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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라 박주희 전혼잎 기자가 책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글항아리에서 펴냈다. 착취당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 이야기와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의 대가를 누가 착취하는지를 자세히 다뤘다.
▲ 책 <중간착취의 지옥도> 표지 남보라 박주희 전혼잎 기자가 책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글항아리에서 펴냈다. 착취당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 이야기와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의 대가를 누가 착취하는지를 자세히 다뤘다.
ⓒ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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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 손에 쥐여주고픈 책
 
"사용자와 근로자 간에 초과근로 조건에 상호 합의하더라도 합의된 조건이 정부관료가 정한 규칙이나 규정에 합치되지 못하면 자유롭게 초과근무를 할 수 없다." (<선택할 자유>, 94쪽)
 
'120시간 노동'과 '부정식품' 발언을 했던 대통령 후보가 참고했다는 프리드먼의 책 <선택할 자유>(자유기업원)에 나오는 내용이다. 노동시간 제한이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선택과 자유라는 수사를 앞세우며 프리드먼은 노동자 권리 향상을 위한 각종 법률과 제도, 노동조합 활동 자체를 적대시했다.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노동자를 '무한 경쟁 시장'으로 내몰아야 임금이 오르고 노동조건이 좋아진다고도 했다. 그가 누구의 '선택할 자유'를 고민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프리드먼은 수만 명을 고문하며 장기간 독재를 이어갔던 칠레 피노체트 정권의 탄생과 운영에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 혐의가 음모론이 아닌 합리적 의심이라는 근거는 곳곳에 있다. 나오미 클라인이 쓴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 5장과 6장에 자세히 적혀 있는 내용도 그 가운데 하나다.

대통령 후보들이 너나없이 경제를 강조한다. 프리드먼의 경제 정책은 사실관계와 가치 지향 모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충분히 비도덕적이며, 비인간적이기까지 하다. 프리드먼 대신 우리나라 기자들이 최근에 펴낸 <중간착취의 지옥도>(글항아리)를 대선 후보들에게 권한다.

<중간착취의 지옥도>는 착취당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 얘기다. 책을 쓴 <한국일보> 기자 세 명은 작년 12월부터 두 달여 동안 용역·파견업체에 소속된 노동자 100명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는 올해 1월 처음 보도됐다. 이후에도 꾸준히 후속 보도가 이어졌다.
  
책 <중간착취의 지옥도>의 글쓴이들은 한국일보 기자다.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을 인터뷰하고 그 결과를 올해 1월 말 한국일보에 보도했다.
▲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중간착취를 다룬 한국일보 기사 책 <중간착취의 지옥도>의 글쓴이들은 한국일보 기자다.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을 인터뷰하고 그 결과를 올해 1월 말 한국일보에 보도했다.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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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간착취의 지옥도>는 기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간접고용 노동자들 이야기와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의 대가를 누가 착취하는지를 자세히 다뤘다. 또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중간착취를 막기 위해 기자들이 직접 국회와 정부를 찾아다닌 입법 로비 과정을 담았다.
 
"간접고용은 사용자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사용자가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고 노동력을 제공받았지만, 이제는 사용자가 용역‧파견업체와 계약을 맺고 그 업체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제공받고 있다. 사용자-노동자로만 이루어진 일대일 관계에서 노동자를 고용한 '고용주'라는 새로운 중간인이 등장해 사용자-고용주(용역‧파견업체)-노동자 관계로 변화한 것이다. 흔히 말하는 '아웃소싱'이다." (책 20~21쪽)
 
지옥에서 착취당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아파트 경비원, 콜센터 노동자, 은행 경비원, 발전소 노동자,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노동자, IT 개발자, 철도 기관사와 역장, 대기업 하청업체 카메라 감독으로 우리 곁에 있다.

하는 일과 일하는 곳에 상관없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모두 하청업체(용역‧파견업체)에서 임금을 착취당한다. 금액은 한 달에 수십, 수백만 원에 이른다. 일하는 곳인 원청업체에서는 차별에 시달린다. 일하는 곳과 소속 업체 어느 곳도 그들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계약 해지로 포장된 해고는 일상이다.
 
