니던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성실하다 정도로, 최소한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지 않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그와는 다르다. 몇 주 전, 길에서 누군가와 우연히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자, 그분이 당황하는 것이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이 외에도 내가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하면 당황하는 분들이 많았다. 물론 내가 과장해서 느낀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다니지 않는 학생을 보는 사회적 시선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두 번째로, 행동의 범위가 다르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나는 청소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나 대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딱히 대회 요강을 확인하지 않고 참여하였다. 왜냐하면, 그런 대회들에는 고등학생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참가할 수 있다. 딱히 자격 요건을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지금은 참가 자격과 관련된 대회 요강을 살펴보거나, 주최 측에 직접 참여가 가능한지 물어본다. 상당히 골치가 아프다. 굳이 학교에 다니지 않더라도 참가할 수 있는 백일장 같은 대회도 고등학교 재학생만 참가할 수 있는 대회가 많다. 백일장 같은 대회에 굳이 학교 재학생들만 참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대회에 참여할 자격 요건을 정하는 것은 대회의 주최 측이니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로, 사회가 주는 관심의 정도가 다르다. 이 한국의 사회는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에게는 관심이 많지만,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당연히, 특정 그룹에게만 관심을 요구하는 것은 심히 잘못된 요구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관심은 필요하다고 본다. 며칠 전 신청하였던 모 대회는 온라인으로 접수 양식을 제출하는 대회였다. 그런데 분명히 모든 청소년이 신청 가능하다고 대회 요강에는 적혀 있었지만, 필수 입력란에는 학교, 학년을 전부 기재해야만 했다. 학교가 없고, 학년이 없는데 어떻게 적을 수 있을까? 다행히 이런 곳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에, 접수는 문제없이 처리했다. 단순하게, "학교 밖 청소년은 X라고 기재해 주세요" 라는 문구 하나만 대회 요강에 집어넣으면 문제가 없을 것인데, 모든 청소년이 지원 가능하다고 한 대회에서 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만 관심을 쓰는 듯한 것은 검정고시 준비 학생에 대한 관심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회적인 차이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당연히 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학교에 다니지 않는 학생의 차이도 존재한다. 나는 이러한 차이가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이러한 차이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인 시선, 행동의 범위, 사회의 관심 전부 사소한 배려로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검정고시 준비하는 학생이라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굳이 학교 재학생과 비 재학생을 나눌 필요가 없는 대회에서는 가급적이면 자격 요건을 제한하지 않고, 한 번만 더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들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한국 사회가 이런 사소한 배려에 좀 더 민감해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태그:#검정고시, #홈스쿨링, #자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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