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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고종 손자 홍영군 이우와 박찬주 여사가 결혼할 때 착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드레스
 1935년 고종 손자 홍영군 이우와 박찬주 여사가 결혼할 때 착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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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한동안 볼 수 없던 대면 졸업식이 열렸다. 학사모를 하늘로 내던지는 모습은 '희망'을 쏘는 것 같다. 초등학력이 인정되는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졸업하는 할머니들 표정은 어떤가. 잠시 입더라도 졸업 예복은 '배움'의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졸업 예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졸업생들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처럼 결혼식, 진급식 등 행사와 장소, 시간에 따라 개성과 집단을 연출하는 의상이 따로 있다. 복잡한 사회만큼 다양한 의미의 옷을 치장하고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오는 4월 2일까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의·표·예(衣·表·藝), 입고 꾸미기 위한 공예> 전시회는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패션 세계를 이끈 우리나라 1세대 패션디자이너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옷은 인간의 욕구를 상징

전시회는 옷을 입는 이유를 인간의 '욕구'로 설명한다. 인간은 신체보호의 안전욕구를 넘어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거나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서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앙드레 김이 만든 웨딩 슈트와 웨딩 드레스
 앙드레 김이 만든 웨딩 슈트와 웨딩 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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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입구에는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1935-2010)이 70대에 만든 웨딩 슈트(2006)와 웨딩 드레스(2009)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화려한 웨딩 슈트를 보면 남성도 여성만큼 아름다운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맞은편엔 고종의 손자인 홍영군 이우(1912-1945)와 박찬주(1914-1995)여사가 1935년 일본 도쿄에서 결혼할 때 입은 것과 유사한 웨딩 드레스가 있다.
 
19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제작된 대례복
 19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제작된 대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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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제작한 서구식 대례복은 전시회 의상 중 가장 오래된 의상이다. 민철훈(1856-1925)이 입었던 대례복에는 국가상징 문양인 무궁화 12송이가 수놓아져 이채롭다. 윤보선(1897-1990) 전 대통령이 입은 연미복도 있다. 대례복과 연미복은 신분과 지위, 특별한 의례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고 윤보선 대통령의 연미복
 고 윤보선 대통령의 연미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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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을 공예박물관에 전시하는 것이 의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패션과 공예의 '콜라보'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몇 년 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의상전시를 봤는데 머리에 남는 것은 결국 디자이너의 공예적 감각이었다. 공예 기법은 다양하게 표출된다. 옷감을 자르고 잇거나, 주름을 잡아 입체로 만드는 건 기본이다. 실을 변형해 옷감 평면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원단에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도구나 기계로 염색하고 프린트할 수도 있다. 프린트는 실크스크린, 핸드프린팅, 디지털프린팅 등으로 세분된다.

자수처럼 특정 부분에 천을 덧붙여 장식하는 '아플리케' 기법도 있다. 꽃이나 동물, 도형, 문자 등 문양의 종류가 많다. 자수는 옷감에 직접 작업할 수 있고, 옷을 만든 후에 추가할 수도 있다. 또 자수에 구슬이나 스팽글(반짝거리는 얇은 장식), 단추, 큐빅 등을 추가해 보다 입체적이고 화려한 표현이 가능하다.

패션을 예술이라 부르는 이유
 
우리나라 1세대 패션디자이너 의상작품
 우리나라 1세대 패션디자이너 의상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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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세대 패션디자이너 의상작품
 우리나라 1세대 패션디자이너 의상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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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하이라이트는 최경자(1911-2010), 노라노(1928), 앙드레 김 등 1세대 패션디자이너들이 각기 자신만의 공예기법과 창의적인 감각으로 만든 의상을 전시한 공간이다. 아플리케, 페인팅, 플리츠, 퀄팅, 비딩, 패치워크, 자수 등 다양한 공예기법이 등장한다.

1930년대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펼친 1세대 패션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보면 시대를 앞서간 통찰력이 들어있다. 이들의 혼이 담겨있어 '패션이 아니라 예술'이라 부르는 이유다.

1세대 디자이너들이 입었던 의상도 직관할 수 있다. 국내 최초로 함흥에 '은좌옥' 양장점을 설립하고 한국 최초 모델양성기관 '국제차밍스쿨'을 창설한 최경자 디자이너가 직접 착용한 프린트 셔츠 드레스(1976), 플리츠 타이 넥 드레스(1981)는 지금도 유행하는 스타일이다.
 
1세대 패션디자이너의 영감을 발전시킨 후세 디자이너들의 의상작품
 1세대 패션디자이너의 영감을 발전시킨 후세 디자이너들의 의상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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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자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해 입은 의상(왼쪽)과 앙드레 김 의상
 최경자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해 입은 의상(왼쪽)과 앙드레 김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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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이 작용한 의상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각인돼 있다. 왼쪽 가슴에 단 흰색의 앙드레 김 문장 아플리케가 돋보인다. 앙드레 김은 동일한 디자인 의상을 30벌을 미리 만들고 이를 계절별로 돌려가며 입었다고 한다. 특히 영화배우 장동건이 입었던 슈트가 앙드레 김 아카이브 수첩에 기록돼 있어 눈길을 끈다.

전시회 작품들은 경운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독립기념관, 한국현대의상박물관 등이 소장한 것을 한데 모은 것으로 우리나라 1세기 패션 흐름과 역사라 할 수 있다. 우리가 1세대 패션디자이너 작품에 주목하는 건 이들의 열정과 영감이 후세 디자이너들이 성장하고 글로벌 이름을 떨치는데 훌륭한 자양분이 됐다는 사실이다. 이곳에 국내외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다녀갔고 감각이 남다른 젊은 세대들도 전시회를 찾아 패션 아이디어를 찾는다고 한다.

태그:#서울공예박물관, #앙드레김, #최경자, #노라노, #패션콜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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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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