"중간착취는 간접고용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간접 고용하는 걸까. 이에 대해 재계는 노동 유연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동 유연화의 사전적 의미는 경기 변동에 따라 고용과 해고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손쉬운 해고'로 통용된다." (책 168쪽)
 
근로기준법 제9조는 중간착취를 금지한다.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규정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최저임금에서 1원도 추가되지 않은 기본금, 몇 년 전에는 숫자로 채워져 있던 각종 수당 칸이 해마다 '0'으로 변해가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세계. 부정할 수 없는 착취의 증거가 생생히 살아 있었다." (책 49쪽)
 
1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에서 단 1원도 더 지급하지 않는 회사.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지급하던 수당마저 도로 빼앗아가는 직장. 노동조합을 만들어 정당한 목소리를 내면 아예 회사 문을 닫아버리는 기업. 노동자가 꼬박꼬박 적립한 퇴직금까지 떼먹고는 대표와 회사 이름만 바꿔 똑같은 일을 다시 시작하는 업체.

책을 쓴 기자들은 간접고용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착취하는 세계를 지옥이라고 부른다. "피해자는 선명한데 가해자는 가물거리는 풍경. 억울해 죽겠는데 다들 내 책임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지옥"(책 17쪽). 노동자들의 해고와 죽음으로 유지되는 사회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간접고용 노동자는 총 346만 명으로 추산된다. 우리는 그중 겨우 100명을 두 달여 간 인터뷰했을 뿐인데, 취재 전에는 예상치도 못했던 부고와 해고를 마주했다. 우리가 직접 취재한 노동자의 동료 2명의 부고를 접했고, 취재한 노동자 100명 중 4명이 취재 도중 해고 통보를 받았다. 전체 간접 노동자들에게는 이런 일이 대체 얼마나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일까. … 분노와 불안, 체념이 이 세계에 공기처럼 떠다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공기 속에서 호흡하는 동안 나도 자주 숨이 막혔다." (책 65~66쪽)
 
가파르게 기울어진 운동장에 매달려 있는 노동자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기업에 기울어져 있다. 균형을 맞춰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정부마저도 경제를 위한다는 이유로 기업과 기업가에게 관대하다. 얼마 전 가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현 정부도 예외가 아님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경총 답변서인 줄 알았어요"(책 264쪽). 노동 전문가들이 고용노동부 답변서를 보고 난 후 반응이란다. 글쓴이들이 간접고용 노동자 보호 방안을 정부에 제안하자 명색이 고용'노동부'에서 보낸 대답은 기업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논리와 비슷했다. 
 
"이렇게 기업에 우호적인 나라에서 간접고용 제도를 활용하지 않으면 그게 바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책 171쪽)
 
LCD 패널 제작 회사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해고된 한 노동자의 말이다. 불법 파견을 일삼던 회사는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노동자 모두를 해고했다. 부당해고와 불법 파견을 바로잡아달라고 고용노동부, 검찰, 법원을 찾아다니며 노동자는 "이렇게 기업에 우호적인 나라"를 절감했다고 한다. 원청 회사를 고소한 지 6년이 지나도록 1심 법원 판결도 받지 못했다. '이렇게 노동자에게 가혹한 나라!'

영문 이름이 '정의부'(Ministry of Justice)인 법무부가 재벌 3세 기업인을 가석방하며 공식적으로 밝힌 이유는 '정의'가 아닌 '경제'였다. 그 기업인은 권력 눈치를 보며 비선 실세 딸의 말까지 세심히 살피다가 감옥에 갔었다.

경제 평론가 직함을 만든 정운영은 경제를 '밥과 자유'를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자들은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기는커녕 해고와 죽음을 곁에 두고 일터에서 생활한다. 그들의 '밥과 자유'는 갈수록 사그라들어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는 기업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노동자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해 왔다. 경제라는 이름으로 경제를 죽여왔다.

가파르게 기울어진 운동장 끝에 매달려 있는 노동자를 위해 나서는 일이 바로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 정부와 국가가 할 일이다.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쓴 기자들은 간접고용 노동자를 착취하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이 그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한다.

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 박주희, 전혼잎 (지은이), 글항아리(2021)


태그:#중간착취의 지옥도, #간접고용 노동자, #중간착취,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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