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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문을 연 충남교육청 학생인권센터에 전화 041-640-7453 또는 이메일 human@cne.go.kr로 상담을 신청할 수 있다.
▲ 손바닥 학생인권 조례집 2021년 3월 문을 연 충남교육청 학생인권센터에 전화 041-640-7453 또는 이메일 human@cne.go.kr로 상담을 신청할 수 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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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등학교 저학년 조카의 가방 정리를 돕다 '손바닥 학생인권 조례집'을 발견했다. 조카가 등교한 후에 포털사이트를 검색해보니 충남교육청(교육감 김지철)에서 학생들이 학생인권 조례를 손쉽게 접하고 인권 관련 피해 상담과 권리 규제를 받을 수 있도록 발간한 것이라고 한다.

지난달 초에 충청남도의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해 1인 1부씩 배부했단다. 하지만, 주변에 물어보면 그런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는 대답뿐이다. 학생인권 수호를 위해 일선 학교에 조속히 배부가 되었으면 한다.

이 '손바닥 학생인권 조례집'의 발견으로 잠시 잊고 있던 올 초의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그 '사건'이란 건 지인의 딸이 신학기에 교실에서 겪은 일이다. 지인의 딸은 코로나19로 작년에 거의 학교에 못 나가다가 등교하게 되어 굉장히 고무돼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지인의 딸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3월, 어느 날 교실에 들어온 담임선생님이 몇 명의 학생을 호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호명된 학생들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급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니코틴 흡연 측정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지인의 딸은 검사를 받을 때는 급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담임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순응했단다. 그런데 하교 후 집에 와서는 얼마나 화나고 속상했던지 당시 심정을 지인한테 토로하다 결국 울음보를 터뜨렸다고 한다.

자신이 왜 명단에 들어갔는지? 아무 잘못도 없이 급우들이 보는 앞에서 용의자 취급을 받았는지? 다른 반은 교무실로 불러서 흡연 측정 검사를 했고, 다른 학교에서는 아예 그런 검사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데 자기 반에서만 그런 일이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울분을 토했단다. 나 역시 진상이 궁금하여 물었다.

"담임선생님께 진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러셨는지 확인했어?" 

지인은 한창 예민한 시기에 친구들 앞에서 혀를 내밀고 측정 검사를 받았을 딸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학교로 쫓아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진정하고 생각하니 학기 초라 일 년 가까이 담임선생님과 급우들과 생활해야 하는데,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아닌가 싶어 조용히 지나가기로 마음을 고쳤단다. 나는 제3자인 처지여서 가타부타 말할 수 없었다.

내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80~90년대 역시 흡연 검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때는 전교생 조회가 있는 날에 몇몇 선생님이 불시에 교실을 돌며 학생들 가방 검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도 자기 가방을 허락도 없이 선생님들이 뒤졌다는 걸 안 아이들은 길길이 뛰며 불쾌감을 내비치곤 했었다.

4월 말 우연히 TV에서 2025학년도부터 일반고등학교에도 전면 도입될 '고교학점제'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토론을 시청하게 됐다. 시대가 격변함에 따라 교육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올 초, 지인의 딸내미가 겪은 흡연 측정검사 사건은 시대를 거스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진보적인 기술력 덕에 짧은 시간에 현장에서 학생들의 흡연 여부를 가릴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해서 얻는 결과물은 뭐지? 왜 학생인권은 뒷걸음치는 것 같지? 라는 의문을 품게 했다.

불의를 보고도 어른으로서 일깨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라고 뭐 다르겠는가. 잘못에 휘말려 불똥이 튈까 못 본 척 지나칠 게 뻔하다. 지인이나 그녀의 딸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바로 잡아야지!" 입바른 소리조차 못한 나는 이렇게 '겁쟁이'일지도 모른다.

조카의 '손바닥 학생인권 조례집'과 지인 딸내미의 '흡연 측정 검사' 사건으로 고2 때, 같은 반 친구들 앞에서 2m도 더 되는 작대기를 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온몸을 무참히 맞던 급우가 기억났다. 그때 조금만 용기를 냈더라면, 그 친구는 온전히 고등학교를 마쳤겠지... 지금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겠지...

5월 하늘을 쳐다보며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나 역시 상흔을 어루만지고 있다.

태그:#학생인권, #충청남도교육청, #충청남도교츅청 학생인권센터, #손바닥 학생인권조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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