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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오전 서울 중구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서 열린 '2020 조사활동보고회'에서 탁경국 상임위원(오른쪽 두번째)이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참석자는 왼쪽부터 이호 위원, 탁경국 상임위원, 오병두 위원. 2020.9.14
 14일 오전 서울 중구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서 열린 "2020 조사활동보고회"에서 탁경국 상임위원(오른쪽 두번째)이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참석자는 왼쪽부터 이호 위원, 탁경국 상임위원, 오병두 위원. 20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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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군이 허술한 수사로 타살 가능성이 있는 병사를 '총기 난사 사건'의 주범으로 몰고, '자폭 사망'으로 서둘러 결론 낸 사실이 31년 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14일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의 '2020 조사활동보고회' 보고서에 따르면 1989년 사망한 유모 상병은 당시 헌병대(현 군사경찰) 수사 기록에 '총기 난사 후 수류탄 자폭 사망'한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헌병대는 당시 유 상병이 동료 부대원 2명과 함께 분대장에게 항의하던 중 총을 난사해 분대장과 동료 1명이 사망했고, 이후 유 상병이 생존한 부대원 A씨와 총기 2정, 수류탄 3발을 훔쳐 함께 달아났다고 기록했다.

이후 두 사람 간 다툼이 생기자 유 상병이 A씨에게 수류탄을 던진 뒤 자신도 자폭했다는 것이다. 당시 살아남은 건 동료 부대원 A씨가 유일했다.

위원회는 30년 만에 이 사건에 대한 진정을 받아 재조사한 결과 유 상병은 총기 난사 후 자폭한 것이 아닌 타살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유 상병 사망 후 유족에게 시신을 공개하지 않고 서둘러 매장한 점 등을 근거로 당시 헌병 수사에 축소, 은폐, 부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위원회 조사 결과 당시 헌병대가 유 상병의 총이 아닌 생존한 A씨의 총만 발사됐다는 총기감정 결과를 수사에서 누락한 사실을 확인했다. 과학적인 수사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 증거가 배제된 것이다.

실제로 숨진 유 상병의 최초 검안서는 '타살'로 기재됐다가 '자살'로 수정됐으며, 수류탄으로 자폭했다는 유 상병의 시신에서 총상이 있다는 진술도 있었다고 진정인은 주장해왔다.

위원회는 "객관적 사실을 은폐하여 망인을 동료 병사를 살해하고 자해 사망한 것으로 처리함으로써 망인과 그 가족에게 큰 상처를 줬다"며 "위원회 조사결과 망인 죽음의 의혹을 제기하며 당시 군 수사의 문제점 등을 밝힘으로써 망인과 그 가족들의 명예가 회복되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이날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시행 계기 출범 2돌을 맞아 개최한 조사 활동 보고회에서 유 상병의 사례처럼 군 수사의 축소, 은폐 조작으로 사인이 바뀌거나 순직을 인정받지 못한 사례, 군 복무 관련 스트레스로 자해 사망한 주요 사례를 발표했다.

1948년 11월 30일부터 2018년 9월 13일 사이 발생한 군 사망사건 가운데 유족 등이 진상규명을 해달라고 신청한 1610건 중 조사가 종결된 450건 중 일부다.

450건 중 조사 결과 군의 당시 조처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223건에 대해서는 국방부, 경찰청, 법무부 등에 순직 재심사, 제도개선, 사망보상금 지급을 통한 구제 요청을 권고했다. 나머지 227건은 각하·취하 결정됐다.

위원회는 접수된 나머지 사건에 대해서는 사전조사 및 본 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특별법상 출범한 위원회의 활동 기한이 내년 9월까지여서 조사 기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위원회 관계자도 "법 개정을 통해 충분한 조사 활동이 보장될 수 있도록 국회와 협의 중"이라며 조사 기간 연장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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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군 사망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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