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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전교조 창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전교조 충남지부에서 올라온 전교조 선생님들이 퍼포먼스를 하면서 행진하는 장면
▲ 전교조 30주년 기념행사 행진 장면 2019년 5월 전교조 창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전교조 충남지부에서 올라온 전교조 선생님들이 퍼포먼스를 하면서 행진하는 장면
ⓒ 하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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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도 전교조는 교육부와 단체협약을 통해 학교현장에서 교과진도표 제출을 폐지했다. 교과진도표는 매 학년 초에 교사마다 교과 진도표를 작성, 제출해 학교장의 결재를 받곤 하는 요식행위였다. 학년 초 유초중고 모든 학교는 전국적으로 개학 몸살을 앓을 정도로 행정업무가 폭주한다. 그런 점에서 전교조가 이뤄낸 교과진도표 제출과 결재를 받는 요식행위를 단박에 폐지한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교과진도표는 교사 자율적으로 수업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교사 스스로 감당할 문제이다. 교사와 학생이 교수-학습과정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소통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일이다. 그것을 굳이 외부의 시선으로 교사들의 교수-학습과정을 감시하고 확인하는 작업이 굳이 필요할까 의문이었다. 다시 말해 교사들이 학교장 결재를 받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고 이를 각 교과 대표교사들이 수합해서 결재를 올리는 전 과정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행정 잡무일 뿐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100년 넘게 이 땅의 학교교육을 지배하고 통제해 온 '식민지 국가주의 교육행정'의 잔재이다. 교육의 전 과정은 위계질서 속에서 감시와 통제로 운영되는 질서 있는 행정이 아니다. 교육은 인간다움을 만들어 내는 가치 창조의 전 과정이다. 누구의 간섭도 불허하는 창조적인 정신활동이자 교사 자신의 고유 영역에 속한다. 한 마디로 외부의 감시와 통제가 제거돼야 할 독립된 영역이다. 나아가 다음 세대 건강한 민주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교사의 창의성과 헌신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교과진도표 폐지는 늦어도 한참 늦은 감이 있다.

마찬가지 논리로 학교현장에서 교과평가계획서 제출을 즉각 폐지시켜야 한다. 위계질서 속에서 교사의 평가활동까지 일일이 감시하고 통제하겠다는 고루한 사고방식은 오늘의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교사의 평가권이 거의 규격화된 사회이다. 상급행정관청인 교육청이 평가영역을 관장하기 때문이다. 수행평가 영역을 몇 % 이상으로 하고 지필평가의 경우도 서술형 평가를 몇 % 이상으로 하라고 매년 공문으로 지침이 내려온다. 그러면 교과 교사들은 그에 맞추어 평가계획을 수립하는 형편이다.

민주시민교육이 독일처럼 길게는 50년, 영국처럼 짧게는 20년 이상 앞서 가는 북서유럽 국가들의 경우에 교사평가권은 모두 교사의 고유 영역으로 교사 자율에 맡겨져 있다. 교육과정편성 자체가 교사의 고유 권한이자 자율 영역에 속한다. 교과서조차 자유발행제가 절대 다수이고 교과서 채택 여부도 교사의 선택권을 존중한다. 영국의 학교사회에서 교사의 교과서 채택률은 10%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북서유럽 교사들은 다양한 교수-학습 자료를 참고한다.

다시 말해 교과서는 다양한 교수-학습 자료 가운데 참고할 수 있는 하나의 교육 자료일 뿐이다. 북서유럽 국가들에서 교사들은 교과서를 포함해 여러 교육 자료들을 참고하여 재구성해 가르친다. 교과서에 밑줄 그어 가면서 교과서를 사도신경 외듯이 아이들에게 강조하지도 않는다. 민주시민교육 학습에서 토론수업이 가장 활성화된 프랑스의 경우 교과서는 아이들 생각의 문을 열어주고 생각하는 힘과 근육을 키워주는 토론수업에 기초자료로 제공된다. 글자 그대로 교육 자료에 그칠 뿐이다. 우리 교육처럼 교과서에 밑줄 그어가며 달달 외워야 할 경전이 아니다.

교육과정 편성과 교육활동평가에서 우리나라처럼 외부의 간섭과 통제가 심한 선진국은 일본을 제외하곤 없다. 제대로 된 역사청산이 없는 일본조차 식민지교육의 산물인 '교감(校監)'이란 명칭이 사라진 지 오래이다. 학교 교사를 감시, 감독하는 지위인 교감이란 명칭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국 사회에 심어 놓은 반교육적인 직책이다. 제국주의 후손들인 극우세력이 지배하는 그들 일본에서조차 사라진 교감이란 명칭을 해방 된 지 7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학교 사회에 방치한 채 온존한 것은 우리 교육계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교감이란 명칭을 부교장으로 진작 바꿨어야 했다.

'아동(兒童)'이란 명칭도 마찬가지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소파 방정환은 1920년 어린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최초로 구사했다. 1923년에는 잡지 <어린이>를 발간했고 그해 어린이날을 제정해 기념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도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썼던 아동이란 말을 생각 없이 쓰는 것은 삶의 게으름이자 성찰의 빈곤이다. 아동문학, 아동문학가, 아동문학전집, 아동잡지, 아동예술, 아동학대, 아동복지, 아동권리, 아동교육, 아동심리학...

이젠 식민지 국가주의 언어를 생활 속에서 폐기하고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써야 한다. 나아가 식민지 국가주의 교육행정의 낡은 관행에서 결연히 벗어나야 한다. 교사의 교과평가계획서를 감시하고 확인하려는 낡은 관행은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미래교육에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다. 교과평가계획서의 경우, 해당 교과 담당 교사들이 교과협의회를 통해 결정된 평가계획을 학교 홈페이지나 e알리미(또는 리로 스쿨 등)를 통해 학생들에게 공지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평가 방식을 미리 알리고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여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평가한다면 문제될 게 없는 교육활동이다. 이런 일을 과거 교과진도표처럼 교과별로 수합하여 학교장 결재를 받기 위해 따로 노력한다면 그 자체가 교사를 괴롭히는 행정 잡무가 될 것이다. 학년 초 모든 학교는 전국적으로 개학 몸살을 앓는다. 따라서 단위학교 학교개혁 차원에서라도 과거 낡은 관행이나 국가주의 교육행정의 잔재들을 하나씩 청산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기 위한 변화의 몸짓은 비록 작은 움직임이지만 거대한 사회의 진보이자 역사의 전진이다. 학교단위 교육모순을 해체시킴으로써 '아이들 삶을 위한 교육과정'을 교사가 편성하고 '교육이 가능한 학교'를 만들어 내는 것은 온전히 우리 시대 교사들 몫이다. 우리 교사들이 교직에 대한 자존감을 회복하고 교육활동의 주체로 우뚝 서는 날을 보고 싶다.

태그:#교육통제, #국가주의 교육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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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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